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과 2024년 그 사이, 나와 세상에 일어난 변화 5가지 (1)

2023년 겨울, 새해가 오기 전에 마쳐야 할 일 리스트에서 가장 위쪽에 있던 게 바로 블로그 재정비였다.

여기는 지난 몇 년간 글은 쓰지 않았으면서도 매년 꼬박꼬박 도메인과 호스팅 비용을 결제하고 올해에는 반드시 내년에는 반드시, 하며 놓지 못한 곳이다. 내가 그간 해온 작업의 기록이 이 블로그라는 공간이 있기에 정돈된 형태로 차곡차곡 쌓일 수 있었고 그렇게 쌓인 기록을 통해 기고를 포함한 여러 작업 의뢰를 받았으며, 또 블로그에 작성한 글을 토대로 첫 책의 집필이 시작되기도 했다.

똑같은 기록도 나만 볼 수 있는 일기라는 형태로 기록하는 것과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말 그대로 누구든 볼 수 있게 웹상에 남기는 기록은 많은 면에서 다르다. 사적인 기록이지만 이왕이면 공유할 가치가 있는 내용일수록 좋고 기본적인 맞춤법은 물론이거니와 글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수반되며, 웹이기에 활용 가능한 텍스트 이외의 멀티미디어(사진, 영상 등) 그리고 관련된 내용의 하이퍼링크가 함께 하게 된다.

이런 노력은 일기를 쓸 때는 내가 그다지 기울이지 않기에 어찌 보면 반강제적으로 추가적인 노력이 수반되는 블로그 덕분에 그나마 구색이 갖춰진 형태로 내 기록이 온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2024년에는 반드시 블로그에 기록 남기기를 다시 시작하리라 마음먹고 보니 마지막 글이 무려 2019년 1월 20일 자 글이다. 저 때부터 낌새가 보였던 위워크는 5년이 지난 지금 파산 위기에 몰려 있다.

변화가 일어난 건 위워크뿐만이 아니다. 세상에도, 내게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해서 내 블로그에 남아 있는 5년의 공백 사이에 나이테 몇 개라도 그어보는 마음으로 적어 보는 글이다(방금 새삼 깨달은건데 첫 글 발행이 2014년이니 블로그 시작한지 어느새 10년이 되었다. 그 중 딱 절반인 5년이 비어 있지만). 어디까지나 좁디좁은 내 영역 반경 내에서 관찰한 것들인데 이것도 몇 년 지나서 다시 보면 ‘내가 이 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며 새삼 낯설어하게 될 거다.

 

변화 1. 텍스트를 밀어낸 영상

블로그, 더 나아가 텍스트 기반 콘텐츠의 소비자가 대폭 줄어들었다. 아니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콘텐츠 만드는 사람으로서 200X~201X 중 어느 때에 내가 인터넷 없는 오지 산속에 들어갔다가 2024년에 속세로 돌아온다면 가장 체감하는 변화는 바로 영상 콘텐츠의 시장 장악일 것이다. 지극히 간단한 궁금증(전자기기 오류 메시지 해결 방법이라던가 양파 보관법 같은)에 대한 해결법이 지식인과 블로그로 대변되던 텍스트가 아닌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이라니 이건 나 말고도 경악하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스크롤 몇 번 내리면 몇 초 만에 찾을 수 있는 답을, 아무리 2배속으로 돌린다고 해도 몇 분짜리 영상으로 보고 있어야 한다고? 답이 나올 때까지 구간 점핑을 해가면서? 이제는 유튜브 영상 요약 AI 서비스가 나오고 있는 판인데 그럴 거면 글로 보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이제는 그 유튜브마저 쇼츠의 인기가 자사의 긴 동영상 사업을 잠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전체 영상 조회수의 88%가량이 쇼츠에서 오는데 길이가 짧은 쇼츠 영상에는 광고를 삽입하기가 녹록지 않고, 그러다 보니 광고 수익까지 줄고 있는 상황이다. 릴스도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내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외주 작업을 주로 하는 나 같은 영상 작업자 입장에선 사실 좋은 일이다. 관공서도 행사 하나 하면 필수적으로 소셜 미디어용 영상 제작을 예산에 넣는 시대다. 물론 양적 팽창은 필연적으로 가격의 하락 및 질적 저하를 불러오지만, 이것도 영상 퀄리티에 신경을 쓰는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차별화가 가능한 부분이다.

