디지털 노마드로 영화 만들고 책 쓴 사람의 정주생활이란

아침에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구글 캘린더 확인이다.

블로그 기록을 다시 시작하면서는 평일 아침 7시부터 한 블록을 ‘아침 글쓰기’로 지정하고 반복 스케줄로 고정해 둔 상태다. 이렇게 하고부터 장장 2년을 미뤄온 불법촬영범죄 다큐멘터리 작업기를 이 아침 시간마다 짬짬이 작성하여 드디어 발행했으니, 아직까진 강제 스케줄 고정이 효과가 있어 보인다. 이 루틴을 활용해서 올해에는 반드시 그간 차일피일 생각만 하고 시작도 안 했던 책을 써야만 한다…. 아무쪼록 화이팅.

 

정주(定住)

아침 7시. 블로그 새 추가 버튼을 클릭하고 언제나 그렇듯 제목을 휘릭 썼다. 쓰고 나서 난 왜 ‘정착’ 대신 ‘정주’라는 단어를 썼을까 불현듯 궁금해졌다. 보통 더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는 정착이 아닌가? 왜 굳이 정주라는 단어가 튀어 나왔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에 구글 검색이 시작되었다. 글 쓸 때는 글만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하거늘, 이렇게 중간에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포커스 프로그램을 하나 깔든가 해야지 다짐하며 검색 결과를 둘러보다 이런 흥미로운 글을 찾았다. 역시 한 번씩 샛길 빠지기는 마냥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다.

고고학에서는 정착생활 대신에 정주생활이란 용어를 사용합니다. 물론 정주보다는 정착이 동일 장소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한 느낌이 들지요. 定住란 한자로 보면 한 곳에 머물러 산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sedentism, sedentariness라고 하는데 定住性으로 번역되기도 하죠.

학문적으로는 sedentism이란 단어를 선호하지만 영어사전에도 잘 나오지 않아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단어입니다. 정주(성)에 대칭되는 용어는 이동(성)으로 영어로는 mobility라고 합니다. nomadism은 방랑생활과 더불어 유목(遊牧)이란 뜻도 있어 mobility를 주로 사용합니다. 일본에서는 유동(遊動)으로 번역합니다. 이동이라고 하면 movement, migration, transfer 등이 모두 해당되어 유동이 더 그럴듯해 보이지만 일본식 한자용어라 우리나라에서는 잘 쓰지 않습니다.

(…)학자들마다 정주의 정의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공통분모를 모아보면 최소한 여러 가족 이상의 집단이 적어도 1년 이상 한 곳에서 마을(村)을 유지하며 공동체적 생활을 할 경우를 정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1년 이상 한 곳에 머무를 때 정주라고 한다고 하였지만 반년이나 계절적으로 한 곳에 머무르는 것과 1년만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요? 그래서 반정주란 용어를 만들기도 하였지만 애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아메미야 미즈오란 학자는 정주는 개념상 특정 장소와의 결합이 강하기 때문에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한 생활을 장기간 계속하는 경우에 그러한 생활을 정주성이 높은 생활, 그것이 1년간에 걸치는 경우에는 정주생활로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정주, 정착생활 – 안승모(원광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블로그 

내 20대를 갈무리할 때 빠질 수 없는 단어 nomadism이 오늘 아침 내가 떠올린 정주라는 단어와 한 문단에 나오는 게 신선했다. 고고학에서의 정주는 ‘최소한 여러 가족 이상의 집단’이 한 마을을 유지하며 공동체적 생활을 할 경우에 한하니 내가 말하는 정주는 엄밀히 고고학적 의미의 정주에서는 벗어나겠다(이 와중에 이 블로그의 공지글을 보니 내년이면 일흔이 되시고, 그간 올려두신 각종 연구자료가 이제는 구문이며 AI시대를 맞이하여 그 효용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일 년 뒤 블로그를 닫겠다고 하신다. 이렇게 또 멋진 블로거 한 분이 사라지시는구나).

