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이야기④] 중요한 건 고민과 운동을 멈추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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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수업을 듣고서부터 첫 2년 정도는 폴을 배운다는 이야기를 딱히 주변에 하지 않았다.

다들 30대에 접어들고 나선 모였다 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건강, 그중에서도 운동이다. 각자 요즘 하는 운동 이야기 같은 게 화제로 나올 때는 폴과 병행했던 복싱, 풋살 이야기를 주로 했고 어지간히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때는 ‘굳이’란 생각이었다. 혹여라도 상대방이 “하고 많은 운동을 두고 왜 그런걸?” 같은 식으로 반응할 때 섣불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앞서 이전 글에서 이야기했던 ‘옷을 왜 이렇게 입냐 하면~’ 을 포함한 설명을 구구절절 대뜸 하기에도 뭐하지 않나.

내가 직접 하고 보고 들으면서 인지하게 된 폴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이 분명 존재했고, 또 그보다 더 무게가 무거웠던 내 안에 산재한 물음표 더미에서 제대로 답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는 구태여 먼저 말을 꺼낼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한해가 지나고, 또 한해가 지나면서 점점 더 많은 게 보였다. 폴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도 다양하게 들어보게 되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가지각색의 운동을 즐기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하나둘 수집하기 시작했다. 2023년에는 내가 수업에 참여했던 선생님 한 분을 인터뷰해서 운동하는 여자들을 다룬 웹 다큐멘터리 시리즈 <움직여!> 폴스포츠 편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많은 부분 해소된 폴에 관한 나의 고민거리 중, 가장 컸던 것은 바로 폴과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 사이의 연결고리였다.

 

Q3. 스트리퍼들이 추는 춤을 굳이 춰야겠나?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뉴스 기사처럼([SBS뉴스] “눈요깃거리가 아닌 예술이랍니다” 폴댄스 선수의 이야기) 폴을 둘러싼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에는 스트립 클럽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거 야한 봉춤 같은 거 아니야?”와 같은 일각의 시선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운동 사이의 간극이 커도 꽤나 컸기에 처음에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 가진 오해이겠거니’ 하고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직접 배우면서 느낀 이 운동은 기계체조와 아크로바틱의 영역과 상당 부분 궤를 같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같은 ‘폴댄스’라는 카테고리로 함께 묶이는 ‘이그조틱’이라는 장르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부터는 조금씩 나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이그조틱(exotic)은 7인치 가량의 높은 힐을 신고 폴 기술과 바닥 안무를 접목하여 음악에 맞춰 관능미를 중점적으로 선보이는 장르다. “폴댄스 그거 야한 봉춤 아니야?”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마도 영화에서든 힙합 뮤직비디오에서든 봤을 그것이다.

*일단 이그조틱이라는 명칭부터 단어 그 자체만 놓고 봤을 때 문제의 소지가 있다. 소수인종을 일컬어 이국적이라며 상대를 타자화시키는, ‘오리엔탈’과 함께 손꼽히는 인종차별적 단어이지 않나(크게 논란이 된 사건으로는 영국 해리 왕자가 본인 결혼식에서 비백인 하객들더러 수차례 ‘이국적’이라고 한 발언이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등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이그조틱 수업 이름을 다른 단어로 대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폴 스튜디오도 생겨나는 점은 충분히 고무적이다. 

폴댄스 힐의 대명사로 불리는 브랜드 ‘플레져(Pleaser)’

국내외를 막론하고 폴 스튜디오에 따라 이그조틱 클래스를 개설해둔 곳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북미 지역과 러시아 등지에는 상당히 유명하고 규모도 큰 대형 이그조틱 전문 스튜디오가 여럿 있는데, 개중 몇 곳의 경우 스튜디오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 프로필 등지에 Sripper Owned & Operated(스트리퍼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곳) 같은 문구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한 유명 이그조틱 스튜디오의 인스타그램에 폴댄서가 남성을 앉혀두고 랩댄스를 하는 영상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이건 또 어떻게 봐야 하는 건가 싶어졌다. 국내에서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던, 한 폴댄스 강사가 받은 메세지(아래 이미지)에 폴을 가르치고 또 배우는 사람들이 분노했던 것을 떠올리자니 더더욱 폴댄스와 성적대상화 간의 관계가 복잡하게 보였다.  

