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협업 공간들 사이에서, 허바(Hubba)를 통해 보는 ‘커뮤니티 빌딩’에 관한 생각

공유경제와 커뮤니티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내건 협업 공간(co-working space)은 이제 어지간한 도시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의 업무 공간이 되었다.

얼마 전 한국에 상륙을 예고하기도 한 기업 가치 12조원의 위워크(Wework)는 말할 것도 없고,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동하며 자유롭게 일하는 원격 근무자들을 겨냥한 코패스(Copass)같은 곳들도 시장을 점유하고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코패스같은 서비스들은 자사의 네트워크에 등록되어 있는 여러 나라, 여러 도시의 협업 공간들을 한 곳에서 예약 및 결제하고, 패스 형태의 이용권을 통해 이용자가 지역에 관계없이 여러 개의 협업 공간에 엑세스할 수 있도록 한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첨언하자면, 이와 같은 협업 공간 관련 비즈니스 모델은 국내의 경우에는 시장 구조 자체가 사뭇 특이해 보인다. 당장 서울 안에서 사람들이 주로 몰리는 협업 공간의 이름을 댄다고 하면 못해도 상위 3개 정도는 정부, 대기업 등에서 운영하는 무료 공간이라 더욱 그렇다. 이런 곳들은 각각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이용료가 무료인 것도 그렇고, 투입된 자본 자체가 상당하다 보니 시설이나 공간도 월등하게 좋다. 이런 이유들보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더 크리티컬한 요소로는 이런 정부, 대기업 주도의 공간에서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커뮤니티를 들 수 있을텐데, 여기서 말하는 커뮤니티는 유기적이고 자생적인 커뮤니티보다는 당장 각 공간에서 열리는 이벤트나 지원 프로그램에 몰리는 모객 사이즈 정도로 보는 게 더 가까울 수도 있겠다.

정부와 대기업 돈이 해외와는 비교하기 어려울만큼 풀려 있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특성 탓에 국내의 민간 협업 공간에게는 초기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일이 다소 힘들 수 있어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도 맹점은 있다. 한국을 찾은 해외의 창업자, 원격 근무자들에게 ‘여기는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 특색있고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를 갖춘 커뮤니티가 함께 하는 공간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직은 바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현 상황이라는 점이다. 견학을 위한 공간 그 이상의, 일을 하고 그 과정 속에서 실제로 커뮤니티에 소속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는 곳 말이다.

2층의 넓은 공간 이외에도 1층에 자리한 트렌디한 카페가 특징인 베를린을 대표하는 협업 공간, Betahaus

정해진 사무실 한 곳으로 매일 출퇴근하지 않는 원격 근무자들 사이에서는 특히나 업무 생산성에서 협업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회사에 소속되어 원격으로 일하는 풀타임 직원이든, 클라이언트를 위해 일하는 프리랜서 개발자이든,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 비행기표 다음으로 알아보는 것이 그 도시의 가장 유명한 협업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번째로는 안정적인 인터넷 커넥션이고(한국처럼 어지간한 곳에서는 별 문제 없이 준수한 수준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 개발도상국이나 선진국 여부를 다 떠나서 별로 없다), 두번째는 장시간 앉아 일해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는 책걸상 또는 스탠딩 데스크, 마지막은 커뮤니티다.

첫번째 두번째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카페나 호텔방에서 일하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자칫하면 손목에 RSI와서 며칠 동안 마우스는 잡지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세번째인 커뮤니티는 앞의 두 요소와는 달리 상당히 정성적이고도 묘한 요소이다.

여기서 말하는 협업 공간의 커뮤니티는 전혀 존재하지 않아도 안 되고, 그렇다고 데일리 업무에 방해를 받을 만큼 너무 끈끈해도 곤란하다(가끔 ‘협업 공간’이라는 단어를 무슨 마법의 단어처럼 사용하는 경우를 볼 때가 있다. ‘협업 공간’이니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무조건 커뮤니티, 무조건 사교 활동, 무조건 뭔가 마법같은 실체 없는 시너지 효과! 결국 본질은 내가 일하는 공간이다. 협업 공간이라고 해서 업무 이외 활동에 치중하는 건 주객전도일 뿐이다). 며칠이 지나자 마자 거의 매 시간마다 사람들이 말을 걸어와 도저히 업무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산만한 곳도 있었다. 물론 여기는 일주일도 채 나가지 않았다

바람직한 커뮤니티의 측면에서 여기서부터는 방콕에 위치한 협업 공간 허바(Hubba)의 예를 중점적으로 들어보겠다(등장하는 모든 사진들은 현재 제작중인 다큐 촬영본 스틸샷이다).

허바는 나에게도 그렇고, 협업 공간 좀 다녀봤다는 내 주변 지인들이 국적을 불문하고 가장 사랑하는 공간 중 하나로 손꼽는 곳이다. 가장 큰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커뮤니티, 즉 사람이다.

