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범죄 다큐 작업기(3) 제작사는 뉴욕에, 나는 한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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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V

Field of Vision 은 이베이 공동 창업자인 피에르 오마디아가 설립한 First Look Media 산하의 다큐멘터리 제작사다. 여러모로 독특한 이력과 운영 방식을 가지고 있는데 자세한 건 박상현님의 오터레터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니 일독을 추천한다.

Field of Vision(이하 FOV)은 커미션 베이스, 즉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질 토픽을 내부에서 결정한 다음 그 건을 맡아줄 감독을 직접 물색해서 섭외하는 식으로 일을 한다. FOV가 만든 다큐멘터리 중 유일한 한국 프로젝트인(지금은 내 작업과 함께 총 두 건인)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부재의 기억(In The Absence)’ 역시 그렇게 제작되었다. FOV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촛불 시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 했고, 이를 맡아줄 감독을 찾다가 이승준 감독에게 연락하게 되었으며, 기획을 가다듬는 과정에서 주제가 바뀌어서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고 전해 들었다. 부재의 기억은 2019년 기생충과 함께 아카데미 수상 후보에 올랐다. 

우리는 이미 기획은 물론이고 개발 단계가 다 끝나서 초기 촬영이 시작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승준 감독에 비해 내 필모그래피는 비교도 안 되게 아담하기 그지없었다. 개발 자금을 지원해 준 단체 관계자분이 일단 꼭 한번 제안서를 넣어보길 권했고, 감사하게도 따로 FOV에 언질도 해주셨다. 나는 네 장짜리 문서를 수십번 고치고 다듬은 끝에 FOV 측으로 보냈다.

J의 사건이 있은 지 딱 일 년이 지난 2019년 여름, 영국 국가 번호로 갑자기 전화가 걸려 왔다. 아무 생각도 못 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FOV의 공동 창업자 샬롯(Charlotte Cook)이었다. 일단 어마어마하게 놀랐지만 동시에 ‘일단 뭔가 됐다’ 싶어 기뻤다. 샬롯은 Jieun(당시 이 다큐의 가제였다) 프로젝트의 현재 진행 상황 등 몇 가지를 물었고 FOV가 함께 할 의향이 있으며, 디테일을 논의할 수 있도록 스카이프콜을 잡자고 했다. 그 이후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계약서를 작성하고, 온보딩 과정을 거치고, 제작비가 입금되고 드디어 프로덕션이 시작되었다. 

 

프로덕션

최종적으로 불법촬영 범죄 피해를 경험한 두 명의 인물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번갈아 가며 등장하게 되었는데 J는 이미 기획 단계부터 함께 하고 있었고 은수님(이하 P)은 그 후에 만났다. 초기 촬영을 하던 2019년 봄, 대학 재학생인 지인의 도움을 받아 대학생 커뮤니티에 인터뷰이를 찾는 글을 올렸고 P로부터 메일 회신을 받았다. 당시 P가 다니고 있던 학교 근처의 카페에서 처음으로 그를 만났고, 그렇게 P의 이야기 역시 함께 담게 되었다. 

그 외의 인터뷰이로는 범죄학자, 경찰관, 국회의원 등이 있는데 개 중 가장 섭외에 난항을 겪었던 것이 바로 범죄 분야의 연구자였다. 범죄심리학, 범죄학 등의 방면에서 이미 언론 노출이 있던 분들을 대상으로 섭외를 진행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거듭 좌초되었다. 마침내 섭외하게 된 분의 섭외 스토리는 꽤 독특한데, 한 지인이 내게 알려준 범죄학 관련 팟캐스트를 듣고 그 팟캐스트의 진행자분을 찾아 극적으로 섭외가 이루어진 케이스였다(지금은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소속으로 활발히 연구하고 계신다). 

다른 인터뷰이들의 섭외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관련 법안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국회의원 역시 섭외부터 촬영까지 모두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나, 후반 작업 과정에서 몇 가지 고려할 내용이 생겨 제작사와의 논의 끝에 아쉽게도 최종본에는 포함시키지 못했다. 

