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 신용카드 재발급, 보험 재가입, 짐정리 등의 이유로 간만에 귀국했다. 몇 주 안에 모든 일들을 싹 다 처리하고 다시 나갈 생각으로 에어비앤비를 알아보던 참에,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타고 타고 하우스시팅 자리를 내놓은 분과 연결되었다. .
하우스시팅은 거주자가 여행이나 출장 등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 집을 돌봐줄 수 있는 (빈집털이 방지와 함께 때때로 반려동물 관리가 옵션으로 따라오는 경우가 있음) 사람에게 집을 맡기는 일인데, 특히 오래된 주택의 경우 장기간 수도나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집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어 많은 나라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과 호주에서 해본 적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선 듣도 보도 못했는데.
하우스시팅 자리를 내놓으신 분은 고양이를 돌보면서 집도 봐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계셨다. 호텔이 아닌 진짜 살림집으로 간만에 복귀하니 참 여러가지 손이 가는 것들이 많았다. 공과금, 우편물, 보일러 수리, 수도검침, 그 외 청소나 설거지같은 걸 제외하고라도 은근히 일일이 손이 가는 집 구석구석 관리. 재고가 부족한 물자 조달 및 상태 불량한 물자 교체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닌 것이, 꽤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했다. 집을 소유한다는게 참 어떻게 보면 돈도 돈이지만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잡아먹을 수 있겠구나 하는 성찰을 하며 꼼꼼히 쓸고 닦으며 지냈다.
행정처리 외에 이번에 서울에 머무르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몇 년 간 항상 마음 속에 짐짝처럼 머물러 있던 짐 정리였다. “언젠가는 다~ 쓸 데가 있겠지”하며 각종 살림살이며 옷이며 하는 것들을 싹 다 창고 서비스를 이용해 맡겨 놓고 나갔었는데, 정리를 전혀 하지 않고 그냥 쑤셔 박다시피 하고 나갔던터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카오스다, 지옥도가 따로 없다.
한 방에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날을 잡아 벼룩시장을 열었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전자제품 등등 순식간에 상당량을 처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남은 옷 박스는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기증 과정은 간단했다. 대량 기증의 경우 전화나 온라인을 통해 일시를 예약하면 아름다운 가게에서 기사님이 직접 오셔서 픽업을 해가신다.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한국에 남게 된 짐은 수트케이스 하나와 짐 가방 하나 – 코트를 비롯한 겨울옷, 서류 등이 들어있다.
짐 보관 서비스는 한 평 두 평 단위, 그리고 장기로 이용할 경우 경기도나 충청도쪽에 창고를 가지고 있는 곳들이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하다. 이번에 싹 정리하기 전에는 몽땅 한국보관시스템을 통해 보관했는데, 1평 이용시 1년에 20만원대. 서울의 경우 픽업이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방의 경우 도어 투 도어 서비스 가격이 왕복으로 10만원을 훌쩍 넘는다), 가격이 두 배 세 배로 무지막지하게 비싸다. 소량이고, 서울 보관을 원했기에 여기저기 알아보다 최종적으로 맡아줘박선생(2016년 하반기 ‘짐좀’에 합병되었다)을 선택했는데, 가격도 가격이고 서비스면에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박스 단위로 보관하고 박스 하나 당 과금, 나처럼 비규격 보관물품도 보관이 가능하다.
이렇게 내가 이번에 팔거나, 주거나, 기증하면서 정리한 짐들은
- 노트북 2개
- 아이패드
- 고프로
- 헤드셋 2개
- 디지털 카메라 2개
- 블루투스 스피커와 전자사전, 무선공유기 등 각종 전자기기
- 전자레인지 커피포트 빨래건조대 밥솥 다리미 등 각종 살림살이
- 커피테이블, 3단 선반
- 가방과 신발, 각종 잡화
- 옷 가장 큰 이사박스로 2박스
- 여행배낭 2개와 수트케이스 2개
- 우쿨렐레
- 책과 음반
- 각종 그림, 이젤, 기타 인테리어 소품
정도이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짐을 정리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바로 “이 많은 것들을 도대체 왜 사다 모았을까?”였다. 당시에는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샀던 것일텐데 지금 보고 있으니 도무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들이니 이 얼마나 불가사의한가.
