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일상의 한부분이 된 서호주의 바다

서호주 특유의 모든 것에 무심한 듯한 이 분위기는 이제껏 마음에 낀 찌든 때를 씻어내 주는 것 같다.

홀가분하면서도 뭔가 심심한, 모호한 상태일 때 드디어 호주의 자연을 만났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각양각색의 동물들. 어디에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해안과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 그리고 운 좋게도 아름답다고 소문난(덕분에 휴일에는 어느 정도의 관광객을 피할 수 없는) 해변 바로 앞에 살게 되면서 이런 생활을 좀 더 가까이서 맛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최근 공휴일이 겹치면서 여기서 말하는 long weekend를 보냈다. 덕분에 하루 일과가 해변에서 시작해서 해변에서 끝나는 생활이 며칠째 이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비치타올과 물을 챙겨들고 해변으로 향한다. 털레털레 5분 남짓 걸으면 나타나는 바다. 아침 일곱시 경에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서핑 레슨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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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주문한 보드는 언제 도착하는 건지, 보드 렌탈숍은 일러도 9시에나 문을 연다. 파도 속의 서퍼들을 구경만 하다 물에 뛰어들어 어설픈 바디서핑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대강 빵 한 쪽을 먹고 햇살이 강해지기 전에 한번 더 바다에 다녀오고 나서야 샤워를 하고 그제서야 사람꼴이 된다. 그리고 이쯤되면 엄청 배가 고픈 상태이기 때문에 점심을 아주 거하게 먹게 된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 시계를 보면 네다섯시. 일몰 전에 얼른 바다에 한번 더 갈 타이밍이다. 서호주다 보니 바다에서 일출을 볼 순 없지만 그 대신 숨이 턱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일몰을 매일 볼 수 있다. 한참 놀다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며 바닷물에 비친 붉은 햇살에 몸을 담그는 건 이전까진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상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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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해 저편으로 어느새 뜬 달을 한참 바라보다가 파도가 덮쳐오면 이 때다 하고 파도 속으로 몸을 날린다. 파도 아래로 덕 다이브를 흉내내며 깊게 들어갔다 다시 올라오는 것도 재밌지만 다가오는 파도의 타이밍에 맞춰 같이 팔을 휘저으면서 파도에 몸을 싣는 바디서핑도 만만치 않게 재밌다. 후자의 경우에는 옆사람들을 보며 어깨 너머, 아니 파도 너머로 배우고 있는건데 타이밍 잡기가 영 애매할 땐 그들이 이 때다 하고 몸을 날릴 때 얼른 나도 그 대열에 동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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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은 이른 아침 수영을 하다 말고 꽤 가까운 거리에서 수면 위로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진회색 생물체를 발견하고는 순간 저게 말로만 듣던 상어인가 싶어 기겁한 적이 있었다.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 저기 물개가 있다고 소리를 치기에 다시 한번 쳐다보니 세상에 내 눈 앞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저 생물체가 정말 물개인건가? 믿어지질 않았다. 물개는 내게서 5미터 정도 떨어진 곳까지 와서 물 속을 누비다 어느 순간 사라졌다. 멍하니 바라만 보면서 그 찰나의 순간에 태어나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생각해 보면 이제까지 바다가 이렇게 내 일상에 가까웠던 적은 처음이다. 갑자기라면 갑자기 결정된 호주행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하루하루가 펼쳐지면서 다시 한번 살아있음에, 이 경이로운 것들을 매일같이 누릴 수 있음에 감탄하고 감사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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