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오프믹스 사태에 부쳐: 강간 문화의 수많은 희생자들, 그리고 대책

해당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 및 여러 중론이 이미 충분히 나와 있는 상태이니만큼, 거기에 대해서는 더 말을 보탤 것 없이 이 글에서는 어디까지나 내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사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보려 한다. 특히 많은 일하는 여성들이 공감할 종류의 이야기다. 

일하는 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

한국에 오게 되면 좁디좁은 내 인맥 탓에 매번 꾸준히 만나게 되는 사람 상당수가 IT업계 & 그 언저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중에도 나잇대 비슷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여자들끼리 모이는 경우가 가장 많다.

지난달 말 보도되었던 온오프믹스 경영진이 연루된 사건이 최근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 주제였는데, 그쪽으로 대화가 계속 이어지다보면 (서로 간 신뢰/친분이 이미 어느 정도 이상 쌓여 있는 상태일 때, 여자끼리만 있을 때) 대부분 이야기는 각자의 피해 경험으로 흘러간다(난 소위 그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 않은 외부인이라 더 이야기가 쉽게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매번 다시금 느끼는 거지만 피고용인, 특히 주니어급 실무자들 중에는 성희롱 한 번 안 당한 사람 찾기가 그렇게 어렵다(사건 이후 올라온, 한 업계 종사자 여성분의 페이스북 포스팅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한 모임에서 ‘직장생활 하는 여성의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참가자 여성 전원이 성추행 경험이 있었다고).

대개 그러다 보면 순간 다 같이 말이 없어지고, 한숨을 쉬고, 한두 명이 조용히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각자가 몇 년이 지난 뒤에도 전혀 안 잊히는 당시의 그 어이없고, 놀라고, 무섭고, 비참하고, 황당하고, 소름 끼치고, 막막한 감정들을 떠올린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지나가면 여기저기서미안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몰랐어서 미안하다고, 못 도와줬어서 미안하다고, 언제 어디 행사에서 그 사람 봤었는데 그때 그것도 모르고 반갑게 인사한 나 자신이 지금 너무 싫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다음에 보면 작게라도 저거 개새끼라고 읊조리겠노라고. 

그리고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걱정이 시작된다.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 그 가해자가 상처를 입힌/입힐 피해자가 과연 나 한 명일까. 그 버릇 어디 갈까. 지금 그 사람 어디로 옮겼다는데 거기 나이 어린 인턴 한 명 있는데 괜찮을까. 후폭풍 각오하고 공론화를 하거나 생계 걱정은 접어두고 적금 깨고 변호사라도 선임해서 법적인 조처를 취했더라면그랬더라면 또다시 언제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또 다른 상처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

그러면 한쪽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무고죄로 오히려 고소당하는 사람들 이야기 못 들었냐. 행동 제대로 못 했다고 피해자한테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얼마 전에 난리 난 그 건도 가해자가 만나는 사람마다 꽃뱀한테 잘못 걸린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더라. 섣불리 말 꺼냈다가 결국 퇴사하고 조용히 처음부터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는 건 매번 피해자더라. 참 이상하게 사람들은 가해자 입장에 그렇게들 잘 공감, 아니 아예 빙의를 하더라…

가해자에게는 로맨스, 피해자에게는 성범죄

다들 정황은 비슷비슷하다. 아니 비교해보면 무슨 케이스 스터디 진행해도 될 만큼 소름 끼치게 판에 박은 듯 전형화되어 있다. 작게는 오히려 받아쳤다가 ‘예능을 다큐로 받냐’ ‘왜 그렇게 예민하냐’ ‘융통성이 없다소리 들을 참 애매한 언어적 희롱, 좀 더 나아가면 (가해자는 썸이라고 생각하는) 추근거림(문자, 메시지, 전화, 페이스북 댓글 포함), 더 나아가면 대개 술을 동반한 원치 않는 신체 접촉, 추행.

그 중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 간 사이 직급 및 연령이 상당히 차이 나는 상황일 때 매우 흔한 유형이 하나 있다. 바로 가해자의 착각과 망상에서 생겨나는 ‘가해자에게는 찰나의 로맨스, 상대에게는 끝없는 악몽’인 경우다. 업무나 파트너십, 혹은 멘토링 등을 통해 친분이 쌓였을 때 가해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고 싹싹하게 반응하는 피해자를 보며 혼자 어마어마한 착각을 시작한다.