그리고 클라이언트 중 혹시라도 누가 볼까 살짝 걱정되긴 하지만(항상 감사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정작 만드는 나는 쇼츠, 릴스 소비를 안 한다. 외주 작업할 때 레퍼런스 체크 용도로는 꼼꼼히 보고 있는데 이건 내 외주 작업이라는 틀 안에 들어가 있는 업무의 일부다. 일하는 시간 이외에 굳이 소비해야 할 이유를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 유튜브 긴 영상은 그래도 소비하고 있는데 작년까지는 구독 채널 하나 없이 배경 음악 틀어두는 용으로 쓰다 올해 들어 주로 지상파 방송의 뉴스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등을 라디오처럼 틀어두는 용으로 쓰고 있다(이마저도 TV 송출 콘텐츠의 일종의 재방송을 보는 용도로 활용하는 거라 오리지널 콘텐츠들도 이제는 좀 보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손이 잘 안 간다. 볼 시간도 잘 없고).

일단 초창기에는 유튜브의 경우 영상은 그럴듯해도 오디오가 최소한의 가공도 안 되어 있는 날 것의 콘텐츠가 대다수라(이건 팟캐스트도 마찬가지였다) 귀가 아파서 소비를 시작할 엄두를 못 냈다. 물론 지금이야 많은 채널이 상당 수준의 촬영 스튜디오와 제작 능력을 구비하고 있다지만, 워낙 텍스트 기반 콘텐츠를 좋아하고 익숙하기도 해서 처음부터 이것저것 보는 루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조회수의 가치가 어마어마해진 시대에 발맞추어 생겨난 최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많은 경우 자극적이고 흥미 유발에 초점을 둔 썸네일과 타이틀 제작의 미학 역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여러 통계만 봐도 순전히 내가 시대를 따라잡지 못한 것 같고, 대세는 바뀐 게 맞다.

Social media video statistics (sproutsocial.com)

그렇다면 영상 콘텐츠가 세상을 장악한 지금 자연스레 텍스트 콘텐츠의 창작자도 줄어들었을까? 최소한 내가 느낀 바로는 아니다. 텍스트 콘텐츠 창작자들은 홍대를 떠나 망원, 상수로 간 예술가들처럼 자리를 옮겨갔다. 그들이 옮겨간 동네에는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밀리의 서재(메인은 전자책 플랫폼이지만 ‘밀리 오리지널’은  브런치의 브런치북과 같은 작가 양성 역할을 함께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브런치와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상대적으로 쉽게 읽히는 글들이다), 북저널리즘(자체 에디터들이 기사글 형식의 글을 발행하고, 각 분야 전문가의 원고를 받아 매달 책으로 출간하고 있다), 퍼블리(직무 기반 스킬 및 경험 공유 콘텐츠) 등의 유료 플랫폼과 각종 구독형 뉴스레터를 소비하는 소비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글을 읽으며 살고 있다.

티스토리도 이글루스도 추억의 저편으로 넘어간 지금(티스토리는 카카오 서비스로 통합되었고, 구글 애드센스로 도배된 부동산 이야기가 올라오는 수익형 블로그의 온상이 되었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무려 돈 받고 강의까지 하는 ‘chat GPT를 활용한 수익형 블로그 만들기’ 같은 것들로 인해 자동생성된 질 낮은 글이 검색 결과의 오염도를 한층 높이고 있다) 블로거도 개인 블로그에서 구독 시스템과 각종 통계를 지원하는 유료 플랫폼으로 옮겨갔다(오터레터와 이충재인사이트를 서비스하는 블루닷 등이 있다).

광야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블로거들도 아직 몇 있으나(‘Sovidence 블로그‘하면 아는 사람들 많을, 김창환 교수님 같은 경우는 엄청나게 대단한 케이스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연구 관련 양질의 귀한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런 케이스를 제외하면 이제는 시간을 내어 꼼꼼히 읽어볼 정도로 어지간히 괜찮은 글은 모두 유료이고 구독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네이버 블로그 화’ 되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한국 블로그 생태계뿐만 아니라 검색 시장부터 대중의 뉴스 소비 방식까지 완벽하게 망친 1등 주범이 나는 네이버라 생각한다.

당시 글 좀 쓴다 하는 블로거들과 포스트 하나 올리면 몇 천 건은 기본으로 공유 회수를 찍던 페이스북 유저 중 아직 활동하는 이들은 모두 저 동네로 넘어갔다. 2018년 정도까지만 해도 미디어 업계 종사자들과 항상 했던 이야기가 ‘한국에서 과연 페이월(paywall) 모델이 먹힐 수 있겠느냐’였다.

당시 대다수의 국내 미디어가 소셜미디어, 그중에서도 페이스북에서 바이럴이 되나 안 되나에 목을 매고 있던 시기였는데 그마저 2017년쯤부터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바뀌고 유저들도 감소하기 시작하면서(2017년~2018년 1년 간 국내 페이스북 유저의 페이스북 사용 시간은 약 24% 감소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상당수의 외신이 유료 구독 모델로 전환되었다지만 한국은 절대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콘텐츠에 돈을 쓸 리 없다, 살길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유입과 광고다, 같은 설왕설래가 오갔다.

