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닷넷 연재글입니다.
‘디지털 노마드.’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이 어디서나 일을 할 수 있게 된 덕분에 가능해진, 장소의 제약없이 어디든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프리랜서나 기업가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회사들이 원격근무를 시행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 가능한 삶의 방식 중 하나가 돼 가고 있다.
아직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여전히 꿈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분명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로 사람들을 불러모아 일을 시키는 기존 방식이 더는 당연한 것이 아닌 일이 됐다. 특히 기술 기반 회사들은 한 도시나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곳에서 인재를 영입하길 원한다. 원격근무는 자연스런 흐름으로 밀려오고 있다.
이에 힘입어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여행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전세계를 누비고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뒤에 자리한 사회 현상을 함께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간 촬영한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회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베이스캠프가 15년째 전직원 원격근무를 고집하는 이유
미국에서의 마지막 인터뷰를 위해 찾은 곳은 베이스캠프다. 베이스캠프는 온라인 협업도구 개발사이자 1999년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줄곧 전직원 원격근무 방침을 고수해온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베이스캠프의 공동 창업자 및 CTO인 데이비드 하이네마이어 핸슨(이하 DHH)은 덴마크 출신 개발자로, 루비온레일즈 창시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촬영을 위해 찾아간 시카고의 베이스캠프 사무실에는 직원 한 명과 촬영 약속을 잡아둔 DHH 본인만 있을 뿐 텅텅 비어 있었다. 시카고에 살고 있는 10명 남짓한 직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무실이라는데 아무래도 월요일이라 그런지 죄다 재택근무를 하는 듯했다.
베이스캠프는 원격근무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부트스트래핑(외부로부터의 큰 투자 유치 없이 독자적인 수익 모델을 통해 꾸준한 성장 추구) 사례, 그리고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경영 기법으로 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DHH를 비롯한 베이스캠프의 경영진들은 회사의 지출 항목에서 눈을 떼지 않고, 겉치레보다는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베이스캠프가 원격근무를 시행하게 된 것도 불필요한 경비를 절감하고자 하는 시도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창립 15주년을 맞은 지금, 베이스캠프는 동종 업계 SaaS(Software as a Service) 기업들 중 거대 공룡 세일즈포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다.
한 도시가 아닌 전세계를 대상으로 훌륭한 인재를 뽑을 수 있다는 가능성, 개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할 때 이들의 생산성이 가장 향상된다는 믿음 역시 베이스캠프가 전직원 원격근무 제도를 고수하는 이유다. 베이스캠프의 원격근무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CEO인 제이슨 프라이드와 DHH가 공동 집필한 책 ‘리모트(Remote)’가 국내에도 출간됐으니, 일독을 추천한다.
아래는 DHH 촬영분을 짧게 갈무리한 영상이다. 베이스캠프가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이유와,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사무실에서의 업무 방식을 두둔하는지에 대한 매우 직설적인 답변들이다. ‘CC’ 버튼 또는 설정 버튼을 클릭해 한글 자막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베이스캠프는 원격근무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부트스트래핑(외부로부터의 큰 투자 유치 없이 독자적인 수익 모델을 통해 꾸준한 성장 추구) 사례, 그리고 직원들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경영 기법으로 더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DHH를 비롯한 베이스캠프의 경영진들은 회사의 지출 항목에서 눈을 떼지 않고, 겉치레보다는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회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점을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베이스캠프가 원격근무를 시행하게 된 것도 불필요한 경비를 절감하고자 하는 시도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창립 15주년을 맞은 지금, 베이스캠프는 동종 업계 SaaS(Software as a Service) 기업들 중 거대 공룡 세일즈포스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수익률을 보여주고 있다.
한 도시가 아닌 전세계를 대상으로 훌륭한 인재를 뽑을 수 있다는 가능성, 개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보장할 때 이들의 생산성이 가장 향상된다는 믿음 역시 베이스캠프가 전직원 원격근무 제도를 고수하는 이유다. 베이스캠프의 원격근무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CEO인 제이슨 프라이드와 DHH가 공동 집필한 책 ‘리모트(Remote)’가 국내에도 출간됐으니, 일독을 추천한다.
아래는 DHH 촬영분을 짧게 갈무리한 영상이다. 베이스캠프가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이유와,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사무실에서의 업무 방식을 두둔하는지에 대한 매우 직설적인 답변들이다. ‘CC’ 버튼 또는 설정 버튼을 클릭해 한글 자막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원격근무와 인재 채용
“인재 채용은 원격근무를 통해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자, 동시에 원격근무 제도를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간 인터뷰한 경영진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한 점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격근무 제도를 통해 지리적 한계에 관계없이 인재를 채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이 업무 방식에 적합한 사람을 채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워드프레스의 개발사 오토매틱의 방식은 그 중에서도 독특하다. 채용 과정부터 심상치 않은데, 특히 개발 부서의 경우 인터뷰 전 과정이 채팅 및 시험 과제 수행으로만 이루어진다. 어지간해서는 지원자와 면접관 사이에 단 한 차례의 전화 통화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얼굴이나 목소리 등에서 면접관이 자신도 모르게 가질 수 있는 편견을 아예 없애겠다는 의도다. ‘아무리 그래도 채용 전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고 싶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CEO인 매트 뮬렌웨그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채팅창에서 원활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면 된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당신이 얼마나 사교적인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디 사는지 같은 건 관심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당신의 업무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내느냐다.”