성인이 되고부터는 십여 년에 걸쳐 어느 한 곳에 고정된 ‘집’이라는 개념 없이 끊임없이 거주지를 이동하며 지내왔다. 한국에 짐을 둘 수 있는 본가랄 것도 없는지라 나와 함께 움직일 수 없는 짐은 장기 짐보관 서비스를 활용했다. 짧게는 몇 주, 몇 달씩 이 도시 저 도시에 머물며 지내는 게 일상이었다. 수십 곳을 다녔으니 여행 많이 해봐서 좋겠다 소리 들을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다 일이고 일상이었기에 여행했다는 느낌은 그다지 남아있지 않다. 그냥 필요했기 때문에 하던 이동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프라하에 머무를 때는 걸어서 20분 거리에 프라하 성이 있었으나 결국 프라하를 떠나기 전까지 갈 일이 없었다. 일이 바빠서 갈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이런 일과 삶의 방식이 나에게는 잘 맞고, 또 만족스러웠다.

매일 매달 새로운 곳을 탐색하고 수도 없이 다른 풍경과 사람들, 각양각색의 문화를 겪고 배우고 생활인으로서 그 일부가 되는 일은 신나고 두근거리는 일이다. 지금 이 정도만큼이라도 나를 성장시킨 내 삶에서의 가장 큰 요인은 훌륭한 책들과 더불어 바로 이 시간이다. 내게는 이런 처음에는 낯설지만 금세 친숙해지는 여러 도시에서 일상을 보냈던 시간이 다른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울 만큼 값지다.

이때 작업했던 영화와 책에도 이런 내 경험이 녹아들어 있었다.

30대에 접어들면서는 이제 일도 좀 안정되었겠다, 서울에 봄 가을용으로 머무를 거처를 마련했다. 그러다 몇 년 뒤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고…. (이하 생략) 어느덧 가구 구성단위가 나 홀로 1인이 아니게 되면서 예전처럼 언제든지 일이 생기고 마음만 먹으면 바로 며칠 안에도 나 혼자 휙 이 도시, 이 나라를 떠나기가 예전만큼 쉽지는 않아졌다. 여전히 대부분의 일과 업무 커뮤니케이션은 고정된 사무실에 나갈 필요 없이 원격으로 처리하고 있다. 2022년에 발표한 불법촬영범죄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뉴욕, 영국에 위치한 팀과 함께 한 원격 협업으로 탄생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한 곳에서 몇 년이라는 시간 동안 머물러 보면서 ‘여행’이라는 걸 이제 제대로 다녀보고 있다. 여가만을 목적으로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하는 감각을 느껴보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태어난 도시와 나라에서만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해서 살 때, 삶에서 많은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파트너와 앞으로 이런저런 식으로 우리 삶의 배경이 될 곳을 틈틈이 상의하고 있다. 법적으로 우리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국가로의 이민(이라고 쓰고 망명이라고도 읽는다) 역시 나이를 먹어갈수록 지속해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2018년

내 동네

일단 정주 생활에서 느끼는 큰 변화는 바로 ‘내 동네’가 생겼다는 점이다.

처음은 내가 머무르는 곳을 둘러싼 근방의 인식이다. 내 거주지를 중심점으로 해서 도서관, 주민센터, 보건소 같은 공공기관부터 내가 주로 여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운동 시설, 싱싱한 식재료를 산책 중에 살 수 있는 동네 마트와 빵집, 주말 아침을 보낼 수 있는 카페를 하나둘 발견하게 된다. 한곳에 머무르는 시간의 흐름과 비례해 그 장소들과 나를 잇고 있는 선들이 더 견고해지고, 연결선이 계속해서 생겨나면서 조금씩 더 영역 안의 공백이 메워지며 점점 하나의 면으로 내 동네를 인식하게 된다.

보통 거주자가 인식하는 동네 영역은 친밀한 생활의 영역, 안전하게 느끼는 영역, 기초적인 생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는 영역, 이웃들과 공유하는 시설이 있는 영역, 소속감을 느끼는 공동체의 영역 (고기웅, 황동은, 성주은(2022). 거주민의 동네 영역 인지와 가로 특성 간의 관계) 등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고 하는데, 이제는 조금씩 소속감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생활편의를 위해서라도 내 거주지 근방을 탐색하고 인지하는 과정을 거치는 건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내가 언제 여기를 떠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예전엔 작업 일정에 맞추어 또는 비자 같은 행정적 제약 때문에라도 내가 그 장소에 머무를 수 있는 시한이 대략이지만 정해져 있었다.

지금은 떠나는 시점이 정해져 있지 않을뿐더러, 원하면 얼마든지 오랜 기간 앞으로도 이곳에 머무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머무르는 이 동네가 나는 여러모로 마음에 든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가 살아갈 곳, 내 동네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애착이 생기기 시작한다. 머물렀다 떠나갈 사람이 아니니 더욱 그렇다. 산책할 때마다 보이는 동네 구석구석의 변화가 눈에 들어오고, 동네 소식을 이것저것 찾아보고 알아보게 된다.

