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 이야기②] 공황 장애, 고난기와 극복 ‘시도’기

>>[재활 이야기①] 지식노동자의 최대의 허리 디스크, 고난기와 극복기

 

이번 글은 ‘극복‘보다는 주로 ‘고난‘ 이야기.

그러니까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올해 초 급작스럽게 찾아온 허리 통증으로 갖은 고생을 겪고 있을 때, 업친 데 겹친 격으로 힘든 증상 하나가 더 나타났다. 시작은 불규칙한 심장 박동. 갑작스러운 움직임이나 달리기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심장이 마치 내 귓가에 박동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을 정도로 미친 듯이 뛰었다. 몇 년 전에 비슷한 증상이 잠시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단순 신경성 부정맥으로 진단받고 약을 한동안 먹으니 금세 나아졌다. 이번에는 그 정도가 달랐고, 지속시간도 훨씬 길었다.

이번에도 가벼운 부정맥이겠거니, 짬 날 때 근처 내과에 들러서 약을 처방받으면 되겠거니 하던 중 급한 일들이 겹쳐 병원을 계속 가지 못했다. 이미 허리 통증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꾸역꾸역 짬을 내서 가는 것도 벅찬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시간이 지나면서 심장 박동뿐만 아니라 호흡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쁜 숨을 쉬어도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호흡이 가쁘니 관자놀이를 찌르는 듯한 두통이 왔다.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닌가 하는 막연한 공포가 찾아왔다. 어느 날 사무실에 잠깐 들렀다 오는 길에 갑자기 증상이 심하게 도지면서 ‘이건 큰일이다’ 싶었고, 정신을 좀 차리자마자 잘 보는 심장내과라고 유명한 병원을 찾아 곧장 향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게, 그 당시 병원으로 가는 길에 수납 직원분께 전화해서는 너무 무서워서, 최대한 빨리 예약을 잡아달라고 거의 빌다시피 했다. 왠지 모르겠는데 숨이 안 쉬어진다고, 죽을 거 같다고.

친절한 직원분 덕에 중간에 캔슬된 자리에 내 예약을 끼워 넣어서, 얼마 기다리지 않고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심전도 검사를 받고 진료실로 갔는데, 심전도를 받기 전에 내 증상 설명을 들을 때는 별일 아닐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던 의사 선생님이 심전도 결과서를 받아들고 맨 처음 하시는 말씀이 이거였다.

“이거… 안 좋은데요.”

의사 선생님은 내 심전도 그래프 종이를 놓고 정상 범위에 드는 심전도 그래프와 비교하며 이게 이렇게 되면 안 되는데 여기서 이렇게 훅 떨어지는 거 보이느냐, 며 한참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셨는데, 한 마디로 뭔가 안 좋단 이야기였다.

지금 이렇게 현재 심장 기능에 문제가 있으니, 다음 단계는 심장 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보아야 한다고 하셨고, 그렇게 심장 초음파를 받게 되었다. 초음파 검사를 받는 동안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감기나 당장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상처 같은 건 이게 뭔지 어떻게 된 건지 내가 알기라도 하는데, 내 심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내가 뭘 아는 게 있을 리 만무하고, 심장이 내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니 무턱대고 겁만 났다.

초음파 검사를 받으면서 의사 선생님이 입을 떼기만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아득히 길게 느껴졌다. 난 내가 건강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심장에 문제가 있다니 어떻게 하지, 심장에 문제가 있으면 도대체 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거지, 하는 그 때 의사 선생님의 한 마디.

“심장 구조에는 다행히도 이상이 없네요. 깨끗해요.”

긴장이 탁 풀리면서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선생님은 신경성인 것 같은데, 일단 초음파로 보이는 심장 구조에는 이상이 없으니 며칠 지켜보자고 하셨다.

