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소득(이하 패시브 인컴)’에 대한 이야기가 스물스물 국내에서도 들려오고 있는 것 같다. 이 포스팅은 여기에 대해 좀 더 깊이 이야기를 할 텐데, 이 블로그 글이 대개 그렇듯 상당히 내용이 길어서 두 편에 나누어서 작성했다.
이전 포스팅 “디지털 노마드를 팝니다” 꿈팔이와 사짜들,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서 ‘패시브 인컴의 추종자들’이라는 소제목으로 살짝 관련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2007년 팀 페리스의 책 ‘4시간’을 통해 매우 유명해진 패시브 인컴(passive income)의 대략적인 개념은 이렇다.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수입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개인적인 시간을 더 많이 가지는 것. 위키피디아에서는 passive income의 예로 직접적으로 사업에 관여하지 않고 받는 사업소득, 부동산 임대소득, 도서 저작권료, 인터넷 웹사이트의 광고수익, 배당금이나 이자, 연금 등을 들고 있다.
또다른 예로는, 매일같이 손을 보지 않아도 자동으로 알아서 운영되는 어플리케이션 등을 제작한 뒤 온라인 상에 공개하고, 여기서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소득을 얻는 것 역시 해당되겠다. 일리가 있는 내용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전체적인 부가 증가하면서 노동시간 역시 줄어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진데, 아직도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최소 주 40시간의 노동시간을 요구하는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선 선을 먼저 긋고 시작하겠다. 이 포스팅에서 이야기하는 건 저 위의 내용이 절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반론이 들어올 경우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따로 답변하지 않으려 한다)
위에서 이야기한 본디 패시브 인컴의 개념과는 양적으로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더 많이 웹 상에 퍼져 있고, 심히 뒤틀리고 변질된데다 웹에서 하도 많이 보여서(검색 결과에 나오는 한 게시물을 클릭했을 때 딱 봐도 검색 키워드를 이용한 엉터리 가짜 웹페이지일 때 등) 패시브 인컴의 p 자도 듣기 싫게 만드는, 오늘날의 패시브 인컴 이야기다.
그들이 말하는 ‘so called 패시브 인컴’
바보처럼 주 40시간씩 일하지 말고, 돈이 돌아가는 원리/비법/비밀 등을 알아내서 패시브 인컴의 수익구조를 해킹해서 아주 적은 시간의 노동만 투자하고도 자유롭게 살자(실제로 웹 상에서 볼 수 있는 카피라이트들이다)고 광고하는 이들이 말하는 so called 패시브 인컴(여기서 이야기하는 패시브 인컴과 본디 패시브 인컴 사이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이 포스팅에서 이야기하는 패시브 인컴 앞에는 소위, ‘so called’를 붙이겠다)의 대표적인 수단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드랍쉬핑: 판매와 배송을 분리한 방식으로 판매자는 상품의 판매와 온라인 상에서의 홍보 정도만 하고, 상품의 공급과 배송은 대행사가 대신해주는 형태의 판매방식
- 제휴 마케팅: affiliate marking. 일반적으로 방문자가 한 페이지에서 추천자 코드 등이 들어가 있는 링크를 타고 해당 상품/서비스 페이지로 이동했을 때 페이지 작성자에게 커미션이 주어지는 식으로 많이 이루어진다.
- 어뷰징을 통한 질낮은 온라인 마케팅 & black/grey hat SEO: 어뷰징이라고 하면 국내에서 가장 많이들 떠올리는 게 바로 검색 키워드를 이용한 언론사의 낚시 기사들이다. 이와 비슷하다. 웹 페이지에 해당 키워드를 의미 없이 다수 삽입하거나, 직접적으로는 보이지 않게 흰색 글씨로 도배하는 등의 수법을 많이들 쓴다. black&grey hat SEO에 대해서는 아래 내용 참고
*black/grey/white hat SEO 란?
검색엔진최적화 (SEO: Search Engine Optimization)란 웹사이트를 그 주제와 내용에 알맞게 효과적으로 검색 엔진에 노출될 수 있도록 웹페이지를 구성하는 작업(가장 기본적으로, meta description 작업 등)을 의미한다.