 

단골 가게

예전에도 매번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각종 편의시설과 내가 이용할 협업 공간, 카페, 마트, 세탁소 등을 첫 한 주일 안에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당시와 지금이 다른 점은, 예전에는 단순히 용도별 목적별로 시설을 파악하고 방문했다면 지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당 시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여 축적하고, 때로는 느슨한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 동네의 한 빵집은 가을과 겨울에만 한정 메뉴로 단호박빵을 만들어 내놓고, 특정 요일에는 할인 판매를 한다. 예전에는 생각도 안 했던 마일리지 적립을 이 빵집에서 항상 하고 있고(앞으로도 여기에 살 것이고, 계속 이 빵집을 이용할 것이니까), 사장님은 지금쯤이면 내가 단호박빵이나 무화과파이 같은 특정 메뉴만 틈틈이 들러 사간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계실 거다.

거기에 더해 나는 오래된 이 동네 빵집이 젠트리피케이션의 파도에서 꿋꿋하게 살아남길 바라게 되었으며 그런 마음을 담아 근처 다른 프랜차이즈 빵집 대신 이곳에 간다. 그냥 빵집일 뿐인데, 나는 어느덧 이 곳에 대해 아는 것들이 생기고 거기에 한술 더 떠 ‘오래오래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게 단골이라는 개념이 아닐까 한다. 내가 자주 들러 만족스럽게 재화와 서비스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잘 알고 또 친숙함을 느끼며 그곳의 안녕을 바라는 내 단골 가게들이 생겨난 게 정주 생활의 큰 묘미다.

 

운동

20대에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할 생각도 시간도 동기도 장소도 기회도 없었다. 머무르는 도시에 서핑 스팟이 있으면 하루가 멀다고 최대한 많이 서핑을 하긴 했으나, 그게 끝.

일단 그때는 필요성을 크게 못 느꼈고(언제까지나 그렇게 팔팔할 줄만 알았지), 무엇보다 핑계 같기도 하지만 나름 내게는 크리티컬 했던 것이 그 어느 곳도 장기간으로 등록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것저것 따져가며 가입비&입단비 내고 등록해봤자 정말 짧으면 몇 주면 안녕이고, 도시를 한 번 옮길 때 필수적으로 리서치하고 준비해야만 하는 것들이 이미 많은 상황에서(집 알아보고 계약하기, 항공권 끊기, 협업 공간 등록 기타 등등) 여기에 운동 시설을 찾고 등록하기까지 추가하는 건 버거웠다.

그러다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한참 하면서 재활 운동을 시작했고 회복 후에는 헬스보다는 좀 더 레저, 스포츠의 영역에서 함께 오래 같이 갈 운동을 탐색하기 시작했다(헬스 좋은 건 재활 운동 거치면서 절절하게 절감하였으나 꾸준히 해나가기에는 재미가 없었다). 그렇게 몇 년 전에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을 발견했고 운 좋게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꾸준히 다니게 되었다. 작년에는 또 다른 재밌는 운동도 하나 더 발굴해서 같이 해오고 있다. 몇 년에 걸쳐 꾸준히 수련과 단련, 훈련의 영역으로 운동을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게 바로 내 동네, 단골 가게와 더불어 디지털 노마드로 영화 만들고 책 쓴 사람이 느끼는 또 다른 정주 생활의 엄청난 이점이다. 앞으로 또 어떤 운동을 만나게 될지, 이 동네와 나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기대가 된다.

 

*덧: 사실 이 글은 내가 지금 하는 운동에 관한 포스팅의 서문이었다. 항상 그렇듯이 쓰다 보니 서문이라기에는 자꾸만 길어져서 그냥 별개의 포스트로 빼다 쓰게 되었다. 해서 다음 글은 몇 차례에 걸쳐 운동 이야기가 될 예정.

*덧2: 썸네일 이미지는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원래 세로로 찍은 필름 사진인데, 포토샵에 업데이트된 영역 채워넣기 기능을 활용해 가로로 만들었다. 왼쪽 상단의 차가 다소 길어졌으나, 없던 뒷바퀴가 생겼는데 썸네일 정도로 쓰기에는 무리가 없을만큼 상당히 자연스러워서 새삼 놀랐다.

Before
After / 놀랍다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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