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 당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를 허하라

Out of office: people who work wherever they want (자신이 원하는 곳 어디서나 일하는 사람들)

번역해야지, 하면서 꾸물거리다 결국 여지껏 못한 기사다.
원격근무라는게 극소수나 누릴 수 있는 것 아닌가, 멀고 먼 이야기가 아닌가 했던 것이,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숱하게 만나고 직접 내가 이렇게 일하고 살아보면서 사람들이 일을 하고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첨단 기술을 의미하는 디지털에 유목민을 뜻하는 노마드를 합성한 말로 휴대폰과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등과 같은 첨단 디지털 장비를 갖추고 장소에 구애 받지 않은 채 일하는 사람들을 의미

 

나는 개인적으로

20대여 도전해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현재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박차고 뛰쳐 나가서 꿈을 이뤄라!

류의 멘토링이 상당히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개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가해지는 일종의 꼰대질과 다를 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천성적으로 인간은 B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A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이는 어지간해선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인간의 생존 본능과도 직결된 것이고, 떠나라!를 거듭 말하는 소위 멘토, 오피니언 리더들 역시 마찬가지다.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 자기 발전이 없다, 회사의 부품같다, 하면서도 선뜻 회사에서 나가지 못하는 P씨는 자신이 회사를 나가면 자동차 할부, 월세, 카드값 등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고, 다른 회사로 옮기더라도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을 거라는 판단 하에 회사를 나가지 않는다.

삶이 지루하다,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 여행을 하고 싶다, 하면서도 선뜻 비행기표를 끊지 못하는 T씨는 부족한 언어가 마음에 걸리고, 당장 이동에 수반되는 비용으로 인해 지금보다 환경이 열악해질 수 있는 위험성, 그리고 낯선 환경에서 아는 이 없이 하루하루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 등이 지금의 지루하고 변함없는 상황보다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쪽을 선택한다.

B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안개처럼 희미하거나, A라는 현재 상황보다 더 나을 거란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도전하라! 무조건 뛰어들어라! 같은 말들은 효용이 없을 뿐더러 어불성설이다.

내 경우도 복잡한 가정 환경 때문에 A라는 이미 처해 있던 상황이 바닥이었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고, 어딜 가든 지금보다는 나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B라는 낯선 선택지, 즉 중국의 대학교로 움직인 것이지 특출나게 모험심이 있다거나, 외국어를 이미 유창하게 구상할 수 있었다거나, 돈이 있었다거나, 야심이 있다거나 한 것과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 바로 이게 자신이 새로운 선택을 하고 나서 마치 이것이 자신의 툭출난 재능 덕분인 양 행동하거나,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소재로 삼는 사람들을 내가 신뢰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그렇게 한번 밖에서, 가족이나 기타 기댈 곳이 전무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스스로의 판단과 직감에 의지해 살아가는 경험을 해보니, 생각보다 B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괜찮고, 그럭저럭 살수도 있는데다 오히려 A보다 다방면에서 나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동일한 시간에 A와 B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의 폭과 넓이는 분명 상당한 차이가 나고, 주어지는 기회 역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달랐다.

간단한 이치다. 중국이 올림픽에서 거둬들이는 메달 수를 보며, 아니 머릿수가 저렇게 많은데 종목별로 천재 하나씩 안 나올 수가 있겠냐는 우스개처럼 새로운 환경, 더 넓은 환경에서는 당연히 모수가 많아지고 모수가 많을수록 가능성 역시 늘어난다.

원격근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여러모로 멋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영감, 여행,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에 따라서는 비용 측면에서도 같은 노력과 같은 노동, 같은 금액에 비례했을 때 얼마든지 질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다(가장 가까운 예로 서울과 지방의 월세를 비교해 보자). 정보기술의 발전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고도 가치를 생산해낼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에 힘입어 전세계에 분포한 협업 공간은 2011년 600개, 2012년 800개, 2013년 3000개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만 대한민국 인구의 반인 2천 5백만이 거주하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 특정 도시에 몰려 들어 고시원 쪽방에 둥지를 틀고, 한정된 자원에서 조금이라도 내 몫을 받고자 아귀다툼을 벌이면서 만원열차에 매일 몸을 우겨 넣는 게 더이상 필수가 아닌, 개인의 선택사항이 되었다는 얘기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거듭 한탄하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 하며 그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는 것만큼이나 그 시스템을 견고히 영속하게 만드는 건 없다. 그리고 내가 이러면서 살고 있는 걸 보면 분명히 이 B라는 것이 시작하기에 그닥 까다롭거나 어려운 것도 아니다.