이를 화이트 햇(white hat) SEO라고 하는데, 이와 달리 내용과 상관없는 타겟 검색어를 마구잡이로 넣거나, 숨겨진 텍스트, 또는 링크 팜(link farm: 인위적으로 검색순위를 짧은 시간에 올리기 위해 다른 웹사이트에 대량의 링크를 고의로 걸어놓는 웹사이트 그룹) 등의 스패밍을 통해 검색엔진을 속이는 편법을 쓰는 것을 화이트 햇 SEO의 반대 개념으로 블랙 햇 SEO라고 하며, 이는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행위다.
이 둘 사이에서 편법을 일삼으며 애매한 경계를 왔다갔다 하는 (어뷰징, 댓글 알바, 온라인 마케터들 간의 서로 블로그/웹페이지 띄워주고 공유, 링크 걸기, 가짜 리뷰&후기 올리기, 영양가 없는 포스팅 도배, 포스팅 복제, 댓글 달기 등의 단체 활동 등)을 주로 그레이 햇 SEO라고 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슬라이드 ‘Black Hat vs Grey Hat vs White Hat SEO‘ 에서 참고할 수 있다.
- 다단계/네트워킹 사업: 더 할 말도 없으니 생략한다.
- 정보 상품 판매: 위의 내용 or 기타 정보를 강좌나 이북 등의 형태로 담아 판매하는 것.
위에서 나열한 것들이 국내외 가리지 않고 가장 대표적인 오늘날 so called 패시브 인컴의 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항목들은 하나만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 중 무엇을 하든 나머지가 항상 함께 간다는 점이다. 드랍쉬핑을 할 때는 어뷰징이 필수다시피 하고(드랍쉬핑 강좌에서 아예 이걸 가르친다), 정보 상품을 판매할 때 역시 어뷰징,제휴 마케팅, black&grey hat SEO 등이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을 강좌 등으로 만들어 판매할 때 역시 각종 어뷰징과 black&grey hat SEO 기법 등을 동원하게 된다.
치앙마이로 간 A의 이야기
태국 치앙마이는 매우 특이한 곳인데, 여기서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형태의 so called 패시브 인컴 추종자들의 생태계를 관찰(..이렇게 쓰니 무슨 동물의 왕국 같다)할 수 있다.
자유롭게 주체적으로 자신의 열정을 따라 살고 싶어요? 내 강의를 들으세요. 그나저나, 내 강의를 듣고 디지털 노마드에 대해 알고 싶다면 저기 저 이 유료 세미나에 참가하세요. 세미나를 듣고 나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기 위해 드랍쉬핑에 대해 배우고 싶어요? 여기 강좌가 있어요. 드랍쉬핑을 하면서 세금도 비자 비용도 내지 않고 생활비가 저렴한 이 곳 치앙마이에 최대한 오래 체류하고 싶으세요? 여기 모든 걸 처리해주는 에이전시가 있어요.
자기들끼리 팔아주고 광고해주고 밖에서 ‘뉴비’가 들어오면 골수까지 빨리는 구조다. 그리고 그 ‘뉴비’는 이 생태계의 일부가 되어 다음 희생자를 기다린다. 다큐멘터리 제작 중에, 이 부분을 정말 적나라하게 이야기한 한 인터뷰이가 있었는데 스토리 관계 상 다큐멘터리 완성본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그 이야기에 내가 지금껏 관찰한 내용들을 덧붙여서 아래에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본다.
드랍쉬핑을 통해 더 멋지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보려는 A가 있다고 하자. 여기서 A가 겪게 되는 일련의 전형적인 일들은 아래와 같다.