오토매틱은 이렇게 400여명의 전직원이 원격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리고 전세계 인터넷 웹사이트의 약 20%는 바로 이들이 전세계 각지에서 개발하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만들어진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관리도구 개발사인 버퍼의 경우는 좀 다르다. 버퍼는 정식 채용 전 약 한 달 간 지원자가 영상통화 등을 통해 다른 팀원들과 의사 소통하고 협업해 보도록 독려한다. 이는 지원자가 원격근무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버퍼 나름의 채용 방식이다.
독립적인 업무 처리 능력, 철저한 일정 관리, 면대면이 아닌 상황에서도 원활한 의사 소통 등과 같이 원격근무에서 좀 더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이 있다. 이를 사전에 알아보기 위해 여러 회사들은 시험 과제 수행을 요청하거나, 지원자가 이전에 원격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해 본 경험 유무를 알아 보기도 한다.
원격근무와 팀워크
원격근무라면 직장 내 인간 관계는 전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흔한 생각과는 달리, 인터뷰 과정에서 채용과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한 주제는 바로 어떻게 팀워크를 돈독하게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회사는 일을 하는 조직이지 인간 관계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경영진도, 팀워크가 업무 생산성에 도움이 되며 따라서 직원들에게 다른 팀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텔레포트 공동창업자인 실버 케스큘라는 인터뷰에서 다른 팀원을 실제로 만나고 나면 그 후 온라인을 통해 관계를 지속하기가 훨씬 더 쉬워진다고 답했다. 베이스캠프의 DHH는 실제로 만나 함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은 때때로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실제 업무의 대부분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위해서는 정해진 사무실이 아닌 각자의 공간에서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말이다.
많은 회사들이 팀원들이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제공한다. 오토매틱의 직원들은 전세계 여기저기에서 열리는 워드프레스 컨퍼런스인 ‘워드캠프’에서 서로 만난다. 직원이 워드캠프 참가를 원할 경우 항공편과 숙소 등에 소요되는 모든 경비는 일체 회사에서 부담한다. 전세계 각지에 사무실을 세우고 유지하는데 들어갈 경비의 상당 부분을 오토매틱은 이런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사용한다.
아래 영상은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두 회사의 팀 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슬랜드에서 버퍼를, 에스토니아에서 텔레포트의 팀 여행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더불어 원격근무를 통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직원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다. ‘CC’ 버튼 또는 설정 버튼을 클릭해 한글 자막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사람들의 물리적인 위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겁니다. 정말 중요한 건 바로 함께 일을 하는 것이죠. 제가 원격근무를 선호하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가족입니다. 가족들과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업무 시간과 장소의 유연성이 필요하니까요. 전 원격근무를 통해 제 스스로의 선택을 기준으로 제 삶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거죠.” – 카림 헤레디아, 텔레포트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원격근무와 대한민국
원격근무는 이제 소규모 회사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미국 최대 회계 기업 중 하나인 딜로이트는 86%의 직원이 적어도 20%의 업무를 회사 이외의 장소에서 처리하고, 인텔 직원의 82%는 정기적으로 원격근무를 하고 있다.
디지털 노마디즘은 내가 살 장소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 위 영상에서 DHH가 말하듯, 정보 기술의 발달과 업무 형태의 변화, 그리고 원격근무 시행으로 인해 이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가 됐다.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의 소렌슨 교수를 비롯한 많은 인터뷰이들은 원격근무가 구직을 위한 대도시 집중과 이로 인한 교통 체증 및 주거비 문제, 도시 간 불균형 성장과 같은 여러 문제들 역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는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생소하기만 한 삶의 방식이다. 국내의 경우 아직까지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면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프리랜서의 삶만을 떠올리는 경향이 강한데, 아직 국내에는 원격근무를 본격적으로 도입 및 시행하고 있는 기업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삶에서 실제로 직면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임에도 그렇다.
한국 역시 대도시가 아니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구직과 출퇴근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도시로 몰려든다. 국토의 나머지 89%가 텅텅 빌 동안 수도권에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인 49%가 산다. 도시의 주거비는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청년들은 고시원으로 발걸음을 향하고, 출퇴근 시간 교통 체증 역시 심각하다.
게다가 11년째 OECD 1위를 지키고 있는 자살률이나(2012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29.1명), 마찬가지로 OECD 국가 중 선두를 달리는 업무 시간(2014년 기준 연간 2124시간/OECD 평균 연간 1770시간)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바닥인 업무 생산성(2012년 기준 시간 당 28.9달러/OECD 평균 46.7달러)을 더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미 국내에서 대안적인 삶의 방식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는 높다. 그리고 그만큼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현실 간의 간의 괴리는 매우 크다.
멀지 않은 미래에 국내에서도 대안적인 삶의 방식들 중 하나로 디지털 노마디즘,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할 원격근무에 대한 이야기가 좀 더 활발하게 논의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 여정에 현재 제작 중인 이 다큐멘터리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역시 바란다. 8개월에 접어든 다큐멘터리 제작기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노마드 다큐멘터리, 8개월에 걸친 인터뷰와 섭외 뒷이야기
다음 글에서는 디지털 노마드에 대한 몇 가지 고정관념을 토대로 좀 더 다양한 이야기와 영상을 나눌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