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이야기③] 여자가 운동할 때 (feat. 에스테틱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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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의 주 참가층은 여성이다.

이는 폴스포츠 대회에 ‘맨폴’ 카테고리가 따로 있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국제폴스포츠연맹 IPSF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프로 수준의 남자 선수는 약 500명으로 추산된다). 동시에 노출이 많은 폴웨어를 입고 수행하는 운동이고 북미 지역의 스트립클럽에서 랩댄스와 함께 시연된 역사가 있기에 국내에서도 “그거 봉춤 아니야?”같은 말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우연히 폴 연습 영상을 봤다며, ‘남사스럽고’ ‘보기 좀 그렇더라’ 같은 말을 주변인에게서 들었다는 사례도 있다. 혹자는 여성이 주류인 스포츠에 대해서는 항상 이러한 검열의 잣대가 들이밀어진다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SBS뉴스] “눈요깃거리가 아닌 예술이랍니다” 폴댄스 선수의 이야기 (2018년 3월 15일)

내가 그간 해온 작업물 상당수는 여성을 중심부로 두고 이야기를 풀어낸 결과물이다. 불법촬영범죄, 운동하는 여성들, 여성과 주거 문제 및 ‘탈코르셋’이라는 현상으로 한국에서 가시화된 여성의 꾸밈노동 등을 여태껏 다큐멘터리로, 뉴스 영상으로, 웹 시리즈 영상 등으로 제작해 왔다. 영상에서 다루는 주제에 관한 공부는 필수적이고, 여전히 지금도 모르는 게 많아 공부는 현재 진행형이다.

내게 폴은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또 다른 소재가 되었고, 이런 배경에서 출발한 폴과 나와의 관계는 복잡하고 오묘하며 어떤 나의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오히려 폴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많은 이들이 가장 쉽게 제기하는 의문이나 비판점은 답해주기에도, 스스로 답을 내리기에도 쉬웠다. 정말 어려운 건 이 글의 마지막에 나오는 질문이다. 이번 글은 바로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Q1. 왜 굳이 옷을 벗고 하나? 

이건 사실 구구절절 말할 것 없이 아래의 짧은 영상 하나만 보면 설명이 끝난다. 

보다시피 중요하고 자주 쓰이는 기술 상당수가 피부의 마찰력을 요구한다. 폴스포츠 하는 사람에게 옷을 다 입고 기술하라는 건 2~3미터, 대회에서는 최대 4~5미터 높이에서 바닥으로 떨어져서 골절에 뇌진탕 걸리라는 의미다. 같은 결에서 겨울에는 건조해서 연습하다 떨어지기 쉽기 때문에 폴 위에 올라가기 전에 알로에 젤이나 스프레이 등을 맨살에 뿌려 주어야 하고, 여름은 습해서 실력을 늘릴 수 있는 황금기다. 폴 스튜디오에서 냉난방기를 껐다 켰다 하는 것도 몸이 너무 건조해서도 또 너무 땀이 나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기술에 따라 어떤 건 오금이, 어떤 건 옆구리가, 어떤 건 허벅지가 노출되어 있어야 하는데 만약 오금만 나와 있어도 괜찮은 기술이라면 바지만 걷어 올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기술을 수행할 때는 최대한 이 모든 부위를 다 내놓는 것이 편하다. 그날 그날 배우는 기술에 따라 옆구리라던가 팔 안쪽 이런 식으로 선생님이 딱젤(피부의 마찰력을 높여주는 일종의 물풀 같은 폴 용품)을 바를 부위를 알려주기도 한다. 

해서 브라탑과 쇼츠의 형태로 구성된 폴웨어를 주로 입게 된다. 마치 발레를 갓 시작했을 때는 민망한 나머지 레깅스 같은 일반 운동복을 입고 수업에 들어가지만 점차 ‘아 이걸 입는 이유가 있구나’ 하는 깨달음의 시간을 거치며 레오타드 위에 스커트나 숏팬츠를 입게 되고, 고인물은 더 과감하게 레오타드와 타이즈만(이걸 ‘원타’라고도 부른다) 입게 되는 과정과 흡사하기도 하다.

내 기준 발레 고수의 상징, 레오타드와 타이즈만 입는 원타 (Body Wrappers)

폴웨어는 언뜻 보면 비키니 수영복과 비슷하지만, 막상 수영복을 입고 기술을 수행하기는 어렵다. 폴웨어는 격한 움직임에도 몸을 완전히 감쌀 수 있도록 수영복에 비해 훨씬 더 타이트하고 쫀쫀하며(원피스 수영복과 발레 레오타드 사이의 차이와 흡사하다), 다리를 완전히 찢는 스플릿 기술 등을 고려하여 가랑이(crotch) 너비가 수영복보다 넓다. 움직임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장식 역시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수영복에는 있을 수 있는 각종 잡다한 장식물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듯 폴웨어 역시 해당 운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복장이다. 그러나 이 옷을 입는 몸이 여성의 몸이 되는 순간 여기에는 각종 편견과 잣대가 들이밀어진다. 2023년 작업한 웹 다큐멘터리 <움직여!> 폴스포츠 편에 출연한 50대에 폴스포츠를 시작한 인터뷰이 김희수 님과, 과학기술학 연구자 임소연 박사님의 관련 코멘트를 인용한다. 