1. A는 더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온라인에서 정보를 서치하던 중,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추천 받은 드랍쉬핑 온라인 강좌를 1000달러를 주고 수강했다. 강좌를 모두 들은 후 A는 직장을 그만 두고, 소유물을 모두 처분한 뒤 온라인 커뮤니티와 강좌에서 추천받은 대로 치앙마이로 향했다. 한 달에 300~500달러면 살 수 있다고 한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서 일주일에 몇 시간만 일하고도 행복하게 돈 걱정할 생각 없이 해외에서 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2. 온라인 강좌에서 추천받은 에이전시를 통해 지낼 곳과 협업 공간 예약을 완료했다. 오토바이 대여도 포함된 패키지다! 그 온라인 강좌에서 받은 추천인 코드를 통해 상당한 할인을 받았다.(물론 여기서 A가 받은 할인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A가 그걸 모를 뿐) 얼른 페이스북과 트위터 프로필도 digital nomad & entrepreneur 로 바꾸고, 나무가 우거진 쿨한 협업공간 테이블에 놓인 내 랩탑 사진을 찍어 소셜 미디어에도 올린다.
3. A는 강좌에서 배운대로 드랍쉬핑을 하기 위해 적절한 아이템을 생각하다가, 요즘 열풍이라는 셀카봉을 팔기로 한다. 셀카봉을 만드는 회사에 연락해서 내가 네 셀카봉을 판매해도 되냐고 물어본 뒤 커미션 등을 상의하고 계약을 완료했다.
4. 셀카봉을 팔기 위한 웹사이트를 만들고 구글에 검색이 잘 걸리도록 다양한 SEO 기법을 통해 (상당수 위에서 이야기 한 grey&black hat SEO 기법을 사용하거나 또는 이를 대행하는 에이전시 등에 맡긴다) 광고를 시작한다. 일반적으로 여기서 벌어지는 다른 부가적인 일들로는 (1) 패시브 인컴 네트워크의 인맥 등을 이용해 서로가 서로의 상품을 블로그/웹페이지/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마구잡이로 광고하고 가짜 리뷰와 별 5개짜리 후기를 남기기 시작한다. (2)상부상조 정신이 필요하다. (1)번의 네트워크를 이용, 각자가 가진 고객 메일링 리스트 등의 불법적인 교환/거래를 통해 스팸 이메일을 발송한다, 등이 있다.
5. 50달러에 주문이 들어오면 셀카봉 제작 회사에 주문을 넣어서 셀카봉을 그 주소로 배송하게 하고, 회사에는 10달러의 커미션을 제외한 40달러를 지불한다. 매일같이 스팸 메일을 보내고 어뷰징을 하면서, 이게 정말 해도 괜찮은건가, 하고 A는 살짝 걱정한다. 그런데 온라인 커뮤니티든, 협업 공간이든, 치앙마이에서 열리는 각종 모임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는 걸 보게 된다.너도나도 자신을 entrepreneur이자 e-commerce business owner 라고 소개하고, 서로 돕고, 서로 어깨를 두드리면서 우리는 정말 멋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모두 다 같이 성공한 사업가가 되자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A는 이 거대한 자기합리화의 장에 동조된다.