출처: [SBS뉴스] “눈요깃거리가 아닌 예술이랍니다” 폴댄스 선수의 이야기

모르는 채로 두는 건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각종 협회 웹사이트, 레딧을 포함한 온갖 커뮤니티에서 국내외 논문까지 하나하나 뒤져서 찾고 보고 듣고 또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폴의 기원 찾기부터 시작한 자료 조사는 스트립 클럽, 폴 피트니스로의 변천사, 올림픽 종목으로 만들고자하는 협회의 노력, 여기서 벌어지는 각종 갈등과 논쟁, 그리고 이 속에서 각자의 이유로 폴을 즐기는 이들의 이야기로까지 이어졌다. 여기서는 최대한 핵심을 요약해서 정리해 볼 생각이다. 

(이게 도대체 다 뭐냐 싶다면, 당신은 지금 운동에 진심인 한 집요한 다큐멘터리 메이커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계십니다.)

 

폴의 기원과 변천사 

*논문, 기사글 등의 출처를 하나하나 다 적기에는 너무 텍스트가 늘어지므로, 본문에서는 최소한의 표기만 하고 포스팅 하단에 참고 자료를 링크와 함께 남긴다. 

일단 뒤져본 바로는 폴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흔하게 등장하는 건 인도의 ‘말라캄’이라고 불리는 장대요가와, ‘차이니즈 폴’이라고도 불리는 중국의 장대를 이용한 기예 예술이다. 남성 기반의 곡예 체력 단련 활동부터 이집트 여성 무용수들이 북미를 순회하며 공연한 것까지 그 유래에 대해서는 이외에도 다양한 설이 있으나, 각종 논문에서도 폴의 기원을 말할 때는 이 두 가지를 가장 대표적으로 꼽고 있다. 

말라캄(Mallakhamba), 위키피디아

기예와 요가의 영역에 있던 폴은 1980년대에 미국으로 들어와 소위 ‘젠틀맨 클럽(이미지는 굳이 가져오지 않고 예시 링크만 걸었다. 구글 gentlemen’s club 이미지 검색에서 폴이 등장하는 첫 번째 이미지로 가져왔다)’이라고 불리는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인 유흥업소에서 ‘랩댄스(남성 소비자의 무릎에 앉거나 밀착하여 이뤄지는 에로틱 댄스)’와 더불어 대표적인 에로틱 댄스로 소개되었다(Griffiths 2016 / 김윤정, 권수용 2019). 이후 폴댄스는 특히 북미를 중심으로 스트립댄서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어 왔으며,이때 많은 전문적인 폴 동작 및 트릭 역시 함께 개발되고 발전되었다. 

폴스포츠로의 대중화 및 용어의 분화 

1990년대부터 피트니스의 형태로 폴을 가르치는 폴 스튜디오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폴댄스는 폴스포츠로의 대중화 과정을 겪게 된다. 이때 등장한 폴 스튜디오 공간은 성인 엔터테인먼트로서의 폴댄스와 폴 피트니스 및 폴스포츠 간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 지었다(Fennell 2018). 이와 함께 용어의 분화가 일어나게 되며 경계선이 생기게 된다. 폴스포츠가 피트니스의 영역에서 성장하면서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하게 된 셈인데, 사소한 예로 폴댄스와 폴스포츠는 위키 페이지가 따로 있다(Pole dance 위키페이지 / Pole sports 위키페이지). 

