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 다큐멘터리, 후반 작업 이야기 ②

디지털 노마드 다큐멘터리, 후반 작업 이야기 ①>>

 

편집, 그래픽, 그리고 오디오

편집 과정은 지난했다. 우선 시나리오에 따라 해당 영상을 나열하고, 단어, 음절 단위로 끊어가며 다듬는 과정을 끝도 없이 반복했다. 그 후에는 상황별로 적절한 인서트컷을 넣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인터뷰이 얼굴만 나올 수는 없으니 각 내용에 맞는 컷이 들어가고, 음악과 모션 그래픽, 관련 시각 자료, 효과음 등이 추가된다. 대략 이 때쯤 러프컷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하는데, 이걸 우석님과 나는 열 개도 넘는 다른 버전으로 수십번 돌려봤다.

다큐에 들어간 모든 모션 그래픽은 버드솜 디자이너의 손에서 나왔다. 인터뷰이의 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거나, 중간 중간 적절히 흐름을 끊고 연결해야 하는 부분에 모션 그래픽이 상당수 들어갔다. 작업 과정은 이랬다. 내가 조시아와의 상의를 거쳐 모션 그래픽으로 만들 내용을 정리한 후 내가 그걸 스케치(라고 쓰고 낙서라고 읽는다..)하면, 그걸 토대로 버드솜님이 작업에 들어간다.

스케치라는 이름을 한 내 낙서

-> 버드솜님의 손을 거쳐 아래 그래픽으로 변신

모션 그래픽을 넣는 일까지 끝나면, 오디오 믹싱 차례다. ‘고요 Soundworks’의 이인경님께서 오디오 전체를 맡아 작업해주셨다. 당시 같은 서울 안에 있을 때도 우석님과 버드솜님과의 의사소통은 되도록 스카이프와 트렐로 위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는 일을 위해 물리적인 이동을 하는 걸 질색하는 나 때문이었다. 스카이프로도 할 수 있는 똑같은 내용을 이야기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움직이는게 극도로 피곤하고 시간 낭비로 느껴졌다.

그러나 사운드 믹싱은 다른 작업들과는 달리 반드시, 필수적으로 현장 작업이 필요했다. 같은 스튜디오 안에서 미묘한 소리의 차이를 잡아가며 함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초벌 작업을 인경님이 한 번 싹 하신 후, 우석님과 몇 차례 스튜디오를 방문해 사운드를 함께 잡아나갔다.

그리고 이 때 사운드 믹싱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건지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잡음 제거는 기본, 사운드가 엉망인 상태로 촬영된 컷들 역시 막귀인 내 귀에도 확연히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인경님의 손을 거쳐 되살아났다. 또 인터뷰 장소가 야외인 경우 해당 지역의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소리도 배경에 들어갔다(예: 발리에서 진행된 야외 인터뷰의 경우 발리 특유의 새소리, 벌레 소리가 대폭 들어갔다) 까다로웠던 음악 선정과 적절한 사운드 삽입 구간을 정하는 일 역시 이 때 마무리되었다.

서울 모니터링 시사회 그리고 남은 일들

오디오 믹싱과 함께 흔들림 보정, 칼라 그레이딩, 크레딧 작업 등으로 얼추 후반작업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그 동안 나는 홈페이지 개편, 정식 트레일러 공개, 외부에서 공수한 컷들의 카피라이트 체크, 영화제 출품과 관련한 인터뷰이들의 동의서 정리와 크루 계약서 같은 각종 페이퍼워크, 후원자 선공개 준비, 자막 작업 조율 등을 해나갔다.