6. 한 모임에서 A는 자신이 수강했던 온라인 강좌를 만든 B를 보게 된다. 그 사람은 이 곳에서는 마치 신처럼 떠받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실은 이 사람이 X라는 사람이 만든 여러 비즈니스들의 바지사장이라고 하고, 실제로 드랍쉬핑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은 얼마 안 되고 온라인 강좌를 팔아서 모든 돈을 버는데다, 이 수익 역시 상당 부분이 X에게 간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B는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이 글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분개한 추종자들은 해당 글로 몰려가 B를 옹호하는 댓글을 끊임없이 달기 시작한다. A 역시 지긋지긋한 회사원의 삶에서 자신을 구원해준 것이 B라고 생각하기에, 마찬가지로 해당 글에 ‘B는 내게 있어 구세주나 다름없으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멋진 사람이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7. 치앙마이에 온지 벌써 세 달째다. 비자런도 한 차례 했다. 세금도 비자 비용도 한 푼도 내지 않고 저렴한 생활비와 현지의 인프라를 즐기며 살다니, 천국같다. 꼬박꼬박 고국에서 세금을 내고 있는 친구들이 바보같이 보인다. A는 지난 세 달간의 멋진 여정을 블로그로 정리해서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블로그에 B의 온라인 강좌 및 각종 에이전시들의 웹사이트로 가는 링크를 넣으면 클릭수에 따라 커미션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A의 첫 블로그 포스팅 제목은 ‘사무실 책상을 벗어나 치앙마이에서 한 달 300달러로 왕처럼 살기’다. (남들은 아무도 모르는 인생의 비법을 나누고 있다는 A의 생각과는 달리 저런 제목의 글은 웹 상에 차고 넘친다: ‘How to live in Chiang Mai on $10 a day‘ ‘Live like a king in Chiang Mai‘ 검색 결과)
8. 이상하다. 얼마 전부터 갑자기 각종 SEO기법을 활용해 구글 검색 결과 상단에 올려놓은 A의 셀카봉 웹페이지가 자꾸만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구글이 양질의 검색결과를 사용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지속적으로 검색 알고리즘을 바꾼다더니, 정말인 것 같다. 온라인 강좌에서는 누구도 이런 이야기를 내게 한 적이 없었다. 검색 결과 첫번째 페이지에 올라가지 못하면서 판매량이 대폭 하락하기 시작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셀카봉이 돈이 된다는 소문을 들은 이들이 죄다 다루는 아이템을 셀카봉으로 바꾸면서 판매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대부분의 so called 패시브 인컴이 그렇듯, 드랍쉬핑 역시 워낙 진입 장벽이 낮으니 아무나 시작할 수 있고, 거기에 경쟁까지 치열해지니 어쩔 수 없이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한 개를 팔 때마다 10달러였던 마진이 7달러로, 5달러로, 점차 줄기 시작했다.
9. 아무리 치앙마이의 생활비가 저렴하다 한들 지금 A의 수입으로는 앞날이 막막해지기 시작한다. 협업 공간 비용도 그렇고, 여러 지출 내역이 만만치가 않다. 절대 예전의 사무실 생활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원격근무 시행 기업들은 자신의 경력으로는 서류도 통과하지 못할 것 같은데다, 프리랜싱을 할 만한 이렇다 할 스킬도 없다. 무엇보다, 일주일에 몇 시간만 일하고도 생계 유지가 가능한 패시브 인컴에 비하면 A에게는 저 나머지 다른 선택지들이 전혀 매력적이지 않아 보인다. 슬슬 저축했던 돈을 까먹기 시작하면서 A는 누구나 열심히만 하면 자신처럼 될 수 있다고 했던 B의 말에 대해 처음으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10. 그러나 이런 생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다음 모임에서 만난 B는 친절하게도 A처럼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자신이 수강생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직접 도와주고 있다며, 자신의 강좌를 온라인에서 홍보하는 일을 맡겨주겠다고 한다. 한 명을 끌어올 때마다 일정 금액을 커미션으로 받기로 했다.
A는 이런 B의 친절이 감격스럽다. 얼른 협업 공간으로 달려가서 책상 앞에 앉아 드랍쉬핑 강좌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심어린 홍보글을 작성하고 싶어진다. 모임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드랍쉬핑에서 방향을 전환해서 요즘 잘 나간다는 ‘라이프 스타일 코치’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난 세 달 간의 한 편의 영화같았던 내 삶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코칭해주는 직업이라고 한다. ‘라이프 스타일 코치’라니! 듣기만 해도 정말 멋진 일 같다. 우선 내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영상을 찍어서 유투브에 올리는 것도 좋은 시작일 것 같다.
다음 편 >>패시브 인컴으로 디지털 노마드가 되세요? 그저 웃지요 ②에서 계속.
3 thoughts on “패시브 인컴으로 디지털 노마드가 되세요? 그저 웃지요 ①”
와우,.. 멋진글 감사합니다.. 이거 실화인가요.. 덜덜
통찰력갑
글 정말 잘쓰시네요 ,, 술술읽혀요 패시브인컴 허상에 대해 다시한번 알게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