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BBC 영상 해프닝을 통해 보는 인종차별적 고정관념과 편견

어제 오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나 인터넷 신문 기사 등에서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봤을 BBC 인터뷰 영상이 있다.

대부분의 반응인 ‘너무 웃겨&귀여워’ 이외에도 ‘아기 아버지의 반응이 아쉽다’ ‘아이를 안아 올려서 무릎에 앉히고 인터뷰 했으면 더 좋았을지도’ 등 각양각색의 반응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주목했던 포인트가 있어 간단히 정리. (내가 국외에서 밥벌이하고 개인 플젝하고 in interracial relationship 상태에 있다 보니, 유독 이 아시안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아오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은연 중에 컸기 때문일지도)

1. 처음에 이 비디오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 Metro, Time.com 등에서 이 영상을 소개하면서 당연한 듯이 이 영상의 여성을 ‘nanny’ 보모로 칭함.

2. BBC, Washington Post 등 주요 외신이 이 비디오를 공유한 페이스북/트위터에서도 상당수의 영미권 인터넷 유저들이 당연한 듯이 이 영상의 여성을 ‘nanny’라고 상정하고 이야기함.

3. 여기서 ‘왜 당연한 듯이 이 여성을 보모라고 상정하는 건가?’라는 반응들 등장. LA Times도 ‘That Asian mom is not the nanny. Why do so many people assume she is? (저 아시안 엄마는 보모가 아님. 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가 보모일거라고 보는 걸까?) 라는 기사 발행.

4. 실제로 영상의 당사자는 인터뷰 대상자의 부인이자 영상에 등장한 아이들의 어머니(한국인).

5. ‘내 안에 나도 모르게 institutionalized된 인종차별, 인종적 편견 등을 깨달았다’라는 반응도 물론 있으나, 죽어도 racist 라는 비판은 못 받아들이고(그만큼 인종차별자라는 딱지가 매우 모욕적으로 받아들여지므로) ‘사실 피부색만 보고 내가 그런게 아니야, 저 여성의 태도를 보고/얼굴 표정을 보고/아이들을 다루는 모양새를 보고/등등 그렇게 판단한 거야’ ‘우리집에 있었던 내니도 딱 저런 느낌이었어, 내가 알아, 그래서 그런거야’ ‘내가 내니라고 생각한 건 인종 때문이 아니고 어려보여서 그런거야‘ 등등 웅앵웅 아무말 대잔치 벌어지는 중.

 

(1) 미디어에서 ‘nanny’로 해당 여성을 지칭하는 모습

(2) 미디어들의 관련 포스팅에 달린 코멘트 중 ‘좋아요’를 특히 많이 받은 코멘트 일부. 하다하다 이제 ‘오리엔탈’까지 등장한다.

(3) LA Times 기사: That Asian mom is not the nanny. Why do so many people assume she is?

(4) (3) 기사 참고

(5) 현재 페이스북/트위터 여기저기서 관람 가능.

그 와중에 자기 인종차별주의자 아니라고 어떻게든 간증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고통받는 록산 게이(…) 트윗 타래

XX: 내가 저 여성이 보모라고 생각한 건 (피부색이아니라) 저 여성이 당황하고 혹시라도 해고될까봐 어떻게든 눈에 안 띄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런거야 우앵웅애웅앵!##@%$##$
록산 게이: 이 사람들아 제발 그만해

XX: 어려보여서 그런거야. 아 물론 엄마인 것도 멋져
록산 게이: 그만하라고.

(6) 그 외: “동료는 백인, 부인은 라티나인데 부인이 얼마전 아이들 데리고 동네 놀이터에 갔는데 아이를 데리고 온 백인 여자가 다가와선 생글생글 웃으며 “(애들 보고) 얼마나 받니?” 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번이 처음도 아님. 리버럴하고 교육수준 높은 동네 산다.” 관련 내용 트윗 타래

 

포인트는, 나도 마찬가지고 이런 추측에 무의식적인 racial profiling, 인종이라는 요소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음을 인식/인정부터 하고(여기서 100%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나) 개선해 나가자는 거. 당장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 그거 아니라고 웅앵웅 좀 하지 말고.

 

+ 한국시간 3/11 밤 업뎃: 처음 nanny로 소개한 미디어들은 이제 거의 다 수정된 것 같고, 사실 관계가 확인되면서(아니 애초에 이게 왜..) 록산 게이 트위터를 비롯해서 페북 등에도 ‘이건 누가 봐도 내니, 누가 뭐라 해도 내니!’ 또는 ‘내니라고 본 건 맞아 하지만 인종에 대한 선입견이 이런 내 추정에 영향을 미친 것은 절대 아냐 블라블라’ 중 상당수도 민망했는지 알아서 코멘트/트윗을 자진 삭제한 상태. 물론 잔인(?)하게도 박제 스샷은 돌고 있다(..)