  • 공식 트레일러 (한글 자막 지원)

이 다큐의 스크린샷, 프리뷰 같은 콘텐츠들을 자사의 서비스 홍보용으로 무단 사용하는 업체들에 대한 대응 역시 해야 했다. 제작 관련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철저하게 외면했던 조직이 이제 와서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아직 공개도 안된 이 다큐의 시사회 계획을 잡고, 내게 후통보하는 걸 봤을 때는 맥이 탁 풀렸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저럴까 싶었던 게 이 때.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것 같았고, 프로듀서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절실했지만 이제 와서 영입하기엔 많이 늦은 상황이었다. 이후에 다른 포스팅으로 한번 정리하겠지만, 제작보다 오히려 제작 외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사고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가장 컸다(이건 모든 프리랜서, 사업자, 그리고 본인 프로젝트를 직접 끌고 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일거라 생각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따로 제작사를 끼지 않고 시작하는 독립 다큐의 경우 든든한 프로듀서(+변호사님)의 존재는 열 번 말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서울 모니터링 시사회 일정이 잡혔다. 감사한 후원자들에게 가장 먼저 다큐를 선보이고 싶었다(*후원자 대상 선공개와 모니터링 용도의 시사회는 필름의 프리미어 상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한국에는 특히 나와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아낌없는 도움과 격려를 주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한국에서만큼은 특별하게 오프라인 시사회를 열기로 했다.

대관을 알아보고, 급하게 한글 자막을 준비했다가 봉변을 당하고(이 때 트랜스크립션 때문에 줄곧 100% 무한신뢰하고 있던 Rev에게서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한글 자막 번역/제작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알고 보니 한국어 관련 인력에 대해서는 전혀 품질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여기는 영어 서비스만 믿을만 한 것 같다), 해서 급하게 부랴부랴 내가 하나하나 자막을 고쳐가며 준비하고, 초대장을 돌렸다.

그렇게 지난해 12월 초, 필름포럼에서 약 90석 규모로 모니터링 시사회를 진행했다. 자리해주신 모든 분들께 참 감사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수십번도 더 봤던 영상이지만 극장에서 보는 건 처음이라 상영 내내 기분이 묘했다.

온라인을 통한 후원자 대상 선공개는 VHX를 이용해 진행했다(커스터마이징 옵션이 많은 탓에 사용법이 다소 까다롭긴 하나, 고객서비스가 상상 이상으로 친절&신속하다. 시차 그런거 없다. 지불하는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 온/오프라인 선공개 후 세계 각지에서 감상과 피드백들이 도착했다. 이를 토대로 추가 수정(파이널! 이번엔 제발 정말 파이널!)이 새해 1월까지 계속 이뤄지고 있다.

한글 자막 작업은 아는 분들은 다 아실 21세기 자막단(!!!)에서 맡아서 도와주시고 있다. 2월 둘째주 중에 한글자막과 함께 한국 후원자분들을 위한 온라인 선공개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제 남은 일은 영화제 출품에 박차를 가하는 일, 그리고 영화제 이외에도 릴리즈를 위한 다른 플랜B들을 계속해서 찾아보는 일 정도가 남았다.

지금 나와 편집자님의 심정(…)

후반 작업 사용툴

제작 과정에서 업무의 상당 부분이 원격으로 진행되었다는 이야기에,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지 궁금해하는 지인들이 많다. 촬영 과정에서의 원격 협업의 경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제작비 절감이었는데, 내가 직접 모든 곳에 가기에는 일정도 안 맞았을 뿐더러 요즘 아무리 저가 항공권이 많다곤 하나 여전히 만만치 않았던 이동 경비의 이유가 컸다.

카메라맨을 항상 나와 함께 동행시키기엔 촬영비+카메라맨의 이동비/숙박비/식비 기타 등등 역시 컸기에, 가능한 한 각자 알아서 찍고 영상을 전달하되, 카메라 여러 대가 필요한 경우에는 현지에서 인력을 구했다. 촬영 전에 미리 만들어둔 가이드라인을 카메라맨과 공유하고, 인터뷰어와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인터뷰 내용 숙지가 완료될 경우 큰 문제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자주 쓰인 툴은 슬랙/구글 드라이브/그리고 스카이프.

후반 작업에는 텔레그램/트렐로/구글 드라이브/스카이프를 사용했다.