나이 차이/직급 차이/기타 등등 업무상 위력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피해자는 당연히 예의상이라도, 자신이 속한 조직이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끄덕끄덕 해가며 가해자가 하는 소리를 ‘싹싹하게’ 들어주고 ‘잘’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사건 후, 가해자에게 충실하게 감정 이입하고 피해자를 2차 가해로 두 번 죽이는 사람들에 의해 ‘네가 여지를 줬네’로 간략히 요약 및 매도된다. 일반적으로 ‘당연’하고, ‘바람직한 처세’이고, ‘사회생활 잘 한다’고 묘사될 행동들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피해자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여기서 얼토당토 않게 가해자는 자신이 피해자와 뭔가가능성 있는관계로 진전했다고, 상대방이 자신에게 이성적인호감을 가지고 있을 거라 혼자 결론 내려버리고 내가 피해자와 (어디까지나 가해자 입장에서) 로맨스, 잠자리 등을 가질 수 있는 확률이 어느 정도라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상대는 전혀 원치 않는 추행 및 과도한 접근 등으로 (99.999% 취기를 핑계 삼아) 실행에 옮긴다. 손잡고, 포옹하고, 집에 따라오고, 스토킹 하고, 기타 등등. 그리고 이후 피해자의 요구로, 또는 공론화를 막기 위해 따로 만나 사과할 때는술김에 그랬다는 말이 절대 빠지지 않는다. 참 편리해 보인다.

미스터리다. 진심으로 미스터리다. 특히 처자식도 있는 나이 지긋한 가해자들, 무슨 생각으로 머릿속 망상을 실행에 옮기는지, 도대체 무슨 기제가 그들의 이미 부풀려질대로 부풀어오른 에고에 그렇게 엄청난 바람을 불어넣는지 참으로 미스터리다

강간 문화

강간 문화(rape culture): 1970년대 미국에서 나온 용어로, 성폭력이 쉽게 용인되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지는 사회 환경을 뜻한다. 국내에서는 최근 홍준표 ‘돼지흥분제’ 사건, 수많은 대학교 및 다양한 업계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왔던 단톡방 성희롱 사건들을 알리는 기사에서 사건 발생의 이유를 분석할 때 자주 쓰이는 용어이기도 하다.

통계청에서 내는 사회지표 및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살인, 강도, 절도와 같은 중범죄는 감소하고 있는 반면 성범죄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2012년부터 꾸준히 증가세). 이미 다양한 조사 및 통계들에서 나타나듯 성범죄는 ‘성욕을 이기지 못해’ ‘우발적으로’ ‘어쩌다’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피해자의 옷차림과 사건 발생 간 상관관계를 입증한 데이터 역시 나온 바 없다

성범죄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성차별적인 사회구조/왜곡된 성문화/성폭력에 대한 수사기관의 인식 부족 등이다(한국성폭력상담소/인하대 성평등 상담실). 즉 성범죄 발생의 토양에 관해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가 없는 것이 바로 강간 문화다(지금 이 글에서는 성범죄의 메인 타겟이 되는 여성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으나, 실제로 국내 성범죄 피해자의 10% 가량이 남성이다. ‘맨박스’ 및 남성에 대한 폭력적인 사회적 고정 관념으로 인해 신고를 꺼리는 피해자들을 포함하면 실제 수치는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강간 문화의 현상으로는
– 피해자에 대한 비난(네가 술을 마셔서 그런 거지, 짧은 치마 입고 네가 먼저 꼬리 쳤던 거 아냐? 야 남자가 여자한테 성희롱을 당하면 ‘감사합니다’ 해야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냐, 네가 그러고도 남자냐?)
– 가해자 옹호(술김에, 우발적으로, 실수, 창창한 앞날, 그건 둘이서 알아서 할 사적인 일, 어쩔 수 없는 남자의 본능 등)
– 피해자 성적 대상화(왁싱숍 살인사건 뉴스 보도에 수없이 달리는 고인의 외모 평가 댓글 등) 
– 성범죄의 심각성이나 성범죄가 만연하다는 사실, 그리고 성폭력이 초래하는 해악에 대한 부정(그건 어쩌다 미친놈 한 명한테 운 없이 잘못 걸린 거지 뭘 그런걸로 여성 안전이 어떻고 저떻고 떠드냐, 불만이면 인도를 가, 인도나 중동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참 좋은 나라지, 조용히 좀 하고 본인이 알아서 더 조심하면 되는 거지, 남자가 술 먹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 성역할과 성적권리의식의 강화(남성에게는 지배적/공격적/성취를, 여성에게는 피지배적/수동적/상냥할 것 과 같은 가치를 요구 및 묘사, 남성들은 강간 당하지 않거나 ‘약한’ 남성들만 강간 당한다고 가정) 
등이 있다. 공통적으로는 모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및 가해자에 대한 옹호, 가해자가 한 행동의 심각성 경감 등을 포함하고 있다. 