“폴스포츠를 한다고 하면 다들 하고많은 운동 중에 왜 그런 걸 하냐는 반응을 보여요. 남들 다하는 골프 같은 운동을 놔두고 왜 몸이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하냐는 거죠. 그런데 수영장 가면 수영복 입잖아요. 자전거 탈 때도 공기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쫙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요. 그런 것엔 아무도 뭐라고 안 거는데 왜 폴에다가는 그러는 걸까요?”   
– 김희수 님

“남성이 하는 운동 중 씨름은 아예 상의를 입지 않아요. 레슬링도 온몸의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딱 붙는 의상을 입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습니다. 결국 옷이 몸에 너무 붙는다거나 노출이 많다거나 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왜 유독 폴웨어에 대해서는 이런 시선이 있느냐? 그건 이 옷을 여성이 입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그 옷을 입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 옷을 입고 있는 ‘몸 자체’를 더 의식하는 거죠.”   
– 임소연 박사

 

Q2. 왜 굳이 영상을 찍나? 

“왜 굳이 옷을 벗고 하냐”와 더불어 심심찮게 들리는 또 다른 ‘굳이’ 시리즈다. 일단 폴 위에 올라가면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 내가 지금 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어지간한 고수가 아니면 살필 겨를이 없다. 특히 아무리 해도 거듭 실패하는 기술은 반드시 영상으로 찍어둔 뒤 계속 돌려보거나, 선생님께 보여드리면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상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실패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 상당수가 진도 기록과 실력 향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수단으로도 인스타그램을 사용한다. 

어떻게 하면 다음에는 이렇게 볼품없이 내동댕이쳐지지 않을 것인가

이 부분은 클라이밍과도 흡사한 지점이 있다. 암벽장에 가면 다들 삼각대가 세워져 있지 않나. 클라이밍에서 목표점까지 도달하기 위한 길 찾기를 ‘문제 풀이’라고 하는데 영상을 찍고 이를 다시 보며 길을 찾고, 인스타그램에서 클라이밍 해시태그가 걸려 있는 다른 사람들의 영상을 보며 문제 풀이에 참고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중량 운동이나 스크린 골프 연습 같은 것도 많이들 인스타그램에 영상으로 기록하는 시대다. 

그런데 왜 폴 연습 영상은 유독 ‘남사스럽다’는 소리를 듣게 될까. 위에서 언급한 웹 다큐멘터리 <움직여!>의 요가 편 인터뷰이인 이소영 님은 그날 그날의 요가 수련을 인스타그램에 영상과 사진으로 올린다. 어느 날 한 남성 지인이 그걸 보고 “야하다” “보기 불편하다”고 말하기에 어디가 그렇냐고 했더니, “옷도 그렇고, 자세도 좀 그렇다”고 하더라는 일화를 소개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는 그 운동을 수행하는 몸이 여성의 몸이기 때문에, 동시에 축구나 복싱 같은 기존에 남성의 영역으로 간주해온 운동과 달리 주 향유층이 여성인 ‘에스테틱 스포츠’일 때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운동하는 여성은 이중고를 겪게 된다. 

 

에스테틱 스포츠와 여성 

어떤 운동을 수행하는 몸이 여성의 몸일 때, 그리고 특히 그 운동의 주 참가층이 여성일 때 왜 항상 이런 시선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에스테틱 스포츠에 관한 한 논문(김윤정, 2021)을 발견했다.

에스테틱 스포츠(aesthetic sports)란 운동 실력, 예술성 및 자기표현을 결합한 스포츠 범주를 일컫는 말로, 속도, 힘 또는 정확도를 주로 평가하는 전통적인 스포츠와 달리 움직임의 아름다움, 우아함 및 창의성 역시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예시에는 피겨스케이팅, 리듬체조,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2017년 7월부터는 하계올림픽 종목명이 ‘아티스틱 스위밍’으로 바뀌었다), 프리스타일 스키와 스노우보드,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춤이 포함된다.

한국 여성의 에스테틱 스포츠 경험을 포스트 식민지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다룬 해당 논문에서는 국내에서 여성이 참여하는 에스테틱 스포츠의 예시로 요가, 필라테스, 그리고 폴댄스를 제시했다. 내가 했고 또 하는 운동 중에서 발레와 폴은 풋살, 복싱과는 뭔가 다른 카테고리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고, 과연 이 느낌적인 차이가 정확히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던 중에 적확한 단어를 찾게 되어 반가웠다.