여기서 한국은 폴의 도입부터 특이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북미와 같은 형식의 젠틀맨 클럽이 성행하지 않았던 관계로, 국내에 도입될 때부터 폴은 피트니스의 영역으로 소개되었다(김윤정, 권수용 2019). 2007년 폴을 헐리우드 스타들이 즐기는 피트니스로 소개한 MBC 보도에 이어 2010년대 가인, 애프터스쿨, 마마무 솔라와 같은 여성 가수의 뮤직비디오와 무대 퍼포먼스로 점차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국제 폴스포츠 대회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들의 인터뷰도 함께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런 도입 과정 탓에 독특하게도 서구사회의 폴댄스를 둘러싼 낙인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미미하게 존재한다. ‘폴댄서는 다 스트리퍼’와 같은 낙인을 경험하는 과정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폴을 배우는 사람이 대처해야 할 문제가 되지 않았다(김윤정, 권수용 2019). 용어의 측면에서는 피트니스로서의 폴 역시 좀 더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폴댄스’로 함께 지칭되고 있으며, 여러 논문에서도 이러한 배경에서 폴/폴댄스/폴스포츠/폴피트니스와 같이 다양한 용어를 병기함을 명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용어의 분화와 더불어 국제 폴스포츠 연맹이 탄생한다. 

국제 폴스포츠 연맹과 올림픽 종목 등록을 위한 노력 

폴스포츠 대회를 몇 차례 직관하러 간 적이 있다. 채점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보면 더 재밌을 것 같아서 심사 기준표를 찾아서 보았는데, 경기를 볼 때도 그렇고 심사 기준표를 보면서 든 생각이 이거였다.

“어? 이 정도면 이거 올림픽에 들어가도 되겠는데?”

같이 대회를 보러 갔던 친구도 비슷한 감상을 공유했다. 기술의 난이도와 완성도에 따라 주어지는 세세한 점수 체계가 있고, 테크닉만 보는 게 아니라 경연의 테마와 예술성 같은 부분을 함께 보는 측면에서 피겨 스케이팅 등과 심사의 틀이 흡사해 보였다. 

IPSF의 대회 규정집 일부 (한국폴스포츠연맹 걸 자료화면으로 가져오고 싶었으나 협회 회원이 아니면 자료를 열람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IPSF의 국제표준 기술집을 따른다고 하니 내용은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 건 나와 내 친구 말고도 많았던 것 같다.

2013년 창설된 국제 폴스포츠 연맹(IPSF)은 2016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폴스포츠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등록하기 위한 첫 신청서를 제출했다. 1년 후 IOC는 폴스포츠를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하였으며, 동시에 국제 폴스포츠 연맹(IPSF)을 국제 스포츠 단체로 함께 인정했다. 2017년에는 국제스포츠연맹(GAISF)에 의해 폴이 공식적인 프로 스포츠로 인정되었다. 폴스포츠를 올림픽 종목으로 만들겠다는 연맹의 야심 찬 계획이 막 첫발을 내딛게 된 셈이다. 

두 명의 선수가 하나의 페어로 선보이는 ‘더블’ 카테고리(https://www.g-spr.com/post/emergence-of-pole-dancing-as-a-sport)

그러나 앞으로의 과정은 녹록치 않다. 당장 다음 스텝으로는 세계반도핑기구(WADA) 가입, 국제스포츠연맹(GASIF) 정회원 승격, 최소 50개의 전국 연맹 확보 등의 긴 시간이 소요되는 만만치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 앞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올림픽 종목으로 승인된 스포츠로는 스포츠 클라이밍과 스케이트보드(2016년), 서핑(2020년) 등이 있다.

동시에 폴스포츠를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만들고 정식 스포츠의 영역으로 포함하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반대파의 논거는 폴이 그간 향유되어 온 배경을 근거로 한, 폴에 내재된 과도한 성적대상화와 성차별 등이었다(Levy 2025 / Weaving 2020).

(찬성 의견 요약 번역) “많은 에어리얼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폴은 몸 전체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몸을 거꾸로 뒤집고, 여러 기술을 연결하고 새로운 루틴을 학습하며 심박수를 높이는 유산소 운동을 함께 하게 됩니다. 폴이 여성을 대상화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강사들은 학생이 스스로 원하는 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게 합니다. 폴이 올림픽에 포함된다면 이 스포츠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고, 또 사람들이 폴의 예술성, 기술성 및 힘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반대 의견 요약 번역) “폴댄스를 성산업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폴댄스는 거의 벌거벗은 여성이 옷을 완전히 입고 있는 남성의 유흥을 위해 스트립 클럽에서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활동입니다. 여기서 여성은 성적 오락 및 남성의 만족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폴이 피트니스로서 훌륭할지는 몰라도 운동을 하기 위해 우리가 성산업까지 들여다봐야 하는 걸까요?”

