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 이야기①] 지식노동자의 최대의 적 허리 디스크, 고난기와 극복기

이번 글을 시작으로 연달아 올라갈 글은 나름의 ‘재활’ 이야기.

심히 상투적인 글 도입부지만 난 내가 매우 건강한 사람이라고 줄곧 생각했고, (근거 1. 코피가 난 적이 없다 2. 뼈가 부러져 본 적도 금이 간 적도 없다 3. 병 때문에 수술은커녕 간단한 시술도 받아본 기억이 없다 4. thus, 한평생 병원 침대에서 하루 이상 지내본 적이 없다) 해서 주변에서 ‘삼십대부터는 확실히 다르다,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 같은 이야기를 항상 흘려들었다. 도대체 이십 대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나이를 먹어도 나만큼은 절대로 예외일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긴 이야기 짧게 줄이면, 올해 상반기에 허리 디스크 초기 판정을 받았다. 허리가 끔찍하게 아팠고, 통증 때문에 잠도 제대로 누워 못 자고, 한 시간은 커녕 반 시간도 제대로 의자에 앉아 있기가 힘들고,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니 여기서 오는 짜증과 극심한 스트레스가 다시 건강을 해치는 악순환의 연속.

처음은 으레 그렇듯 어쩌다 한번 무리했을 때(중요한&급한 영상 일 같은 게 있어서 붙잡고 몇 시간씩 며칠 연속 앉아 있다던가 등) 며칠 허리가 찌뿌둥하고 마는 정도로 시작해서 언제부터인가 어떻게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특히 오른쪽 허리 아래쪽, 엉덩이 위쪽이 참기 어려울 만큼 아팠다.

마사지를 받아도, 스트레칭을 해도 통증이 전혀 가시질 않고 통증 때문에 침대에 누워도 잠들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좋다는 병원을 돌아다녀 보고 진단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허리 디스크. 남일로만 생각했었는데 세상에, 엑스레이를 보니 정말 허리 아래쪽 뼈 두 세 개가 듬성듬성 거리를 두고 있는 다른 뼈들과는 달리 자기들끼리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수술할 정도는 아니고 초기라서(이 정도는 현대 사무직에게 흔히 있는 증상이라고 하셨는데, 이게 내 놀람 포인트였다. 이 정도의 고통은 다들 달고 산다는 건가!) 커다란 기계 사이에 드러누워 디스크 염증 치료 및 통증 감소를 위한 주사를 허리에 여러 군데 맞고(신경근 및 신경절차단술), 물리치료 30분에 도수치료 30분씩 거진 두시간 가까이 매주 병원에서 보내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잠깐 그 며칠만 덜할 뿐 금세 통증이 돌아왔다. 실비보험 덕에 그나마 비용은 문제가 안 되었는데, 한번 병원에 갈 때마다 최소 15만 원, 많게는 20만 원씩 나왔다.

허리 통증이 참 요망한 것이, 한 자세를 일정 시간 유지할 수가 없다. 즉, 업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스탠딩 데스크를 이용해도 마찬가지다. 디스크 진단을 받고 내가 제일 먼저 의사 선생님에게 한 질문이

“저는 업무 시간 절반은 스탠딩 데스크를 사용하는데 제게 왜 디스크가…”

였는데, 앉아 있든 서 있든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는 건 똑같이 나쁘다고.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도 있는데 당장 업무 효율에 지대한 악영향이 오니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그리고 딱 이맘때를 시작으로 간헐적으로 호흡이 극도로 어려워지는 미스테리한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패닉에 빠진 나는 호흡기내과, 심장내과 등을 전전하기 시작하는데.. 여기선 우선 디스크 이야기만 하고 이건 다음 포스팅에서.

디스크의 또 다른 답답한 부분이 ‘완치’라는 개념이 없다는 거. 그리고 정확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병원으로부터 속 시원한 설명을 듣기가 어렵다. 이건 병원따라 다른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내 경우는 그랬다. 격한 운동은 하지 말라고 해서 마침 등록하려던 주짓수도 캔슬하고, 대신 자주 걸으라는데, 매일같이 걸어도 자전거를 타도 딱히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간만에 만난 한 지인에게서 PT의 효용성을 별생각 없이 듣고 넘기다가, 바로 그다음 날 위에서 잠깐 이야기한 호흡 곤란 문제가 극도에 달해서 더욱 우울하고 초조하고 짜증 나던 상태에서 집 근처에서 한 여성 전용 짐을 발견한 나는 바로 들어가서 상담을 하고 PT 10회치를 그 자리에서 결제했다.