에스테틱 스포츠는 종종 전통적인 스포츠에 비해 운동 강도나 수련의 난이도와 같은 측면에서 열등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인 스포츠에서는 평가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표현력, 창의성, 예술성과 같은 부분을 간과하는 것이다. 예시로 피겨 스케이팅만 들어도 아무도 이 종목이 축구나 레슬링에 비해 보잘것없고 이런 건 ‘진정한 스포츠가 아니’라는 말 같은 건 할 순 없을 것이다. 

2009 페스타 온 아이스에 출연한 김연아 선수 (위키피디아)

이 논문에서는 연구 참여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경험으로 1) 살을 빼기 위한 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였으며 2) 과거 운동 경험의 부족이 있고 3) 접근성 고려 및 미디어의 영향을 받아 소위 “여성에게 적절한(female appropriate)” 운동을 선택한 점을 들고 있다.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요구되는 ‘예쁜 몸’을 위해 살을 빼고자 하는 동기라니, 그것도 미디어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니, 하고 혀를 차기 전에 그 배경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부터 여성은 운동과는 거리를 두며 자라게 된다. 남학생이 점심시간에 땀 흘리며 농구하고 달릴 때 여학생은 살이 찔까 무서워 밥을 굶는다. 운동을 잘하는 남학생은 멋진 존재로 선망받지만, 여학생에게 운동을 잘한다는 것은 “예쁘게” 보이는 것에 비해 자존감과 자기효능감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여학생은 운동 대신 화장에 더 몰두하고, 화장하지 못한 날에는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과연 여성은 날 때부터 땀 흘리기 싫어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화장하는 걸 더 좋아하고, 끼니를 거르고 운동과 거리를 두도록 태어났을까?

그럴 리가. 결국에는 교육, 미디어, 사회문화적 환경을 따져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에서 인용으로 넣은 조선일보 기사는 제목부터 빵점짜리다. 기사 본문에도 왜 여학생들이 운동하지 않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논의가 없다.

오랫동안 스포츠는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최초의 근대올림픽인 1896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여성 선수는 단 한 명도 출전할 수 없었다.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부터 여성 선수의 참가가 허용됐고, 이후 여성이 출전 가능한 종목이 늘어나면서 올림픽의 ‘금녀의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최초로 여성 선수가 모든 종목에 참여한 올림픽은 불과 8년 전인 런던 올림픽이다.

스포츠는 유독 성차별이 공고한 영역이다. ‘신체를 활용하는 영역은 남성이 더 어울린다’는 고정관념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서대 주종미 교수(사회체육학과)는 스포츠의 성격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경쟁으로 다퉈서 이기는 것, 둘째는 경쟁 속에서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활용해 탁월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 교수는 “이러한 스포츠의 본원적 특성이 남성의 신체와 경쟁력을 강조하고 표현하는 것과 연관돼왔다”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여성의 신체는 남성의 신체와 대조되는 열등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성은 스포츠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여성 스포츠는 남성 스포츠의 주변부에 머물러야만 했다.

스포츠계 성차별의 뿌리는 일반 교과과정의 체육 교육에서부터 나타난다. 여성 프로 스포츠의 성장을 위해선 더 많은 여성 선수들을 육성해야 하지만, 여학생들이 체육에 흥미를 갖고 유입되기 어려운 환경이다. (…) 여학생들이 체육 교육에서 긍정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다. 김은희 씨(독어독문 19)는 “여학생들은 체육을 잘 안 하고 남학생들은 꼭 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체육을 좋아하는 여학생이나 좋아하지 않는 남학생이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여자는 운동을 못하거나 관심이 없고, 남자는 그 반대라는 성별 고정관념이 체육 교육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서울대저널] 운동장에 여성의 자리가 있으려면 (2021년 9월 16일)

이런 유구한 역사 속에서 2000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얼짱’에 이은 ‘몸짱’ 열풍이 대한민국을 휩쓸었다. 다이어트 피트니스의 선풍적인 붐을 국내에 불러일으킨 몸짱 주부 정다연 씨를 시작으로 이제 여성의 몸은 단순히 마르기만 한 게 아니라 슬림하면서도 탄탄하기를 요구받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성적대상화의 꼬리표는 끊임없이 따라붙는데, 아래와 같은 자극적인 기사 타이틀만 보아도 운동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기 시작했는지를 알 수 있다(이름은 가렸으며, 구태여 링크는 걸지 않겠다). 

