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서핑을 하고 해변에 오도카니 앉아 도대체 이 복잡 답답한 기분은 뭘까 멍하니 생각했다.

    휴일의 대부분을 남의 일이 아닌 내 프로젝트에 쏟아붓고 있다 보니 어마어마한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버렸다. 보스도 있고, 할 일이 정해져 있고 가이드라인이 함께 주어지는 회사일과는 달리 백지 상태에서 나 혼자 뭔가를 만들어 내는 건 적어도 지금 내 생황에서는 내 정신건강에 참으로 좋지 않다.

    내가 시작한 개인 프로젝트는 ‘디지털 노마드/원격근무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이고,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은 이렇다.

    • 공식 웹사이트 제작
    • 영문 블로그 오픈
    • 트레일러 제작
    • 인터뷰 대상 섭외
    • 스크립트 작성

    언뜻 보면 단순하기 그지 없는 목록인데, 문제는 이걸 늘 하던대로 Trello를 통해 정리를 하다 보니 답이 안 보였다. 웹사이트 제작 한 항목에만 따라붙는 하위목록이 이렇다.

    ● 공식 웹사이트 제작

    ○ 도메인 및 서버
    – 클라우드 서버 세팅
    – 도메인 네임 구입 및 세팅
    – 기타 세팅

    ○ 코딩, 디자인
    – Stocksy 메인 이미지 구입
    – Stripe / Java script 로 결제창 달기
    → 해외 계좌 연결
    – 로고 제작
    – Olark
    – 기타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자잘한 것들

    ○  메인 화면에 삽입할 영상 제작
    – 싱가폴에서 broll 받기
    – 베를린에서 broll 받기
    – 샌프란시스코에서 broll 받기
    – 시놉시스 작성
    – 그외 스카이프/메일 보낼 사람 및 단체 목록

    한 항목에 따라붙는 하위항목들이 간단히만 작성해도 이 정도고, Trello로는 도저히 이 목록을 관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Trello는 팀원들과 함께 하는 협업툴로서는 훌륭할지언정 위와 같은 항목 간 위계질서는 거의 지원이 안 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자잘한 작업들 하나도 놓치면 안 되는 나는 완전히 길을 잃은 심정으로 답이 없어 보이는 Trello 창만 막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는 뭘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하는 사람도 가이드라인도 없고, 정해진 기한도 정해진 프로젝트 진행 순서도 없다. 당장 해야 할 것들은 산더미 같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트위터에서 사람들이 자꾸만 이야기하는 한 업무 관리 툴이 눈에 들어왔다.

    뭐 특별한 게 있을까 했지만 이대로는 제대로 무기력증에 빠질 판국이었기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WorkFlowy 웹사이트에 방문해 보았다. 덜렁 백지 한 장 펼쳐진 화면에 잠시 당황하고, 튜토리얼 비디오를 보며 차근차근 할 일들을 당장 떠오르는대로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당장 시급한 항목에는 #now를, 그 다음 순서로 해야 할 일에는 #soon을, 이번달에 어디에서 해야 할 일들은 #201501_bali와 같은 식으로 태그도 붙여 보았다. 그리고 마법같은 일이 일어났다. 실타래같이 복잡하게 얽혀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알 수 없던 모든 일들이 하나하나 가닥이 잡혀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험삼아 시작했던 목록 작성이 어느덧 아래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각 항목별로 여러 단계에 걸쳐 하위 항목들을 한없이 만들 수 있다. 노트를 첨부할 수도 있고, 완료한 목록은 complete 기능을 이용해 따로 볼 수 있으며, @ 태깅을 이용한 협업도 가능하다. 한국처럼 세계 모든 곳이 인터넷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기에, 때로 다소 무겁게 느껴지던 Trello와는 달리 군더더기 없는 텍스트 기반 툴인 WorkFlowy는 가볍기 그지 없기도 하다. 이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왠일로 참 잘 정리된 내 뇌 한구석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야심차게 뭔가 시작은 했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WorkFlowy는 틀림없이 당신에게 구세주가 되어줄 것이다.

    다큐멘터리 만들고 글을 씁니다. OPEN SHUTTERS, One Way Ticket, Feminism Reboot 감독. '디지털 노마드,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남해의봄날 출판) 저자. 프로필&컨택 *본 블로그 상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합니다. 다큐멘터리 관련 사진 및 영상은 모든 저작권이 제게 있으며 이 역시 사전동의 없는 인용 및 2차 가공 금지합니다.

    4 Comments

    1. 스크린샷 볼 때까지만 해도 별거 있겠나 싶었는데, 한번 써보니 지금까지 써봤던 어떤 앱/웹서비스보다 직관적인 UX에 무척 놀랐습니다. 게다가 가볍고 완벽한 동기화까지… 소개 감사합니다!

    2. 저도 사용해봐야겠어요, 심플하게 기본에 충실한 것 같은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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