나 포함 많은 이들이 경험을 살 수 있는 시간과 돈을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에 욕구 해소를 가능케 하는 물건을 사는데 소모하곤 한다. 회사에서 내 삶의 일부분과 맞바꿔 얻은 돈을 회사에서 생산한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다시 반납한다.
내가 저질러 놓은 것들을 펼쳐놓고 보자니 정말 많이도 이것 저것 끌어다 모았다. 몇 번 쓰지도 입지도 않는 것들을 한번씩 보고 쓰다듬는 행위에서 만족감을 얻으며 지내다 이제껏 이 많은 물건들 중 없어서는 안 되는, 내게 정말 필요한 물건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를 시간이 갈수록 깨닫고 있다.
노마드들 대부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무런 자각없이 물건을 쌓아둘 고정된 공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만족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필요한 만큼만 물건을 장만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내 소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중 정말 내게 필요한 물건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지, 그리고 그 나머지 소유물들이 내 삶에 끼치는 영향력은 또 어느 정도 될런지와 같은 문제는 생각해 볼만한 화두이다.
7 thoughts on ““그 물건이 당신에게 꼭 필요합니까?” 서울을 다시 떠나며 느낀 소유의 문제”
디지털 노매드는 아니었지만 여행을 아무 생각없이 2년 반쯤 다니면서 비슷한 상황과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근데 또 사람마다 미니멀리즘한 짐싸기라는게 다르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그런 것을 비교해 보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듭니다.
와아아ㅡ
사랑해요 언니
정말 맞아요 특히 옷이 그렇죠 여자들은 ㅋㅋㅋ 소유에 대해 정말 생각해봐야겠네요
노마드들의 특성과 미니멀리스트의 특성은 부합하는 부분이 많은 듯 해요.
매번 좋은 글 감사해요.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디지털 노마드 글들이 상당히 흥미롭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교토에 산지 7년쯤 되었어요. 작년말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현재 휴식기간을 가질 겸 서울이랑 교토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살고 있어요.
저도 도유진님처럼 교토의 창고 서비스를 이용해 짐을 대충 넣어두고 있었는데 며칠전에 지인이 집에 남는 공간을 빌려줘서 창고를 비우고 박스 4개로 짐을 줄였어요. 이번에 한국 들어가면 부모님 집에 박아 둔 짐도 절반으로 줄이려고요.
도유진님 말씀처럼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다보니 이것저것 없어도 살아지고, 나 대신 자리 차지하는 짐이 점점 부담스러워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니멀리스트가 되가는 것 같아요. (교토에 살 때도 같이 살다가 혼자 살다가 같이 살다가 스웨덴 가서 반년 살다가 다시 교토에서 같이 살다가 혼자 살다가 같이 살다가.. 이사를 많이 다니다보니 짐이 점점 줄어가더라구요 :0…)
지금은 일본지인에게 남는 빌딩이 있어서 에어비앤비에 등록하고 교토에 올 때마다 머물면서 관리하고 있어요.
왔다갔다하면서 주로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일하다보니 디지털노마드라는 키워드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거 같아요.
쉬는 동안 포트폴리오 정리하고 영어 공부도 좀 더 해서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알아볼까 해요.
일러스트와 그래픽디자인으로 다른 나라에서 생계를 꾸릴 수 있을 지 걱정되면서 한편으로는 신나네요.
도유진님의 글들이 늘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소유한 물건의 양과 제 정신건강이 어느 정도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사람마다 다를텐데 저는 현 상황에서 그렇다는 걸 알게 되어서, 지속적으로 이 부분을 주시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확실히 소유한 물건과 정신건강은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을 때 불필요한 소비가 늘고 나 자신이 건강할 때 겨우 버릴 수 있게 되더라구요. 횡설수설한 이야기에 리플 달아주셔서 저야말로 영광이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