*사족, 여성 전용 짐의 효용성: 예전에 국외에서 남녀공용 짐을 잠깐 다녔다가 생긴 좋지 않은 기억이 있고, 주변 지인들로부터의 경험담 몇 가지(자리를 옮겨가면서까지 계속해서 자신의 신체를 뚫어지게 응시하는 남성 회원, 등록하고 일주일 만에 같은 짐의 남성 회원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한 일, 성추행 등)를 들은 바 있기에 한 번 시도해보았는데, 몇 달 다녀본 지금은 혹시라도 비슷한 경험&걱정 때문에 짐 등록을 고민하고 있는 여성분이 있다면 여성 전용 짐을 꼭 한번 시도해 보시기를 매우 강력하게x1000 추천한다! (갈수록 느는 추세라 집 근처에서도 찾기 쉽고, 당신이 뭘 입든 뭘 벗든 어떤 자세로 뭘 얼마나 뭘 하든 아무도 신경 안 쓰고 아무도 안 본다! 남들의 시선 그게 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끈적끈적 흘끔흘끔 훑어보는 그 시선 그거 당해본 사람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등록 전 상담을 하면서 나는 현재 내가 겪고 있는 증상을 가감 없이 설명하고,

  1. 체중 감량 의사 없고 현재 체중에 만족함
  2. 1과 더불어, 해서 체중 감량을 위한 식단 관리는 따로 받을 생각 없음
  3. 나는 내 신체를 더 강하게 단련시키고 싶고, 타인&사회가 내 몸을 보는 시선에는 그닥 관심 없음
  4. 트레이닝에 요구되는 대화 이외 스몰토크는 정중히 사양

과 같은 요구 사항을 미리 전달 드렸다(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PT 등록 전 이렇게 자신에게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미리 명확하게 밝히고 적절한 바운더리를 설정하는 건 백번 천번 거듭 말해도 모자랄 만큼 중요하다).

보통 10회치를 결제하기 전에 트레이너 선생님과의 핏을 보기 위해서라도 1회 정도 먼저 해보고 결정하는 게 좋지만, 그 당시는 내가 몸과 마음 둘다 너덜너덜해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그러니까 물에 빠진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던 심정이라, 가장 잘하신다는 시니어급 선생님의 스케쥴이 비는 날을 확인하고 바로 세션을 시작했다(여기서 상담 시 내게 말씀해주신 시니어급 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 간의 차이점은 재활 치료 및 건강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회원까지 꼼꼼히 케어가 가능한지의 여부가 가장 컸다).

내가 운이 좋았는지 어땠는지, 내 트레이너 선생님은 더 바랄 수 있는 게 없을 만큼 완벽했다! 꼼꼼히 내 몸 상태를 파악한 후 뭉친 근육을 풀고, 아픈 곳 위주로 폼롤러 등으로 근막 마사지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알맞은 스트레칭 방법을 알려주고, 약간만 압력이 들어가는 운동을 하거나 잠깐 누웠다 일어날 때도 한참 휘청하는 (트레이너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난 전혀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 정말 저 당시 컨디션이 바닥이었을 뿐) 내 몸이 버틸 수 있는 운동 커리큘럼을 짜주셨고 중간중간 쉴 틈 없이 내 컨디션을 체크하면서 내가 조금만 욕심을 내도 바로 끊고 의자에 앉아서 물을 마시고 심호흡을 하게 했다.

상태가 반짝 좋아진 날도 절대 무리하지 않게 했고, 상태가 도로 나빠진 날에는 나를 채근하는 대신 강도를 조절하고 다양한 운동을 조금씩 하게끔 조율해주셨다. 프로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미리 상담 시에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어쨌는지, 운동 외 스몰토크도 전혀 없어서 최고였다(심지어 내가 머리를 왕창 자르고 투블럭을 하고 바로 짐으로 간 날도 머리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이야기를 전혀 안 하셨다!). PT가 없는 날은 최소 일주일에 3번 짐에 들러서 혼자서 배웠던 동작들을 반복했다. 트레이너분들이 여러분 상주하시다 보니 까다로운 자세 같은 걸 잊었을 때는 편하게 묻고 바로바로 가이드를 받았다.

