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주변 사람들이 내가 내 일이나 내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을 낯설어하거나 때로는 치를 떨기까지 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특히 사람 간에 감정이 소모되는 일에 있어서 나는 내가 취하는 행동으로 인해 딱히 어떤 개선점이나 결말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지 않을 때는 선을 긋거나, 발을 빼거나, 완벽히 무시해 버리는 편이다. 효율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고, 내 한 몸 건사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냥 싫고 지쳐서 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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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런 부분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은 새어머니였다. 그리고 이런 나의 일부 역시 그로부터 왔다. 새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기억과 나의 그것은 상당히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 나라는 사람을 묘사하는 말로 새어머니가 가장 많이 사용했던 형용사는 ‘이기적인’, ‘피도 눈물도 없는’이었다.

    새어머니는 감성과 이성을 양쪽 선상에 놓고 봤을 때 극단으로 한쪽에 치우친 분이었고, 본인의 가파른 감정 곡선이 주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과 그 누구에게도 타인에게 그런 일종의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동시에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변화로부터 별다른 영향을 받지 못하는 사실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분이기도 했다.

    잘못을 저지르건 실수를 하건 아니면 단순히 새어머니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틈을 봐서 적어도 하루 안에 그를 찾아가 용서를 빌거나 양해를 구하거나 위로의 말을 건내지 않으면,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제스쳐를 취하지 않으면 그의 분노는 몇 곱절로 큰 파도가 되어 몰아쳤다. 그리고 ‘이기적인 년’이라는 단어가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해를 거듭하고 머리가 굵어지면서 점차 이런 현상에 담담해졌을 즈음, 여기에 ‘피도 눈물도 없는’이 추가되었다.

    한 사람이 가진 감정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면 못해도 그 반절은 내 유년기에 빠져나가 산산히 공중분해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슬슬 그 바닥이 보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무렵, 나는 종이 박스 하나에 옷가지와 물건 몇 개를 주섬주섬 집어 넣고 그렇게 집에서 나왔다. 고등학교 졸업식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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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를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건 사과와 용서, 조정의 절차가 아니라, 그저 상대의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걸. 전자는 하기에 따라 생산적이고 향후 상대와의 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한쪽의 스트레스 해소와 자기 만족, 그리고 한쪽에게 자신이 관계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우월감를 주기 위한 그저 끝없는 감정 소모의 악순환일 뿐이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런 부류에 조금이라도 속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자신의 감정 변화에 상대방이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그리고 별다른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런 현상은 자신이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것, 통제력을 잃은 것으로 간주되며 이 경우 그들은 극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이를 매우 극적인 방식으로 주변에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 시절은 분명 내게 사람의 감정과 관련한 다양하고도 강렬한 경험들을 선사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자살이라는, 미래의 무궁무진한 가능성들을 단숨에 일소시켜버리는 선택지를 감히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는 매커니즘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가 단순히 상상력을 발휘해 자신의 소설에서 묘사하는 그 대목은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기 힘들다.

    그리고 동시에 이 시절은 내가 앞으로 감정과 관련한 더 많은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이런 목적이 불분명한 감정의 줄다리기와 그렇지 않은 것이 쉽사리 구분되고, 전자는 정말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억과 경험들이 결국은 의미가 있었던 거라고, 아니 의미가 있도록 만들어 나갈 때 그로부터 진정 독립할 수 있다는 것. 삶이 허락하는 동안은 할 수 있는데까지 사랑하고, 영감을 얻고, 느끼면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렇게 닫힌 창을 어떻게든 바깥으로 여는 것, 이것이 내가 극복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다큐멘터리 만듭니다. OPEN SHUTTERS, One Way Ticket, Feminism Reboot 감독. '디지털 노마드, 원하는 곳에서 일하고 살아갈 자유' (남해의봄날 출판) 저자. 프로필&컨택 *본 블로그 상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합니다. 다큐멘터리 관련 사진 및 영상은 모든 저작권이 제게 있으며 이 역시 사전동의 없는 인용 및 2차 가공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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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지막 문단이 정말 와닿아요 … 그럼에도 창을 열려는 시도와 용기를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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