  • [동아일보] ‘몸짱 아줌마’ OOO, 미친 몸매 화제 ‘꿀복근+볼륨감’ (2011년 11월 3일)
  • [뉴스엔미디어] △△△ 비키니 입고 고난도 요가, 다이어트 자극하는 몸매 (2016년 5월 4일)

논문(김윤정, 2021)에서는 이런 시류를 통해 ‘female oriented exercises’가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음을 짚고 있다. 그 첫 번째 주자가 ‘요가 붐’이라고도 불린 요가 열풍이다. 요가는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효과적인 다이어트 방법으로 가장 크게 인기를 끈 운동이었다. 비슷한 루트를 따라 뒤이어 필라테스가 등장했다. 요가와 필라테스가 상대적으로 정적인 운동이라면 그 이후의 트랜드는 좀 더 동적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폴댄스가 대표적인 예다.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적절한 ‘여성성’을 갖춘 운동은 대체로 다이어트를 키워드로 걸고 있으며, 여러 자료에서도 여성 응답자의 상당수는 운동 시작 계기를 ‘살을 빼기 위해서’로 들고 있다. 사회에서 바람직하게 여겨지는 여성의 몸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그 모습이 한 끗 차이로 ‘너무 여성적이거나 야해지는’ 순간 순식간에 성적대상화의 대상이 된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의 연속이다.

여성이 주 참가층인 운동은 이 엉망진창인 틀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일까 하는 고민이 생기는 지점이다. 그러다 <움직여!>를 제작하면서 만나게 된 임소연 박사님과의 인터뷰에서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움직여!> 임소연 박사 인터뷰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어떤 존재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운동하는 여성에 대한 시선입니다. 여성의 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요. 그 몸이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것보다는 그 몸이 여성의 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몸은 보여지는 몸이 됩니다. 몸의 주인이 그 몸을 움직이고 있는 여성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자신의 몸을 다양한 상황에서 대면하고 이를 의식하는 경험이 없으면 여성 스스로도 그런 사회적 시선을 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특히 요가처럼 여성에게 사회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특정한 여성성, 또는 여성적인 몸을 만들어주는 운동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많은 여성이 진입하는 운동이 있습니다. 이런 운동은 여성에게 접근성이 좋고 현실적으로도 많은 여성이 하는 운동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선과 현상을 타파할 수 있는 가능성은 운동을 하는 여성에게서 나옵니다. 사실 사회에서 부여하는 여성성이라는 것은 실재하는 여성을 모두 아우를 수가 없어요. 모든 여성은 다 다르고 다양한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사회에서 기대하는 여성성이라는 것에 완벽히 부합할 수 없습니다.

운동에 진입하는 여성 인구가 많아질수록 그 여성들의 존재 자체는 다양한 몸과 다양한 여성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현상이 됩니다. 동시에 여성 개개인으로 들어가면 스스로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경험, 호흡하는 몸, 움직이는 몸, 이런 다양한 몸을 직접 대면하고 느끼는 순간이 쌓이게 됩니다. 이런 순간순간들이 쌓여서 이 사회의 거대한 시선을 버티고 넘어서는 힘을 주게 되지 않을까 해요.

나의 몸은 보여지기만 하는 객체가 아니라, 이런 다중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운동을 하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거죠. 이러한 측면에서 외부의 시선에서 자신을 지키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 운동이기도 합니다. 

– <움직여!> 임소연 박사 인터뷰 중.

살을 빼기 위해서 시작했다고 하면 뭐 어떤가. 그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넣었다.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대면하는 과정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Q3. 스트리퍼들이 추는 춤을 굳이 춰야겠나?

드디어 나왔다.

가장 나를 고민하고 또 찾아보고 공부하게 했던 주제다.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분량 상 다음 글에서(난 정말 총 세 편으로 끝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진짜 폴 마지막 편이 될 다음 글에서 다루게 될 텐데 몇 년 동안 머릿속 한 켠에 있던 이걸 드디어 풀어 쓸 생각에 암담하면서도 기대가 된다.

 


    *사족: 위에서 이야기한 논문의 저자 이야기 

    폴 관련 논문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찾아 읽다가 한 한국 연구자의 이름이 자주 인용되는 것을 발견했다.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스포츠사회학 연구실 소속의 김윤정 님 논문이었다.

    2014년에는 여성 복서에 대한 석사 학위 논문을(Restructuring the Male Dominant Sport: The Case of Korean Women Boxers), 2021년에는 위에서 이야기한 논문인 한국 여성의 에스테틱 건강운동 경험 탐색(Exploring South Korean Women’s Experiences in Aesthetic Exercise – A Postcolonial Feminist Approach)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셨다. 연구 주제들이 죄다 제목부터 다 재미있어 보여서 폴 열심히 파다 말고 샛길로 새서 다 찾아 읽었다.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자리에 앉아서 고된 연구의 결과물을 쓱쓱 읽고 있다. 

     

    >> 다음글: ‘[폴 이야기④] 중요한 건 고민과 운동을 멈추지 않는 것’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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