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토피아로 돌아보는 다양성과 우리 사회

한동안 글을 안 써버렸더니 다시 글을 쓰기가 엄청나게 힘들다. 오늘은 뭐든 반드시 써야지, 하고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있는데 하릴없이 시간만 가는 게 고문이 따로 없는 관계로, 우선 가벼운 글 하나부터 몸풀이용으로 대강 풀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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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주토피아를 극장 가서 두 번 봤다. 다시 봐도 참 잘 만들었다 싶고 또 꽤나 시의성 있어 보이기까지 하다.

두번째로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한국이 다인종 다문화 국가였다면 국내 관객들이 이 영화를 한층 더 제대로 즐길 수 있었을 거라는 점이다. 종종 내용과 동떨어지는 감이 있는 자막도 자막 탓이지만, 우리나라 같이 오랜 시간 단일인종으로 구성되온 사회에서는 평소 접하기 힘든 내러티브들을 구석구석 참 많이도 담아 두었다.

예를 들어, 경찰서의 클로하우저가 주디를 맨 처음으로 보자마자 ‘귀여운 토끼’라고 하자(오 넌 아시안이니 수학을 잘 하겠구나~ 맥락의 발언 정도로 보면 되겠다),  주디는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지만요, 같은 토끼 끼리는 귀엽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외에는 좀…’이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클로하우저의 반응은 바로 자신이 주디를 ‘(종족을 기준으로)스테레오타이핑’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부끄러워하고, 또 겸연쩍어한다.

이 포인트에서 ‘누구 얼굴이 연탄장 색깔’이라던 정치인이나, ‘얼굴이 검은 흑인을 보고 얼굴이 검다고 한건데, 농담이고 나쁜 의도도 없었다는데 이게 뭐가 그리 잘못된 건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당연 홧병이 날 것이다. 이건 분명 발언을 한 당사자 개인의 잘못이지만,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상당히 뒤쳐져 있는 우리 사회 환경에서는 이 발언이 나온 배경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상대방과 초면이기까지 한 상황에서 대뜸 상대방의 얼굴 색을 운운하는 것이 왜 무례함의 극단을 달리는 것인지를  배울 기회 자체가 이제껏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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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요인들로 인해 다양성이 결여된 사회는 조금만 지내 보면 확실히 티가 난다. 이제껏 짧게든 길게든 있어본 곳이 국가 수로는 40여 개 정도인데, 그 덕에 지금은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얼마 되지 않아 대략 그 도시가 어느 정도로 다양성을 포용하는 곳인지(인종, 국적, 성별, 성적 취향 등), 어느 정도로 열려 있는지가 대략 가늠된다.

길거리에서 이유없이 받는 시선이나, 대화 초반부터 대뜸 국적을 물어보는 빈도수 등이 나름의 척도인데, 체류 기간 내내 내 국적을 입 밖으로 꺼내서 말할 일이 전혀 없었던 곳도 있다. 반대로 첫 질문부터 내 국적을 묻고, 그 이후에도 이 사람은 내 나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전혀 없나? 나를 ‘한국인’이 아닌 도유진이라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게 이 사람에게는 불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내 국적을 나와 결부시키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도 있었다. 이런 곳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대화는 너는 ‘아시안이니까’, ‘한국인이니까’, ‘여자니까’, 라는 상대가 가진 불가변한 속성을 항상 전제로 깔아두고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이야기한 연탄 발언 같은, 이제까지 우리가 알아오고 소통해왔던 방식과, 이에 비해 좀 더 예민한 감수성을 요구하는 외부 요인과의 충돌은 필연적으로, 계속해서 더 자주 일어날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충돌들이라 귀찮게만 느껴질 수도 있고, 이제까지 필요성을 느껴보지 못한 부분이라 굳이 시간을 들여서 이해해보려고 하기 힘들 수도 있다. 뭐 이렇게 신경쓸 게 많은가, 하고 짜증이 날 수도 있다.