[HuffPost] Should Pole Dancing Be Classed As A Sport? Two Women Go Head-To-Head On The Debate (2017년 10월 17일)

그런데 폴스포츠를 ‘정식 스포츠’의 영역에 포함하려는 일련의 행보에 반발하는 건 여성의 성적대상화를 우려하는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확히 그 반대 지점에 있는 이들 사이에서도 거센 반발이 일어나며 폴 커뮤니티 내에서도 크고 작은 갈등이 벌어졌다.

GASIF에 의해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인정된 이름은 ‘폴스포츠’와 ‘폴’이었다. 여기서 제외된 영역, 좀 더 정확하게는 기존에 수많은 폴 트릭을 개발하고 갈고 닦아온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한 스트리퍼 커뮤니티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스트리퍼 커뮤니티와의 갈등 

이러한 갈등은 2015년 무렵 #NotAStripper(스트리퍼 아님) 라는 해시태그의 등장과 함께 온라인에서 가시화되었다. 피트니스로 폴을 접하고 폴을 스포츠로 간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취미로 폴을 즐기는 이들이 ‘폴댄스’하면 그간 연상되어 온 스트립댄서, 에로틱 댄스, 남성을 대상으로 한 성인 유흥업소 등의 이미지와 거리를 두고자 인스타그램에서 하나둘 이 해시태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니 뭐 싸우자는 건가, 왜 이런 것까지?’ 싶었는데, 찾아볼수록 그 배경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또 아니었다. 앞서 한국에서는 곧바로 피트니스의 영역으로 폴이 도입된 배경 탓에 폴에 대한 이미지가 스포츠, 레저에 훨씬 가깝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최소한 폴을 배운다는 이유로 ‘너 스트리퍼야?’ 같은 반응이 곧바로 나오진 않는다. 그런 국내에서도 영화에서 한 컷이나 어쩌다 나올까 말까 한 성인유흥업소에서의 폴댄스 장면을 보고 가지게 되는 ‘야한 봉춤’의 이미지가 분명 존재한다. 하물며 1980년대부터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젠틀맨클럽에서의 에로틱 댄스, 스트립댄스로 폴댄스가 고유의 영역을 구축해 온 지역에서는 이후에 유입된 폴피트니스 인구를 둘러싼 시선이 어떠했을지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런 해시태그는 곧바로 스트리퍼 커뮤니티의 즉각적인 반발을 일으켰다. 스트리퍼이자 작가인 Elle Stanger의 주도로 스트리퍼들은 #YesAStripper 해시태그로 맞섰다. 해당 사건을 다룬 기사 등을 통해 파악한 양측의 주장은 대략 아래와 같이 갈무리된다. 

#NotAStripper

    • 폴스포츠를 피트니스로서 즐기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낙인을 탈피하고자 함
    • 기존 스트리퍼 커뮤니티에서 수행해 온 에로틱 댄스로서의 폴댄스와 스포츠로서의 폴의 차이를 알리고자 함

#YesAStripper

    • 폴이 대중화되면서 유입된 젊고 어린 백인 여성들, 그리고 스트리퍼가 아닌 사람들이 운영하는 폴 스튜디오가 스트리퍼 문화로부터의 분리 운동을 추진하고 있음 
    • 취미로 폴을 즐기는 사람은 돈을 주고 기술을 배우고 있음. 그러면서 생계를 위해 폴댄스를 수행해 온 그 기술의 기원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며 모욕적임
    • 이러한 분리 조치는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를 강화함