그리고 2024년 지금 이 달라진 지형도를 보라. 여기에는 최근 잇따른 구독료 인상으로 말이 많지만, 콘텐츠에 비용 지불하기를 일상의 영역으로 들여놓은 넷플릭스를 위시한 OTT의 공이 크다. 그리고 이 와중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나는 따로 호스팅 서비스 쓰면서 개인 블로그를 고집하고 있으니, 역시나 일관되게 시대를 못 따라가는구나 싶긴 하다. 일단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것 정도면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고 스스로 칭찬해 주고 있다.

 

변화 2. 코로나19와 원격근무, 그리고 멀어진 사람들

  • 2019년 12월 중국에서 첫 발생
  • 2020년 1월 20일 한국 확진자 첫 발생
  • 2020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정부 위기 경보 단계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 입국 제한 시작
  • 2020년 3월 2일 위기 경보 단계 ‘경계’에서 ‘심각’으로 격상,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시작
  • 2020년 5월 29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단계적 완화, 잠시 해제 후 2022년 상반기 오미크론 확산으로 인한  재강화, 이어진 단계적 완화 시행
  • 2022년 4월 18일 2년 1개월 만에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완전 해제
  • 2022-2023년 단계적 일상회복 단계

정리를 해보며 새삼 전 세계를 휩쓸고 모든 개인의 일상에 휘몰아쳤던 이 사태의 파괴력이 다시 떠올랐다. 이 사태로 내 삶에 가장 크게 나타난 변화는 봄가을 한국에 머무르던 용으로 구입해 두었던 오피스텔을 처분하고  아예 서울에 눌러살 곳을 찾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무려 각종 가구와 주방 기구, TV를 구입했다. 근 10년 만에 한국에서 춥디추운 겨울을 통으로 났다.

잠깐 지나가겠지 했던 것이 끝날 기미가 안 보였다. 하늘길 바닷길이 모두 끊겼다(이때 내 주변 국제 커플 정말 많이 헤어졌다. 언제나 그렇듯 잠깐 귀국했다 돌아온다는 게 다시 도저히 출국도 입국도 되지 않아 언제 다시 볼 수 있는지도 모르는 채 생이별하게 되고, 그 와중에 쌓이는 갈등과 현실적인 문제들로 관계가 종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나도 이때 자연스레 멀어지거나 아예 단절된 관계들이 있다). 학교가 문을 닫고, 사람들이 고립되고, 일자리를 잃고, 가까운 사람을 잃었으며 그 여파는 취약계층에 더욱 혹독했다.

동시에 책에서도 다큐멘터리에서도 내가 한국에서는 도저히 실행될 기미가 안 보인다고 말했던 재택근무가 한국에서 시작되었다(오토매틱 CEO인 맷 뮬렌웨그도 말했듯, 이런 식으로 시작되길 바란 건 아니었다). 한국은행에서는 재택근무에 대한 디테일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상당히 잘 정리되어 있다, 일독을 권한다.

이 때 MBC에서 <호모언택트>라는 이름으로 달라진 일의 방식에 대해 다뤘는데, 여기에 나가서 이야기한 것도 살짝 공유.

동시에 바야흐로 코스모폴리타니즘, 우리는 하나, 우리 모두가 세계시민이던 시대가 저물었다. 2008년 금융위기부터 내리막길을 걷던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은 게 코로나19 사태가 아닐까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백인 민족주의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트럼피즘과 유럽에서의 극우 정당 득세 등 이미 애초에 숨을 헐떡이고 있던 것을, 이념과 신념의 영역을 떠나 아예 물리적으로 국가 사이를 완전히 차단시켜 버리면서 사장시켜버린 그림이다. 타 인종, 타 국가 사람에 대한 극도의 기피와 혐오에도 불이 붙었다.

지난해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부터 지난 3월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아시아계 여성 대상 총격 테러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에서는 차별과 혐오가 마치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그러하듯 차별과 혐오에 의한 피해 역시 우리 사회의 약하고 소외받는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빈곤 계층과 비주류 인종 등을 중심으로 더욱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팩트’의 뒤에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고, 이들 소외 계층에 대한 주류 사회의 낙인찍기도 덩달아 심해지고 있다.

– ‘차별의 팬데믹’도 이제 그만, 유네스코 김보람 편집장

세계화의 그늘과 폐해가 왜 없겠냐마는, 최소한 인간 평등/다문화주의/그리고 국제연대라는 가치는 제노포비아, 파시즘, 민족단결, 자국우선주의, 배타적 이데올로기 등으로 대변되는 국수주의와 신민족주의에 완전히 그 자리를 내주었다. 단절과 고립이 이 모든 것을 심화시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2019년과 2024년 그 사이, 나와 세상에 일어난 변화 5가지 (2)’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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