나부터가, 지금 만들고 있는 다큐멘터리는 말할 것도 없이(출연진이 인종, 성별과 같은 기준으로 볼 때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진 않았는가, 인터뷰이들의 발언 중 인종 차별 등으로 비춰질 요지가 있는 부분은 없는가), 영어로 할 때는 트윗 하나에도 훨씬 더 신경을 쓴다. 한국에서만 이십년 가까이 지냈기에 여러모로 내가 미처 생각하고 있지 못한 부분, 모자란 점이 너무 잘 보여서 더욱 그렇다.

요점은 역지사지, 그리고 주토피아에서 클로하우저가 보여주는 반응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나’라는 온전한 사람으로서 보여지고 싶은지 아니면 ‘아시안’, ‘장애인’ 등 내가 가진 불가변한 속성을 바탕으로 우선적으로 판단받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또 실수를 했을 때는 상대방을 붙잡고 본인의 언행을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난 칭찬으로 한건데? 백인이라 코가 높다고 한게 무슨 문제임? 칭찬인데? 다르게 생긴 건 사실이잖아?) 클로하우저처럼 심플하게 사과부터 하면 된다.

이외에도 주토피아에는 구석구석 담긴 함의들이 가득하다. 여우인 닉은 도시 하층민(블랙&스트릿)을, 토끼 주디는 여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클로하우저는 디즈니 역사상 가장 ‘대놓고 게이’ 캐릭터라는 평을 받는다.

(약 스포일러 주의: 아직 주토피아를 못 보신 분들은 아래 이미지 다음 문단으로 점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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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으로 등장하는 XXX은 social justice warrior, extreme activist, political correctness 정도를 상징할텐데, 국내에서는 인권 감수성, 젠더 감수성에 대한 토론이 대중 사이에서 갓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라 아직 피부에는 잘 와닿지 않는 개념일 수도… 개인적으로 지금 한국 상황에서는 이런 부분들에 대한 논의와 성찰이 더 필요하면 필요하지 그에 따르는 부작용을 이 시점에 걱정하는 건 상당히 호들갑이라고 본다 (예: 너무 예민하다, 분란글 조장하지 마라 신경쓰지 말고 그냥 조용히 살자 / 왜 자꾸 동성애자들이 받는 차별을 이야기하나? 우린 보기 싫고 듣기 싫고 말도 하기 싫다. 우리 권리도 존중해 달라! 역차별이다! / 행정고시 여성 합격자가 48%나 된다고 한다, 여성 상위시대에 역차별이 우려된다! ‘여성 상위 시대’가 어디냐, 나도 좀 가보자 – 고함20 2016년 2월 1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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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주토피아가 (왠일로) 대놓고 게이 캐릭터를 선보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치고 정말 각양각색으로 등장하는 여러 영어 억양들도 재미있다. 뉴스앵커 중 하나인 눈표범은 영국 액센트를, 나머지 다른 한 명은 완벽한 미국 앵커의 액센트 그 자체다. 운전수로 나오는 흑표범은 남미계 액센트로 말하고, 요가를 하는 코끼리는 인도 액센트로 이야기한다. 가수로 등장하는 가젤은 이 노래를 부르는 성우부터가 콜롬비아 출신의 샤키라다(극 후반에는 스페인어로 추임새도 넣어주신다)

누가봐도 러시아인의 메타포인 북금곰 마피아를 보면서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셀 수 없이 많은 미국발 콘텐츠에서 러시아의 이미지가 저렇게나 한쪽으로 치우쳐서 고정되어 있는데, 이걸 보는 러시아인 당사자의 기분은 어떨까? 볼만큼 봐서 별 느낌이 없을까?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가젤의 콘서트씬. 콘서트장에서 다양한 동물들이 하나같이 환호하며 음악을 즐기는 모습은 조화 그 자체다. 언젠가 베를린의 한 공원에서 얼굴색도 생김새도 모두 다르고, 히잡을 두르거나 셔츠리스로 바지만 입고 있는 등, 각양각색인 사람들이 각양각색으로 웃으며 햇살 아래서 한가로운 일요일 오후를 즐기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의 기분이 다시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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