이뿐만이 아니다. 2021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폴댄스를 다룬 다큐멘터리 <Strip Down, Rise Up>에 대해서도 스트리퍼 커뮤니티의 항의가 일어났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 중에 스트리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트리퍼라는 직업의 존재가 지워졌으며, 피트니스로서의 폴과 섹스산업에서 수행되는 폴댄스를 나누고 병치시키는 연출이 있었다는 것이 논란의 요지였다. 이외에도 여러 아젠다에 대한 크고 작은 싸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 때마다 스트리퍼 커뮤니티에서는 화이트워싱/문화적 전유/역사 지우기와 같은 단어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이런 분리 작업이) 언젠가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난 스트리퍼가 아니니까 사람들은 날 존경할 거야”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거에요. 스트리퍼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저 여성을 싫어할 뿐입니다. 자신을 (스트립댄스에서) 분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겠지만 글쎄요, 행운을 빌어요. 우리는 결국 같은 배를 타고 있습니다.”

[BuzzFeed] Why Strippers Are Upset About Netflix’s Pole Dance Documentary (2021년 2월 18일)

잠깐 샛길로 새자면, 이런 양상의 갈등은 비단 폴댄스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다. 벨리댄스에서도 이와 같은 일련의 분화 과정으로 인한 갈등이 일어난 바 있는데(Moe 2012) 이 이야기도 꽤 흥미롭다.

튀르키예, 이집트 등지에서 유래된 벨리댄스는 193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한 튀르키예, 아랍 출신 무용가들에 의해 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지에서 향유되기 시작했고 이후 스포츠의 영역으로 분화되며 기존 커뮤니티와의 충돌이 일어났다. 여기서 벨리댄서들은 사회적 낙인을 피하고자 1) 자신이 벨리댄서라는 사실을 숨기기 2) 스트립 컬쳐와 분리하기 3) 벨리댄스를 에로틱 댄스로 보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 및 홍보 활동 하기와 같은 일련의 전략을 사용했다(Kraus 2010). 지금까지 위에서 이야기한 폴과 거의 같다시피 한 이야기의 흐름이다.

국내에서는 적어도 표면화된 갈등은 내가 찾아본 바로는 보이지 않는다. 앞서 말한 도입 배경의 차이가 큰 탓일텐데, 그렇다 보니 저쪽에서는 저렇게 싸우고 있을 때 국내는 각자 평화롭게 자신의 영역에서 각자 할 걸 하는 양상 아닌가 싶다. 이그조틱을 즐기는 사람은 방송댄스와 같은 맥락에서 격렬하게 움직이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이그조틱 수업을 듣고, 피트니스로서 폴을 즐기는 사람은 ‘아 너무 무섭고 아프고 힘들지만 근육도 생기고 재밌다’하며 또 폴 수업을 듣는다. 

 

이그조틱 폴 대회를 직관하고 

결국 Q3. 스트리퍼들이 추는 춤을 굳이 춰야겠나? 라는 질문은 ‘폴댄스가 여성의 성적대상화에 일조하는 것 아닌가?’로 이어지게 된다. 앞서 폴의 기원과 분화 과정을 알아보았고, 그러면 여기서 성적대상화라는 비판점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그조틱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일단 게으르다. 최소한 직접 보기라도 해야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있으니 이그조틱 폴 대회 관람 신청을 해서 여러 차례 직접 가서 봤다.

대표적인 이그조틱 폴댄스 대회로는 Exotic GenerationExotic Revolution 등이 있다. 두 대회 모두 러시아에서 시작되었으며, 프랜차이즈 형태를 통해 같은 브랜드 이름으로 세계 각지에서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안에도 파워풀하고 역동적인 기술이 중심을 이루는 ‘하드’, 극적인 스토리텔링과 실험적 퍼포먼스가 강조되는 ‘씨어터’, 기존 이그조틱 스타일로 관능성 및 섹시함을 주요 요소로 하는 ‘올드스쿨’과 같이 카테고리가 나누어져 있다. 아래 영상은 2022년 대회의 심사위원 특별 퍼포먼스 영상이다. 