이전엔 운동에 이렇게 꾸준히 돈과 시간을 써본 적이 없고(PT의 경우 트레이너 선생님의 숙련도에 따라 세션당 7~15만 원 가량), PT는 커녕 주변에서 많이들 하는 필라테스나 수영, 요가도 딱히 꾸준히 한 적이 없다(변명이지만, 요즘에야 한 곳에 못 해도 반년은 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몇 년 내내 두 세 달이 멀다 하고 움직여서 어디 뭘 등록해서 뭘 하기도 애매했다). 10회차를 다 마치고 이어서 다음 10회를 등록하려는 지금은, 올해 지출 내역 중에 단 한 푼도 아깝지 않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PT 비용이다

운동 내용은 주로 각종 기구를 이용한 스트레칭과 근력 운동 위주였다(기구는 차치하고, 생전 처음 보는 운동 도구들이 얼마나 많던지..). 천천히 컨디션을 올려 나가면서 무리하지 않고 허리를 중심으로 탄탄하게 근육을 붙이는 게 트레이너 선생님이 정해준 일 순위 목표. 그렇게 두 달이 되어가면서 서서히 하지만 눈에 띄게 허리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PT를 받으면서부터 병원에 뜸하게 가다가, 한 달째부터는 아예 끊었다).

정확히 딱 한 달을 찍은 시점부터 마침내 한자리에 앉든 서든 뭘 30분 이상 붙잡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신이 났고,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그러다 어쩌다 급한 건이 생겨서 좀 오래 앉아서 일해버린 날은 어김없이 다음날 통증이 슬금슬금 돌아와서 우울한 상태로 짐으로 향했다. 한국의 폭염을 피해 국외로 나와 있는 지금도, 여름 동안 머물 아파트를 예약할 때 부대시설로 딸린 짐 상태를 제일 먼저 꼼꼼히 살피고 정했다.

올해 하반기 PT 목표는 허리 강화와 함께 전반적인 근력 향상으로 정했다. 지금 나를 가르쳐주시는 선생님 말고, 다른 트레이너 선생님 한 분이 겉으로만 보기에는 나보다 훨씬 체구가 작으신데(맨 처음 나는 같은 회원이신 줄로만 알았다) 내가 15kg로 설정해놓고 낑낑거리는 한 기구를 최대 체중으로 설정(100kg…)한 상태에서 번쩍번쩍 들어 올리시는 걸 보고 누가 뒤통수를 아주 힘껏 한 대 때린 것 같은 자극을 받아버려서… 수업하다 말고 비장한 표정으로 담당 선생님께 내가 했던 말이,

“올해 하반기에는 힘이 세지고 싶습니다.”

였다. 말해놓고 지금 거의 무슨 재활 치료 받고 있는 주제에 내가 너무 황당무계한 말을 뱉은 거면 어쩌나, 싶었는데 돌아온 선생님의 대답이.

당연하죠!”

여하튼 결론은, 디스크의 그림자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사무직 여러분들, 한 자리 오래 앉아 계신 여러분들 반드시 꼭꼭 운동하시라는 거. 자세 및 각종 생활 습관 교정 같은 건 당연한거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을 때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PT가 시간과 비용 대비 획기적인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다는 거.

그리고 PT를 등록할 때는 반드시 먼저 목표를 정하고 본인에게 필요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해 미리 충분히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전문가라고 해서 독심술까지 있는 건 아니다. 미리 말을 안 했는데 내가 뭘 원하는지 어찌 아나!).

여성 전용 짐, 또는 일반 짐에 여성이 찾아갔을 때 눈에 띄는 경향 중 하나가 회원이 따로 말을 하지 않으면 ‘이 회원분은 체중 감량을 목표로 여기 오신 거려니’하고 지레짐작한다. 그래서 핀치의 연재글 ‘트레이너와 나‘에도 등장했던 본인이 원치 않는 강압적인 식단 관리, 바디 쉐이밍(왜 이렇게 뚱뚱해요! 제가 저녁은 먹지 말라고 했죠? 올여름 비키니 입어야죠!), 근육 터부시(이 운동은 아무리 해도 승모근이 잘 나오거나 하지 않으니까 여성 회원님이 해도 되세요~) 같은 해프닝들이 이 지점에서 주로 등장하게 된다. 그러니만큼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깔끔하게 미리 말해두는 게 필수.

여하튼 마무리는, 운동하세요. 삼십대 이상, 사무직,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음 이 중에 하나라도 해당되면 꼭 하세요 두 번 하세요. 땀 내고 집중해서 몸을 쓰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테라피와도 같고, 디스크 초기&위험군이라면 눈에 띄게 도움이 된다. 올가을에는 더 열심히 해야지.

>>[재활 이야기②] 공황 장애, 고난기와 극복 ‘시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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