가해자들이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 “그래도 되니까”

이 끊이지 않는 소위 ‘업계’ 내 피해자들의 발생이라는 주제로 돌아와서, 그 몇몇 가해자들이 기적처럼 개과천선하거나, 아니면 피해자들이 단체로 생계 따위 내팽개치고 고소라도 하거나 한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 결국 사회 분위기다. 사회에 만연한 강간 문화를 근절하지 않는 이상 이건 우리 다음 세대에도 그 다음 세대도 그대로 겪어야 할 일들이다. 

저 가해자들은 도대체 왜 저럴까? 에 대한 질문은 사실 매우 간단하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현 사회 분위기(+사법 시스템) 하에서는 저런 행동들이 어느 수준까지는 용인되고/엄중한 법적 처벌이나(아, 술김에 그랬어~? 형량 경감!) 심각한 사회적 제재가 없을 확률이 크고/앞에서 이야기한 강간 문화의 2차 가해 및 가해자 옹호 현상 탓에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법적&사회적 조처를 취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즉, 크게 ‘별 일’이 없을 것이라 믿기 때문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왜 사회 분위기의 변화가 없이는 이번 온오프믹스 사건 이후 등장하는 각종 구호가 상당수 그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하기 위해, 사회적 용인과 규범이 얼마나 소름 끼치게 큰 힘을 가해자들에게 부여하는지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NPR의 Hidden Brain 9월 5일 자 방송 “Hiding Behind Free Speech“에 나온 사례다(아래 연구 내용은 17분 30초 가량 부터).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해도 괜찮은 말과 행동’에 대한 기준이 어떤 식으로 바뀌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참고할 수 있다. 

캔자스 대학이 실시한 이 연구에서는 대선 전 트럼프/클린턴 지지자를 각각 모아,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 무슬림, 멕시칸, 이민자, 여성, 뚱뚱한 사람, 장애인 등에 대해 자신이 가진 편견의 정도를 0에서 100 사이 숫자로 각각 매길 것
– 앞에서 이야기한 각 데모그래픽에 대해 자신이 가진 편견을 미국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어느 정도로 용인된다고 보는지? 

대선이 끝난 후, 똑같은 그룹을 그대로 다시 불러 모아 이전과 동일한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았다. 그 결과는 대략 아래와 같다.
– 앞서 나열한 데모그래픽에 대한 답변자 개인이 가진 편견의 정도에는 트럼프/클린턴 지지자 그룹 모두 전반적으로 큰 변화가 없었음
– 트럼프/클린턴 지지자 그룹 모두 각 데모그래픽에 대한 편견을 미국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앞선 1차 설문 때 답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용인되는 것이라고 답변 

1차 설문과 2차 설문 간 시간 간격은 10일에서 최장 2주에 불과하다. 연구팀은 개개인들의 생각이나 신념이 그 짧은 기간 동안 변했다기 보다는, 저러한 편견을 끊임없이 전시하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온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함으로써 편견 및 증오 발언의 공개적 표현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용인되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 규범(social norm)이 단시간에 변화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전체 그룹 중 일부가 (트럼프/클린턴 지지자 모두에서) 대선 후 실시한 조사에서 자신들이 가진 편견의 정도를 조금씩 낮춰서 답변했다는 것. 대선을 거치면서 각종 증오 발언이 판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 선두 주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상대적으로 나은 사람, 즉 ‘이렇게 보니 나는 사실 편견을 덜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구나’ ‘저런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와 같은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는 것(모두가 다 같이 망하는 하향 평준화의 길…).

대선 직후 급증한 유색 인종, 이민자 등을 향한 증오 범죄와, 얼마 전 있었던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자 및 네오나치들의 시위, 그리고 거기서 발생한 유혈사태(백인우월주의자들의 차량 돌진 테러로 백인우월주의 반대 시위 그룹에서 사망자 발생)들이 과연 이러한 사회적 규범의 변화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 이번 백인우월주의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얼굴조차 가리지 않고 나치/KKK/남부연합기와 횃불을 높이 치켜들었다. *당시의 참상을 기록한 Vice의 영상 (경고: 매우 폭력적인 구호와 증오 발언, 물리적인 충돌 등이 등장한다.)

ANDREW SHURTLEFF/THE DAILY PROGRESS

다시, 한 사회&커뮤니티 안에서 ‘해도 되는 것’으로 용인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규범이 가진 힘에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 하나 더. 아래 이야기는 책 ‘맨박스 (토니 포터)’에도 등장하는 ACTM 설립자 테드 번치의 일화를 간략히 줄인 것이다.