일단 직접 보고 온 감상은, ‘엄청나다’ ‘어떤 면에서 비판 받는지는 알겠지만….’ 정도로 갈무리된다. 이제 폴을 고작 몇 년 배운 내 눈에도 보인다. 어느 정도로 피나는 연습을 했을지, 저 사람의 기술과 힘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수준인지. 그리고 저 표현력이 소위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의 관능미’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이유로 그저 비판만 받기에는 줄줄이 이어 생각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가까이는 소프트 포르노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일부 업체의 바디프로필 컨셉, 국내에서 여자 아이돌이 상품화되고 소비되는 양상,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미국 팝스타들의 뮤직비디오나 무대 퍼포먼스가 마냥 ’empowering women’이라는 듣기 좋은 구호로 찬양받는 게 눈 가리고 아웅은 아닌지 등.

누군가는 이를 성녀와 창녀 이분법으로 볼 것이고, 누군가는 여성에 대한 성적대상화의 자발적인 실행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여성에 대한 검열이자 폭력으로 논지를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인지하고 어디까지 경계선을 그어야 하는지, 그 선은 누가 정하는지, 개인과 사회의 역할과 책임은 무엇인지, 여성을 판매하고 또 소비자로 표적 삼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힘은 또 얼마나 압도적인지, 우리 다음 세대의 여성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지, 모두 어렵고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 주제다. 

이렇다 저렇다 딱 잘라 함부로 이야기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내가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충분히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고, 또 잘하는 당사자를 눈앞에서 보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공유하는 순간 내 머릿속에 있던 수많은 고민은 갑자기 하릴없이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하고 있는지 하는 것들을 목격하게 되면 얼기설기 얽혀 있는 생각 실타래가 부질없어지는 과정을 겪게 된다. 실존 앞에서 경험 없는 언어는 힘을 잃는다. 

 

중요한 건 고민과 운동을 멈추지 않는 것

“이건 완전히 스포츠예요. 완전히. 유연성도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힘도 있어야 합니다. 마치 체조와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폴 운동선수입니다.”

“폴댄스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죠. 저는 춤이 아닌 폴 트릭과 테크닉을 수행해요. 코어와 팔의 힘, 협응력이 필요합니다. 이게 체조와 뭐가 다르죠? 저는 그냥 ‘폴러’에요. 폴 하는 사람요.” 

앞서 자주 인용한 논문(김윤정, 권수용 2019)에서 폴을 진지한 여가 활동으로 여기는 연구 참여자들이 자신을 지칭하는 표현이 각기 다른 점이 흥미로웠다. 이 파트를 읽으면서 내게 폴은 또 무엇일지 잠깐 생각해보았다. 답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내가 나를 더 좋아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운동, 그거였다.

이게 된다고? 싶은 역동적인 동작을 해낼 때마다 느껴지는 쾌감, 그리고 매번 만나게 되는 평상복으로 가려지지 않은 날 것의 멍들고 다치고 그러면서도 마지막 힘까지 쥐어 짜서 내가 너무나 하고 싶어하는 기술을 수행해 주는, 고마운 움직이는 나의 몸. 

내 몸을 알아가는 과정을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조금이라도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느껴질 때마다 곧바로 뒤이어 생각한다. 이제라도 내 몸과 친해지기 시작한 게 어디야, 이제 멈추지 않고 움직이면 된다.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지금 하루하루가 나중에는 어디쯤의 경지에 나를 데려다 놓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것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움직이자. 움직이는 여자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참고자료 리스트


드디어 끝났다.

길어봤자 총 두 편 정도로 가볍게 끝낼 계획이었는데 쓰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그것마저 자꾸만 이야기가 추가되는 것을 몇 덩어리 뚝뚝 잘라내고 쳐낸 것이 이렇다. 한동안은 운동 이야기를 쭉 기록하게 될 것 같다. 다음 주제는 발레, 최근 시작한 러닝에 대한 극심한 불평불만, 그리고 사심 가득 담아 만든 운동하는 여자들 웹 다큐멘터리 시리즈 작업기 정도가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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