총 열세 차례의 촬영이 진행되었다. 2018년 10월 1회차 촬영을 시작으로 2019년 12월 11회차 촬영까지 촬영 진행 후 편집을 진행하면서 추가로 두 차례 더 촬영을 진행했다. 11회차 촬영은 이날 일촬표를 보니 하루에 홍대 근방, 신촌역, 인왕산의 범바위와 매바위(인서트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전경이 필요했다), 녹사평역, 삼각지, 이수역, 효사정, 그리고 다시 삼각지로 돌아와 밤 촬영까지 했다. 촬영 당시에는 이것저것 챙길 것도 워낙 많고 해서 힘든 건 물론이고 정신이 없었던 것 같은데 사실 지금은 그런 부분은 잘 기억나질 않는다. 촬영 내내 김민주 촬영감독님과 붙어 다니며 더 끈끈해졌던 추억들, 그리고 귀한 시간과 이야기를 나누어준 인터뷰이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깊이 남는다. 

김민주 촬영감독님과 인왕산에서
서울지방경찰청 촬영 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지은님, 나, 촬영감독님, 은수님, 박하연 경위님과

 

포스트 프로덕션

2019년 하반기부터는 편집이 시작되었다. 편집은 여러 드라마와 영화 작업으로 경험이 많으신 권은지 편집자님께서 맡아 주셨다. 일 년 동안 약 다섯 차례에 걸쳐 편집본을 제작사와 공유했고, 버전별로 제작사의 피드백을 전달받았다. 피드백 노트가 올 때마다 나와 편집자님은 매번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꼼꼼한 데다 ‘이게 정말 맞는지?’ ‘이게 최선의 선택인지?’와 같은 질문을 지금 눈앞에 놓인 편집본을 보며 던질 수밖에 없게 했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나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J와도 노트가 올 때마다 같이 머리를 싸매며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걸까..’를 함께 고민하곤 했다. 

편집자님과 함께 한 편집실 생활

편집 작업이 진행될 동안 김수정 작곡가님께서 버전별로 편집본을 체크해가며 영상에 함께 할 음악을 만들어주셨다. 이 영화에 사용된 모든 음악이 김수정 작곡가님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신기한 것은 클라이막스인 시위 씬에 등장하는 음악이, 바로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뚝딱 만들어졌다는 거다. 소위 ‘영감님이 오신 것’ 같다며 작곡가님은 ‘그냥 한 번에 나와서 바로 다 썼어요, 이렇게 한 번에 나오는 애들이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엔딩곡 역시 마찬가지인데 내가 레퍼런스로 드린 곡은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엔딩곡 “Main Theme (Piano Solo)”였다. 레퍼런스와 함께 전달드린 톤앤매너 가이드는 ‘뭔가 서정적이고 따스한 것 같으면서도 불안하고 처연하고 살짝 어두운 감이 있게 해주세요’ 이런 거였다. 그리고 이렇게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접수하신 작곡가님이 이걸 또 해낸다. 직접 피아노곡으로 연주까지 해서 완벽하게 만들어 주셔서 거듭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김수정 작곡가님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두 메인 인물 J와 P의 인터뷰 촬영본은 정석적인 인터뷰 컷을 원하지 않는 제작사의 의견에 동의하여 접어두고, 좀 더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거듭 재촬영을 거쳤다. 스토리라인 역시 대폭 수정되었는데 언론사의 불법촬영 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세부 내용 같은 부가적인 내용은 덜어내고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었으며 클라이막스인 시위를 기준으로 이야기 배열을 고르고 또 골랐다. 제작사와의 회의 내용에 따라 정리된 수정 사항을 편집자님께서 열심히 그다음 편집본에 녹여내고, 필요한 부분은 촬영감독님과 함께 추가 촬영을 하는 동시에 나는 각종 자료들에 파묻혀서 이를 확보하고 정리하고 더블체크했다. 