  • 텔레그램: 편집자와의 시도때도 없는 의견 교환
  • 스카이프: 매주 날잡고 하는 편집 콜+간만에 다같이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
  • 구글 드라이브: 시나리오 공유하고 수정 사항 의견 공유 등
  • 트렐로: 후반 작업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주된 협업툴. 텔레그램, 스카이프를 통해 이야기한 사안들은 대화가 끝나는 즉시 트렐로에 정리

트렐로를 이용한 협업

구글 문서를 이용한 시나리오 협업

사운드 믹싱의 경우에는 현장 작업이 필수였고, 편집 후반부에 특히 편집자와의 현장 작업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다. 마침 2016년 연말 한국에 머물렀기에 별 무리 없이 진행되었는데, 그럼에도 스카이프 등으로 대체 가능한 커뮤니케이션은 최대한 오프라인 대신 온라인을 통해 진행함으로써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최대한으로 줄였다.

프리미어 프로젝트 파일 등을 아예 클라우드에 업로드해서 실시간으로 원격 협업&편집&리비전 체크 등이 가능하게 한 Frame.io 같은 서비스도 그렇고, 이번에 비메오 역시 실시간으로 팀 멤버들이 비디오를 리뷰&코멘팅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았는데 기회가 될 때 사용해 보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술은 발달할 것이고, 이로 인한 혜택이 벌써 영상 편집 분야까지 확장되었다는게 매우 흥미롭다.

 


덧. 디지털 노마드 ‘족'(?)

디지털 노마드를 무슨 장미빛 판타지로 포장한 콘텐츠가 국내 미디어에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동시에 ‘그런거 다 말도 안 되는 허구다!’같은 이야기도 벌써부터 나오는 모양이다. 어디서는 디지털 노마드를 ‘디지털 노마드족’으로 부른다고도 하는데.. 이게 종족이라는 개념까지 가다니.

회사에 속한 직원으로써 원격근무를 하는 동안, 나도 그랬고 주변의 여러 원격근무자들 상당수가 나의, 그리고 각자의 삶이 지금 여러 채널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딱히 꿈같은 삶이라고 그닥 느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대부분 직원이면 직원대로 회사일을 하느라, 프리랜서면 프리랜서대로 클라이언트에게서 수주받은 일을 하느라 매일 출퇴근을 하는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일을 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기 때문이다

여가 시간을 보내는 장소와 방법이 다르고 주거지의 선택에 훨씬 제약이 덜할 뿐(이조차도 정기적으로 클라이언트와의 현장 미팅이 요구되는 경우 국외로는 나가지 못하는 지인들도 많다), 똑같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여가 시간을 보내는 삶이다. 이런 삶을 위해 캠프나 워크숍에 돈을 주고 참가해야 한다는 건 마치 직장인이 되기 위한 워크숍을 듣는다는 발상 만큼이나 황당하게 느껴진다.

원격근무자들은 각종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매일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소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방랑자, 새로운 삶을 사는 개척자, 남들과는 다른 멋진 사람, 또는 아웃사이더’들도 아니다. 똑같이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주체인데 회사가 마침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곳이거나, 운좋게 상사와의 협상의 성공했거나, 원격근무 시행사로 이직을 했거나, 클라이언트를 잘 만났거나, 자신의 사업체가 있는데 마침 장소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고도 수익이 나는 상황인 것일 뿐. 그리고 앞의 포스팅들에서 이야기했던 여러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요소들의 변화에 의해 이런 경우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 그 뿐이다.

노동 형태의 변화, 기업문화의 변화 등으로 인해 디지털 노마디즘과 원격근무는 갈수록 우리 삶에 파고들 것이고, 이 현상이 싫건 좋건 개인의 기호와는 관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또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다. 이는 전혀 특별할 것도 소위 ‘힙’한 것 따위도 아닌, 그저 이 사회가 변해가는 방향과 같은 방향에 있는 삶들 중 하나다. 그리고 일에서 장소의 제약을 없앤다는 단 한 가지 변화(우리는 이미 상당 부분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기에)가 우리의 삶에 가져다줄 수 있는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장단을 알아보고 특히 국내에서는 개인보다는 특히 조직 차원에서 먼저 원격근무를 도입하기 위한 궁리와 실험을 머리를 맞대고 해봐야할 때다. 그 과정에 이 다큐멘터리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출품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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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mments
  1. 02/08/2017
  2. 02/08/2017
    • 02/10/2017
  3. 03/22/2017
    • 03/27/2017
      • 04/03/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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