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월. 7월 시작한 서호주 로드트립이 8월 말 발리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면서 마무리되었으니 그 잊을 수 없는 하루하루를 뒤로 한지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최근 다시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해서 블로그에 예전만큼 시간을 쏟지 못 하고 있었다. 우선은 써야지 써야지 하다가 한번 시작하면 감당을 못하게 될 것 같아 엄두를 못 내고 있던 서호주 로드트립 이야기를 망각방지 차원에서라도 짧게 남겨볼 생각이다.
그러니까 올해 7월. 본격적으로 겨울이 찾아왔다. 허구먼날 비는 내리고, 날씨는 춥고, 내가 생각했던 호주는 이게 아닌데. 마침 당시 있던 회사와의 계약도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재계약을 고민하던 차였고, 아니면 호주 동부의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구경하러 가볼까 어쩔까 생각하다 시드니도 춥긴 매한가지라는 걸 깨닫고 우선 피서가 아닌 피한을 가기로 결심했다.
목적지는 가까운 발리. 그리고 지금 서호주를 떠나면 언제 다시 다녀볼 수 있을지가 요원하니 발리에 가기 전에 서호주를 돌아보기로, 마침 호주 북단의 다윈에서 발리까지는 두시간 비행거리므로 까짓거 발리 근처까지 육로로 올라 가보는 겸 해서 퍼스에서 다윈까지 로드트립을 감행하기로 했다.
해안도로만 따라서 가는 걸로 계산해도 장장 5000km 거리. 몇 군데 경로만 추가해도 가뿐히 8000km이 나오는 이 거리. 운전을 여전히 못 하는 나로서는 대중교통만이 답인데 그레이하운드 노선이 그럭저럭 짜여 있는 동부와 달리 서부의 경우 퍼스 위로는 말 그대로 사람 사는 마을 간의 거리가 먼, 매우 정말 먼 진짜 아웃백인지라 제대로 된 대중교통이 없다. Integrity coach lines이 그나마 노선이 존재하긴 하지만(그나마도 주 2회, 3회 운행한다) 버스 시간 따라 일정을 짜다 보니 이건 도무지 답이 안 나왔다.
그런고로 여행사에서는 숙박부터 식사까지 포함한 각종 아웃백 투어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 문제는 엄청나게 빡빡하게 짜여진 일정과 대폭 제한되는 자유도. 다행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옵션, 하기에 따라 그리고 운에 따라 가장 좋은 옵션이 될 수도 가장 최악의 옵션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있었으니, travel mates를 찾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벼룩시장이고 미국으로 치면 Craigslist에 해당하는 Gumtree의 Rideshare & Travel Partners 카테고리에서 일정이 비슷한 사람들을 며칠 간 찾고 찾다가 애초 출발예정일로 잡고 있던 날 바로 전날 저녁 Broome으로 향하는 여행자 세 명을 만났다.
물론 이 과정이 전혀 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운좋게 일정과 조건이 딱 맞는 그룹을 찾았는데 막상 차량에 각자의 짐을 넣다 보니 도저히 사람이 탈 자리가 없는 지경이라 고사한 경우도 있고, 성비 문제도 고려를 해야 하는데다(여자의 경우 남자들만 있는 그룹에 끼면 생길 수 있는 안전 문제 및 여러 고달픈 점들을 감안해야 한다.. 상당 기간 동안 외딴 곳에서 야생에서 먹고 자야 하는지라), 완벽한 조건인데 도중에 한두 명이 빠져서 낯선 사람과 단둘이 여행을 해야 하는(이 경우 1/N로 부담하게 되는 경비 역시 만만치 않게 된다) 상황이라 거절한 경우도 있다. 올라오는 포스팅들을 보고 일일이 먼저 연락을 해보다 슬슬 마음이 급해지면서 막판에는 직접 글을 올렸는데,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여행 파트너를 구하는 사람들은 넘쳐난다! 다만 이래저래 아귀가 맞는 팀을 찾는 것이 생각보다 까다로울 뿐) 문자에 답을 하는데 한참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목표로 했던 다윈은 아니지만 일단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그룹을 어찌어찌 만났고, 마침 일행 중 한 명이 사륜구동 차량을 가지고 있었고(사륜구동이 아니면 진입조차 할 수 없는 국립공원들이 상당수 있다), 텐트에다 작은 차량용 냉장고를 비롯한 각종 캠핑 장비까지 이미 갖춘, 그야말로 만반의 태세를 갖춘 팀이었다.
그렇게 서호주 로드트립이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