첫 번째는 불법촬영 사건의 타임라인 정리 및 그 과정에서의 각종 통화 녹음본과 같은 자료들의 정리. 특히 사건 발생 이후의 J와 경찰관 간의 통화 녹음본을 듣고 또 들어야 했다. 편집본에 들어갈 구간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기 때문인데, 사건의 당사자가 느끼는 고통이 그대로 전달되어 들을 때마다 마음이 상당히 힘들었다. 통화 녹음본은 담당 변호사님과의 상의를 거쳐 별도의 음성변조 처리 없이 그대로 삽입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J의 사건은 국내외 언론에도 보도되었기에 다른 사건을 다룬 보도 영상 한 건과 더불어 총 두 건의 뉴스 영상 구입 역시 필요했다. 30초 이내 사용을 조건으로 수백만 원 가량의 사용료를 내고 사용 허가를 받았다. 예전에 한 지상파 방송사(이번에 영상을 구입한 곳은 아니다)에서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 내 다큐멘터리의 트레일러를 무단으로 사용했던 일(심지어 영화 관련 이야기도 아니었다. 아무 관계 없는 내용에 출처 표기도 없이 단순 자료 화면으로 사용했다)이 떠올라서 ‘아 지상파..’ 하며 새삼 스스로 뒤끝이 좀 길구나 싶었다(해당 사건은 내용증명을 보낸 후에 구두 사과/웹사이트에 일정 기간 사과문 게시/해당 방송분 인터넷 다시 보기에서 내리기로 갈무리되었다)

두 번째는 각종 통계. 영화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몇 개의 문장으로 갈무리된 통계 내용이 텍스트 카드로 화면에 등장한다. 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자료들은 아래와 같다. 볼드 처리한 두 건이 특히 큰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는 기존 판례 체크 및 J에게 일어난 사건의 재판 과정 팔로잉 업이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으로 같은 기간에 진행된 다른 사건들의 판결문을 모두 체크했다. 사건은 모두 각양각색의 장소에서 천편일률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많아도 너무 많다. ‘요즘 여자가 살기가 얼마나 편한데?’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수적으로 1일 1건 열람을 시켜야 한다고 본다(법원 홈페이지에서 관련법령란에 죄목을 넣고 검색해 보시길. 간단한 실명 확인만 하면 조회 가능하다. 한 건당 열람료는 천 원이다.

지하철, 화장실, 병원, 소매점, 집, 숙박업소 등지에서 길거리를 지나치는 행인부터 일상에서 마주치는 서비스직 직원, 연인까지 그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에겐 항상 마치 짠 듯이 더없이 관대하고 후한 판결이 내려졌다. J에게 일어난 사건의 담당 판사였던 박용근 판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박용근 판사가 불법촬영범죄 사건에 어떤 판결을 내리는지 2018년 9월 사건부터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열람신청하여 확인했다. 단 한 건도 빠짐없이 모두가 집행유예, 벌금형이었다. 

이사를 하고 병원에 다니고 상담을 받고 숨어 살고 자살 시도를 하는 피해자와는 달리 가해자의 일상에는 실금 하나 가지 않았다. 심지어 지하철, 카페, 미용실 등 말 그대로 일상의 모든 공간에서 불법촬영을 해대고, 확인된 것만 50차례가 넘는 가해자에게까지도 집행유예라는 지극히 자비로운 판결이 내려졌다. 양형 사유에 단골로 등장하는 멘트는 이 두 가지였다. 

–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고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 점
– 피고인에게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진지하게 이런 시스템을 가진 사회, 국가가 굳이 존속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을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던 시점이었다. 

J에게 일어난 사건의 가해자는 확인된 것만(어디까지나 ‘확인된’ 것만) 35차례가 넘는 불법촬영범죄를 저질렀다. 버스 정류장, 길거리의 벤치, 지하철역, 지하철 안, 편의점, 장소도 대상도 각양각색이었다. 말 그대로 숨 쉬듯이 여성을 대상으로 불법촬영을 해댔다. 알고 보니 이미 동종범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적까지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무려 가해자의 약혼녀라는 사람은 ‘비록 의도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피해자님들에게 잘못을 했다’라며 변호사를 통해 선처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재판 시작 당시부터 나는 영화의 끝은 이 사건의 재판 결과로 마무리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공판에 참석했다. 지켜보는 내가 이럴진대 당사자의 마음이 그 기간 내내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한 여름날, 판결이 내려졌고 이는 그대로 영화의 엔딩이 되었다. 여러모로 잊을 수 없는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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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촬영범죄 다큐 작업기(4) 세계 여성의 날, 타임지에 공개되다‘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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