 

+3/12 오전 아래 문단 보충/업뎃:
이 와중에 다시 한번 느끼는 것. 당장 아시안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논쟁과 각종 이야기가 오고 가는 현장에 그 당사자인 아시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 글을 쓰는 시점 기준 (11일 오전)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봐도 ‘재밌다’ ‘귀엽다’ ‘어 근데 자꾸 보모라고 하네?’ 같은 반응이 거의 전부이지(이런 반응이 옳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지금 오가고 있는 우리 안에 내재된 인종별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토론은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이번 건과 결이 비슷한 해프닝에서 그 대상자가 아시안이 아닌 black이었을 경우, 아마 미디어들도 그렇고 들고 일어나서 일찌감치 난리가 나고도 남았으리라 짐작한다는 이야기들도 있던데, 일견 동의한다. 곁가지로 아시안 관련 인종차별/편견 문제가 중심 소재인 담론에, 많은 경우 아시안은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어느 정도 타자화/회의장 바깥에 있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이 이번에 재확인된 측면 역시 있다. 이는

1. 국내의 경우 아직 인종차별에 대한 담론이 충분히 깊이있게 이뤄질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2. 즉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이게 뭐가 문제라는 거야? 난 잘 모르겠는데?)

3. 국외의 경우 다른 비백인에 비해 아시안은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다고 굳게 믿는 ‘model minority myth’ 때문이거나(아시안은 그래도 나쁜 쪽으로는 인종차별 별로 안 당하지 않나? 같은 류의)

4. 때로는 여기서 이익을 얻는 경우도 있어서 침묵을 택한다던지 (교육을 잘 받고 행실이 바른 아시안, 이른바 the model minority/ 우리는 다른 비백인들보다 훨씬 더 좋은 대우 받잖아, 똑똑하게 보잖아, 굳이 머리아픈 인종 문제에 말 거들지 말고 그건 다른 비백인들이 알아서 하게 두자 -> 부끄럽지만, 내가 이랬다..-_ㅜ)

5. 마지막으로, 이런 담론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국외의 경우 대부분 철저하게 영어인 것도 장벽&문제일 수 있겠다.

난 불편함을 전혀 못 느끼겠는데 왜 굳이 이런 글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혐오감정(????)을 조장하려 드느냐, 는 내용의 메세지를 받고 생각이 났는데, 사실 이번 해프닝에서 나타난 인종적 편견에 관련된 다른 예들인 ‘으앜 저 필리피나 이제 짐싸고 돌아가야겠네’ ‘아시안 슬레이브ㅋㅋㅋㅋ’ ‘쟤 불법 체류자는 아니겠지??’ 같은 수준의 내용들은 뭐 굳이 언급할 가치도 없어서 본문에 아예 다루지도 않았다. 밑도 끝도 없이 혐오감정 조장이 목적이었다면 거두절미하고 저런 수준의 내용들만 스샷 끌어다 와서 퍼가기 쉽게 박제해놨겠지.

이건 해외 거주/이민 2, 3세대 같은 사람들이나 신경써야 할 일이지 국내 한국인들이 이걸 왜 신경 써야 하냐, 는 이야기에는 1. 이미 지금도 그렇고, 우리 다음 세대 포함 앞으로는 당연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국경에 상대적으로 적게 영향을 받고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하고 살아가고, 다른 배경의 사람들과 협업하고 가정을 꾸릴 일이 많아서 ‘이거 생각보다 남 일이 아니거든요’라고 할 수 있겠고, 2. 싫다는 사람더러 굳이 신경 쓰라고 강요한 적 없으니 너무 압박은 받지 마시라고 하고 싶다. No pressure.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분들과 담론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고, 이건 내가 내 생각 적는 내 개인 블로그다.

 

+ 13일 오전 업뎃: BBC뉴스 아시아 섹션에 관련해서 기사가 하나 발행되었다: Why did people assume an Asian woman was the nanny? 일독 추천. 해당 기사에서는 이번 해프닝에서 나타난 인종별 편견 이외에도 다양한 예시들을 인용으로 보여줌.

인도계 영국인 저널리스트가 한 지역 신문사에 방문했는데, 리셉션에서 이 사람을 청소부로 오인하고 ‘청소하러 오셨어요?’했다는 이야기, 영국에서 자란 일본계 영국인 학자인 Kumiko Toda에 따르면 사람들과의 첫만남에서 상당수 사람들이 그의 영국 엑센트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 오셨어요?’를 묻고, 심지어 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서 성희롱적 발언을 들을 때도 아시안 여성을 향한 그것은 결이 다른 것 같다는 이야기(이건 할 말 너무나 많아서, 정리해서 따로 쓸 예정).

“I wonder whether my ethnicity and the perception of East Asian women as being submissive has something to do with the frequency and the nature of the harassment I experience.”

현재 한국에서 보모로 일하고 있는, 헬렌이라는 가명으로 인터뷰를 한 한 필리핀인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피부색에 비해 더 어두운 피부색을 가진 인종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이야기하기도 함. 또한 BBC 소속 기자로 한국에서 일한 적 있던 Andrew Wood의 경험담도 말미에 옮겨놓았는데, 많은 경우 백인 남성인 그가 한국에 주둔한 미군으로 오인받아 특히 주말 밤에는(술취한 미군이 차량 안에 구토하는 행위 등을 우려한 기사분들로 인해) 택시 탑승 거부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Taxi drivers would rarely stop for white men on Friday or Saturday night as they allegedly assumed white men were drunk soldiers who would vomit in the back of their cabs.”

이번 기회에 우리가 가진 이 인종별 편견/고정관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문제 의식을 지인들과 공유해 나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재미로 이 영상을 소비한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 작성한 포스팅이 아닙니다.
동시에 어떤 형태로든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그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 역시 아닙니다.

7 Comments
  1. 03/11/2017
    • 03/11/2017
      • 03/11/2017
    • 03/11/2017
  2. 03/11/2017
  3. 04/07/2017
    • 04/07/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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