잠깐 한숨 돌렸던 것도 잠시, 처음에 찾아온 공포, 패닉의 뒤를 이어 이렇게 한번 진단을 받은 다음부터는 답답함과 짜증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숨은 가빴고, 한 번씩 극도의 호흡곤란과 함께 찾아오는 죽을 것 같은, 도무지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불안과 공포감이 손 쓸 수 없이 밀려드는 상황이 꾸준히 지속되었다.

이게 신경성이라니, 아니 오히려 지금 내 삶의 질은 내가 볼 때 과분할 만큼 높은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지금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도대체 뭐가 있는 건지, 거기다 나는 분명 내가 봤을 때 정신력이 강한 사람인데, 하는 생각들은 ‘내 정신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분명히 내 몸 어딘가가 제대로 고장 난 것임에 틀림없다’, ‘이걸 내가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그냥 신경성인 걸로 믿고 있다가는 이 무언가가 더 악화되어서 언제가 나는 갑자기 죽어버릴지 모른다’는 강박적인 확신으로 이어졌다.

그때부터는 여기저기 다른 병원에 다녀보기 시작했다. 길게 풀어썼지만 글 처음의 증상이 나타난 시점부터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한 달이 조금 안 된다. 그동안 매일매일이 답답함, 짜증, 공포와 불안의 연속이었다. 어떤 병원에서는 폐 검사를 하고 호흡 기능을 측정해보고(문제가 없었다), 또 다른 병원에서는 늑골에 문제가 있으면 그게 호흡 곤란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해서 늑골 엑스레이를 찍었다(여기도 문제가 없었다). 피검사 등 각종 건강 검진도 받았다(이상 무). 살면서 이렇게 병원을 여기저기 자주 가보기도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내 심장에도, 폐에도, 그 어디에도 이렇다 할 이상이 없었다. 그렇게 다시 처음 찾아갔던 병원으로 돌아가서(찾아간 병원 중 이곳 선생님이 제일 꼼꼼히 설명해주셔서, 가장 믿음이 갔다), 선생님을 붙잡고 하소연을 하다시피 했다. 이거 분명히 어디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매일매일 이렇게는 못 살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 날 측정한 심전도는 그 이전보다 더 안 좋게 나왔다. 선생님은 내가 워낙 불안해하다 보니 심장 체크를 제대로 한 번 더 해보자며 24시간 동안 심장 박동을 체크하는 작은 기구를 내 몸에 부착했다. 혹시라도 여기서 만약 기록이 많이 좋지 않게 나오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가장 심각하게는 심장에 보조 장치를 달고 살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덕지덕지 의료용 테이프로 몸에 칭칭 감겨 있는 기구를 보고 있자니 속상했다. 내가 딱히 뭘 건강관리에 소홀해 온 것 같진 않은데, 도대체 왜 이게 날 이렇게까지 괴롭히나 싶었다.

그리고 다음 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 기구를 간호사분이 회수한 후 기록을 뽑았다. 결과는? 내 심장에는 문제가 없었다. 신경성이라고 하셨다. 마음의 병이니 여기서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리고 우선 당장 급한 대로 신경 안정제 및 저혈압 치료를 위한 승압제 등을 처방해주셨다.

“차라리 제 몸에 문제가 있는 거라면 좋을 텐데요. 그럼 뭔지 알고 빨리 고치기라도 하죠.”

모든 상황이 원망스러웠던 내가 한 말에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아니죠, 정말 몸이 많이 아픈 사람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 오히려 마음이 아픈 건 불치병과 다르게 자기 하기에 따라 좋아질 수 있는거 예요.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돼요.”

그렇게 병원을 매일같이 전전하던 시기가 끝났다.
그 후 내가 받은 진단명은 공황장애.

이렇게 글로 적고 나니 내가 그때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불안해했는지 나도 참 신기한데, 그 당시는 이 증상이 거의 내 일상생활을 잡아먹다시피 하고 있었다. 나중에굿바이 공황장애라는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된 건데, 나처럼 분명히 몸에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강박적으로 병원을 찾아다니는 것 역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그 책 본문에서는 ‘이 기회에 내 몸을 꼼꼼히 체크하고 살펴보아서 오히려 앞으로 더 건강해질 기회가 생겼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게 바람직하다’고 하셨지만 그 당시에는 참 많이 힘들고 또 불안했다.