Hubud

 

문제는 이걸 아무리 글로 쓰고 주변에 이야기를 해도 읽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장 ‘와 그렇구나’ 싶을 뿐이지 실제로는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무조건 A보다 나은 B라는 선택지가 보여야 되는데, 저울질을 해보고 싶어도 한쪽은 아예 미지의 영역이니 굳이 지금 술 마시고 옷 사는데 나가는 돈을 출발 경비로 모으거나 원격근무를 위해 이직을 생각해볼 필요성 자체를 못 느낀다. 거기다 그 미지의 영역에서 조금이라도 위험성은 짊어지고 싶지 않으니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과다하게 많은 준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고(경비, 언어, 지식, 인맥 등) 이에 지레 손사래를 치거나 준비만 하다 평생 A에 눌러 앉게 된다.

그래서 A-B이론을 적용해서, 실제로 B에서 누릴 수 있는 훨씬 더 다양한 조건과 삶의 모양새, 각기다른 기회들의 모습과 그 실례를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글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어떤 형태로든 뭔가 A와 B의 사람들을 이어주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B로 움직이겠지, 그리고 A에서 B로의 이동이 더이상 ‘배부른 소리’나 ‘꿈같은 소리’, ‘내겐 불가능한 소리’가 아니게 되겠지.

물론 A에서 이미 자리를 잡았고, 본인의 삶을 가치있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뭔가를 찾은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A에서는 살 구멍이 안 보이는데 죽자고 A라는 사회에서 제시하는 모범 답안에 맞춰 한국에서만 보는 학벌 꼬리표를 달고 토익 점수 따고 자기소개서 몇 백개씩 뿌려 가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그 에너지로 정말 더 많은 재밌는 것들을 해볼 수 있는 B라는 길도 있다는 거다. 그리고 B에서 C가 나오고, D가 나오고, 선택하고 설계할 수 있는 삶의 모양새가 원격근무를 떠나 훨씬 더 다양하게 넓어질 수 있을지 모른다.

덧붙여 A에 있으면서도 언제든지 자신이 옮겨갈 수 있는 B가 있으면, 정말 많은 삶의 양상들이 달라질 것이다. 단적인 예로 지금 직장에서 성추행을 당하거나 계약 연장이 안 되어도, 내가 여기 아니면 굶어 죽니 하고 나가면 그만이다. 아니 어떻게 본인 혼자만 생각하니,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니, 넌 충성심이나 끈기란 것도 없니, 어떻게 너 좋은 것만 하고 사니, 하는 사람들은 남한텐 신경 끄시고 평생 A에 머무르시라고 하면 그만이다. 여기서 차이점은, 누가 시켜서 그리고 모두가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과 자신의 결정으로 모든 것을 한다는 거다. 이 차이가 본인의 삶에 가져다 주는 만족감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B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더 넓은 인맥, 자기성찰 등으로 인해 B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 입장에서 보기에도 더 ‘돈주고 쓸만한’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을거고, 기존의 자본가들은 노동력, 그 중에서도 특출난 인재를 정말 유치하고 싶다면 근무 환경과 조건부터 바꿔 나가야 할 거다.

지금 풀타임으로 회사일을 하고 있는지라 시간적으로 여유롭지야 않지만, 뭐 어떻게든 하고 싶을 때마다 뭐든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전체적인 그림이 나오겠지. 그리고 A를 버리고 B로 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모호성’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니, B에서 오는 이런저런 노고도 실제 경험을 예로 들어 차근차근 정리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니까, 어떻게 바꿔나가 볼 수 있을까.

써놓고 보니 결국 서론이 무지막지하게 긴 셈이 되어 버렸는데, 우선은 지금 길에서 만나게 되는 이 사람들이 어쩌다 A에서 B로 이동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힘든 점은 무엇인지, 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무엇인지 등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아서 공유해볼 생각이다.  들으면 괴리감만 느껴지는, 그런 잘 포장된 멋있는 이야기말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피부로 와닿는 것들에 초점을 맞춰서 말이다.

 

*업데이트: 그리고 이로부터 몇년이 지나, 한 편의 장편 다큐멘터리와 한 권의 책으로 그 결과물이 탄생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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