“제가 사는 동네의 이웃 주민이 아내를 심하게 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편의상 존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경찰관은 아내의 코뼈를 부러뜨리고 광대뼈를 골절시킨 존을 체포했지만, 다음 날 풀려나서 집으로 돌아왔죠. 아내는 병원에 있었고, 그 동안 저는 이웃 남성 두 명과 함께 존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존의 집 문을 두드리고 그가 나오자 우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동네 남자들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 않아요. 여자들을 그렇게 대하지 맙시다. 존도 우리랑 같은 생각이면 좋겠네요.” 그러곤 돌아섰죠. 존은 그냥 조용히 문을 닫고 들어갔는데, 그의 표정을 굳이 묘사하자면 수치심에 가까웠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그의 행동에 대해 주변의 모든 사람이 반응을 표하는 것일 겁니다. 존이 출근하면 직장 동료들이, 교회나 절에 가도 그 곳의 사람들이, 골프를 치러 갈 때도 존의 친구들이 “존, 다음에 또 그런 짓을 한다면 오늘 라운딩이 너와 함께 치는 마지막 골프가 될 거야“라고 하는 거죠. 이런 반응이 있어야 우리 문화가 바뀝니다.” 

결론

여기까지 다음과 같은 내용에 관해 이야기했다. 
– 성범죄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강간 문화로 명명되는, 이를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 이에 대한 개선 없이는 계속해서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며 나는 지금도 그들을 보고 있다.
– 사회적 규범, 사회에서 용인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선긋기는 실제로 개선해나갈 수 있으며 이것이 사람들의 행동 양식에 끼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그리고 여기에는 가해자를 제외한 그 여집합에 속한 대다수 남성의 역할이 매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번 글의 주제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장일 수 있으나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관점에서 본 다양한 방안 중의 하나이자, 그중에서도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 시급한 한 부분을 짚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성의 당사자성과 주체성, 여성의 역할을 축소하고자 의도된 발화는 전혀 아니다.)

총 세 명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두 명이 동료/업계 여성에 대한 비존중, 성적대상화 등을 하고 있는 상황일 때, 거기에 참가하지 않은 나머지 한 명이 ‘난 쟤들하고는 다르지. 역시 난 괜찮은, 착한 사람이야’하고 자기 위안을 할 때, 사회 분위기에는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여기서 이 한 명은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아니라 나머지 두 명에게 ‘그래도 된다’고 용인해준 동시에 암묵적인 동의를 한 것이다. 이 사람의 도덕성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기업 문화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 특히 주도적으로 조직 문화를 형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실질적인 행동이 요구되며 그 책임이 무겁다. 한 IT기업에서 팀장으로 오랜 기간 계셨던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다. 자신이 팀장으로 있을 당시 성역할별 고정관념, 편견, 비존중, 성적 대상화 등이 발견될 때마다 그 즉시 지적을 했고,  특히 자신이 ‘남성’이고 ‘상사’, 그리고 ‘연장자’이니만큼 그 효과는 눈에 띄게 빠르고 또 컸다고.

이 경우 당장 적시된 말과 행동을 한 사람이 ‘이런 것들이 자칫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이미 존재하는 편견을 강화시킬 수 있는 거로구나, 누군가에게는 수치스럽고 상처가 되는 거구나’하고 바로 깨달을 확률은 아마 낮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런 생각은 할 것이다. ‘이런 말과 행동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이 조직에서는 용인되지 않고 오히려 배제되는 구나.’ 조직의 통솔자, 관리자 직급의 저런 기준 설정, 그리고 또래 집단 및 동료 커뮤니티가 발휘하는 힘은 엄청나다. 

앞서 이야기했던 단톡방 성희롱을 다룬 기사 역시 무엇보다 중요한 대책으로 ‘동료 남성들의 역할’을 꼽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남성 역시 피해자가 된다.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것을 일종의 ‘남자다움’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여기에 포함된다. 단톡방 안에서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성 경험을 자랑하고 여성의 신체를 희화화하는 일이 경쟁적으로 벌어지며, 동조하지 않는 동료 남성을 조롱하는 일도 모두 이 강간 문화에 딱 들어맞는 예다.
(…)
가해자가 성희롱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정말 두려워하는 건 동료 남성들 사이에서 비난받고 소외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동료 남성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호응해주거나 침묵하는 이들만 있다면 단톡방 성희롱은 사라지지 않는다. ‘불편러’로 몰리는 잠깐의 껄끄러움을 감수할 것인가, 혹은 성희롱 가해자의 공범으로 남을 것인가. 선택은 당신에게 달렸다.” 
– 단톡방 성희롱에 공감해주는 자의 죄, 시사인

온오프믹스 사건 이후 그 업계에서 일하는 여성분들이 연이어 자신의 경험을 페이스북 등을 통해 공유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고발했다.

이런 게 ‘흔한’ 사회라니, 이건 정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지난 한 주 동안만 두 명의 눈물을 봤다. 말하고, 개입하고, 행동하자. 더이상 그 누구의 눈물도 보고 싶지 않다. 

4 Comments
  1. 09/18/2017
  2. 09/18/2017
    • 09/2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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