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반구에 위치한 호주는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로 돌아간다. 해서 3월 막바지인 지금 거리의 매장에는 가을 신상품들이 벌써 쇼윈도를 장식하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마음이 급해져서 요즘은 못해도 하루에 한번씩은 꼭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익숙해질수록 바다의 무서움을 체감하고 있다.

    수영은 어릴 때부터 배웠고 원래 좋아 했지만 바다수영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도 바다에서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깊이에 있을 때 파도가 계속 몰아칠 때면 덜컥 겁이 날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이제까지 나는 바다의 반의 반의 반도 제대로 즐기고 있지 못했던 거구나 싶다.

    요즘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이제껏 얼마나 바다에 대해 무지했는지에 대해 실감하며 파도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바람에 따라서 바다가 얼마나 급작스럽게 변할 수 있는지, 때때로 출몰하는 해양생물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뒤늦게 조금씩 배우고 있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바다 상황을 체크하고, 낯선 해변에선 현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해류(current)를 특히 조심하며 해류에 휩쓸리면 직각으로 맞서지 말고 일단 옆으로 방향을 틀어서 천천히 해변으로 돌아 나오라는 충고를 미리 들었지만 해류를 몸으로 겪어보지도 못한 내가 뭘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 알 리가 없다.

    한번은 아무 생각 없이 수영을 하다 갑자기 강한 물살에 휩쓸리면서 아무리 팔을 저어도 해변에서 자꾸만 멀어지는 상황에 맞닥뜨렸는데 순간 패닉에 빠지면서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내가 소리를 지르면 사람들이 듣고 와줄까 하는 생각들이 그 짧은 순간 머릿속에서 엉켜 돌아갔다. 팔을 젓는 걸 멈추고 소리를 지를까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에 그대로 바다 밑으로 내동댕이쳐질 게 뻔해서 소리도 못 지르다가, 잠시 파도가 멈췄을 때 허겁지겁 미친 듯이 헤엄쳐서 발이 바닥에 닿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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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문한 서핑 보드도 도착했겠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연습할 수 있을 만큼 해야겠단 생각에 연습용 보드를 들고 바다에 들어가서도 끊임없이 여기저기 부딪치고 구르고 깨지고 있다.

    잠시 정신을 놨다가 파도에 정통으로 맞고 내동댕이쳐지면 세탁기 속에서 빨랫감이 도는 모양새로 파도 속에서 데굴데굴 구르게 되는데, 한번은 그러다 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았다. 아무리 모래바닥이라지만 눈 앞이 핑 돌면서 혹여 그 자리에 바위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니 아찔했다. 보드에서 떨어질 때 잘못 떨어져 발가락이나 발목을 삐는 건 예사고, 물 속에서 보드와 혼연일체가 되어 구르다가 보드에 박고 입술이 찢어지고 턱에 멍이 들어 한참 얼얼하기도 한다. 그러고 난 다음날에는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밤새 누군가한테 시원하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온 몸이 쑤시는데, 맨소래담을 여기저기 바르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멍하니 생각해보기도 한다.

    푸르게 펼쳐진 바다에서 돌고래처럼 자유롭게 파도 사이를 노니는 현지인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바다와 함께 자란다. 이 그림같은 풍경 뒤에는 가정과 학교에서 오랜 시간 동안 받게 되는 바다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꼼꼼한 교육이 존재한다. 한국의 학생들에게 영어를 배우는 것이 필수인 것처럼 여기서는 학교에서 수영을 필수로 가르친다. 수영뿐만 아니라 바다의 위험성과 지켜야 할 안전수칙, 파도를 보는 법, 그리고 위급상황 시의 대처방법까지 꼼꼼한 지도를 받으며, 어지간한 해변에는 노란색과 빨간색이 섞인 깃발로 해수욕 구역이 지정되어 있고 그 바로 앞에 제트스키와 함께 구조대원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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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는 달라도 참 많이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 이제 막 바다에 뛰어드는 나로서는 매사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 좀 더 바다를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고, 언제 어디서나 방심과 자만은 금물임을 되새기고 있다. 바다는 절대 사람이 이길 수 없는 대상이라는 걸 염두에 둘 때, 그만큼 바다를 즐겁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내일은 집 바로 앞 해변에서 서핑 챔피언십 경기가 개막한다. 일주일 동안 경기를 직접 볼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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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만듭니다. OPEN SHUTTERS, One Way Ticket, Feminism Reboot 감독. '디지털 노마드,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남해의봄날 출판) 저자. 프로필&컨택 *본 블로그 상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합니다. 다큐멘터리 관련 사진 및 영상은 모든 저작권이 제게 있으며 이 역시 사전동의 없는 인용 및 2차 가공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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