상담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책. 여러 책들이 시중에 있지만 다들 비슷비슷해서, 굳이 불안해 하며 모든 책을 찾아 읽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그 이후 이야기는 몇몇 사적인 부분이 관련되어 있어 디테일한 부분은 빼고 간략히 정리하자면, 오래지 않아 약은 끊었다. 그리고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선 허리 디스크 글에서 PT를 받기 시작한 게 올해 단 한 푼도 아깝지 않은 비용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는데, 또 다른 전혀 아깝지 않은 하나가 바로 이 상담에 들어가는 비용.

거듭 말했지만 난 내가 정신과 신체 모두 한결같이 강한 사람이라고 믿고 그렇게 삼십년 넘게 살아왔고, 우울증이라던가 공황 장애, 심리 상담 같은 건 완벽하게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초기에 더욱 인정을 못 하고 내 몸에 문제가 있을 거라 확신하고 병원을 전전하기도 했고. 그러던 내가 상담을 받고자 결정한 건 뭐 깊은 고민이나 결정적인 계기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어느 날 또다시 증상이 도지면서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 하는 마음으로 한순간에 결정한 거였다.

막상 상담이란 걸 받아보려고 하니,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했다. 다행히도 이전에 인터뷰 영상 촬영 건으로 뵌 적 있던, 서밤님의 블로그가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서밤님은 웹툰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 썰‘을 연재하고 계시고, 만화뿐만 아니라 심리 상담 시작 방법, 자신에게 맞는 상담사를 찾는 법 등 여러 유용한 정보들도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고 계신다.

서밤님 블로그의 관련 포스팅을 통해 선택지를 줄인 뒤, 한 곳 한 곳 전화를 걸어서 증상을 이야기하고 일정을 조율하면서 그리 멀지 않고, 마침 빠른 시일 내에 상담이 가능하고(당시에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고역이었다), 선생님도 믿음이 가는 곳을 운 좋게 찾아 그렇게 상담을 시작했다. 요즘은 스카이프 상담도 보편화되어 있어서, 중간에 한국을 나올 때도 아무 걱정없이 자연스럽게 화상 통화 상담으로 스위치할 수 있었다.

이제 막 8회기를 넘긴 지금, 증상이 ‘호전되었다’라고 섣불리 이야기 하기에는 내가 겁이 난다. 그래서 포스팅 제목도 ‘극복기’가 아닌 ‘극복 시도기’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제는 더는 이전처럼 증상이 나타났을 때 내가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처음 1~3회기에는 복식호흡과 근육 이완법 등 증상을 다스리는 방법 위주로, 그다음부터는 공황이라는 증상으로 겉으로 드러난 내 불안의 실체를 찾는 작업을 상담 선생님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선생님께서 추천하신 명상앱, “마보”도 꾸준히 사용하는 중.

언제 나아질지, 완전히 나아질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나 스스로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그 길잡이 역할을 해주시는 상담 선생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빨리 상담을 시작한 내 결정이 어마어마하게 잘한 결정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여하튼 저번 글 허리 디스크 이야기처럼 마무리를 해보자면, 혹시라도 이런 증상을 겪고 계신 분이 있으면 고난기는 최대한 짧게 줄이고, 신속하게 극복 시도 단계로 넘어갈 수 있으셨음 좋겠다. 고생 많이 했고 지금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분명 이걸 계기로 내가 그간 삼십 년 넘도록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마냥 방치한 몸과 마음에 처음으로 꼼꼼히 체크를 하고, 기름칠도 하고, 구석구석 고치고 매만지고 정돈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 역시 사실이다. 응당 필요했고 언젠가 반드시 시작했어야만 했던 작업들이고, 어쩌다 보니 이걸 깨닫게 된 계기만 다소 거칠었다고 생각하려 한다.

몸과 마음, 열심히 쓸고 닦고 기름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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