어차피 시설이나 위치면에서 비슷비슷하다면 결국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도록 하는 요소는 바로 사람이다. 허바와 같이 잘 가꾸어진 커뮤니티가 상주하는 협업 공간에서는 집이나 카페에서 일할 때는 느낄 수 없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내게 허바는 마치 언제든 불쑥 들어서도 항상 아는 얼굴이 있고, 그 아는 얼굴들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반가워 해주는 타지의 집과도 같은 곳이다. 동시에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허바를 찾아온다.

점심 식사 장소로 주로 이용되는 야외 공간

발리의 협업 공간을 돌다 보면 어느 순간 찾아오는 위화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왜 이 공간에서 일을 하는 인도네시아 현지인은 아무도 없지?’같은 점. 이 탓에 몇몇 공간들은 ‘선진국에서 온 백인들의 놀이터’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특이하게도 허바에서는 항상 현지인과 외부에서 허바를 찾는 외국인 간 비율이 거의 5:5에서 6:4 정도로 유지된다. 국내외 커뮤니티가 이렇게나 잘 조화를 이루는 곳은 상당히 찾아보기 드물다(한 예로, 국내 공간은 일단 의사 소통 문제 등으로 인해 외국인이 들어 왔다가도 잠시 동안의 어색한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 덕에 허바에서는 개인 대 개인 교류뿐만 아니라 국내외 교류가 상당히 활발히 이루어진다. 국경을 넘나드는 채용도 그렇고, 해외에서 허바를 찾는 원격 근무자들의 주도로 이뤄지는 세미나 같은 지식 교류 등이 그러하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 중 가장 큰 부분은 바로 허바의 커뮤니티 빌딩에 힘을 쏫는 스태프들의 노력이다. 허바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이 허바의 스태프이다. 공간을 소개하고, 사람들을 소개하며, 참가할 수 있는 이벤트들을 알려주고, 자신을 소개하고, 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한다.

“X를 한다고? 저기 앉아 있는 Y가 마침 영상에 관련된 일을 하는데! 그러고 보니 관련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있는 Z가 오늘 저녁 이벤트에 참가할거야, 꼭 와!” 하루가 지나기 전에 벌써 이 공간에서 인사하고 웃고 눈 마주치는 사람들이 스태프들 이외에도 생긴다. 허바에 대해 더 알고 싶을 첫 방문자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시간도 일주일에 1회 준비되어 있다. 이런 친절과 관심은 매우 적절한 선에서 지켜지는데, 책상에 앉아 업무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전혀 방해를 받을 일이 없다.

이달의 이벤트 일정을 보드에 적는 허바 스태프

이런 분위기 탓에 점심도 삼삼오오 야외 테라스에 모여 다른 사람들과 다같이 먹게 된다(오전에 미리 요청하면 점심 시간에 맞춰 허바에서 배달 음식을 주문해 준다!). 그렇게 오며 가며 계속 보는 사람들과는 짬짬이 국적 직업 불문하고 잠깐씩 말도 섞는다. 일주일에 한번은 허바에서 특별한 음식을 점심으로 준비하는데, 음식값을 내고 미리 명단에 이름만 올려 놓으면 된다. 아무리 일만 하는 사람이라도 밥은 먹는 법이니, 점심시간을 아주 잘 활용하는 셈이다. 거창한 현수막이 있거나 단체로 딱딱하게 줄지어 사진 촬영을 하거나, 무슨 별도의 자격을 갖추어야 참가하는 그런 형태의 이벤트는 허바에 없다.

때때로 사람들이 여러 형태의 국내외 커뮤니티를 비교하면서, 한국은 한국 특유의 상대적으로 소극적이고 덜 사교적인 문화가 이런 차이를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일거라 짐작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그럼 유럽의 그 많고 많은 협업 공간들은 왜 하나같이 허바의 활발한 커뮤니티를 가지고 있지 못할까? 왜 네덜란드 같은 서유럽의 협업 공간에 대해 ‘도서관 같다’며 불평하는 목소리가 현지 스타트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도 많을까? 문화 차이로만은 설명이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나는 허바 특유의 커뮤니티를 바로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에서부터 차근차근 만들고(허바는 태국 최초의 협업 공간이다), 계속해서 유지시키고 있는 스태프들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커뮤니티는 공간만 열어두고 ‘커뮤니티야 자라나라 무럭무럭’하며 팔짱끼고 멀찍히 지켜보고 있으면 저절로 자라나는 잡초가 아니다.  

허바에서 하는 모든 커뮤니티 활동의 일환에는 반드시 스태프들이 일정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CEO도 마찬가지다. 미니 부엌 한켠에는 허바 멤버들의 폴라로이드 사진이 짧은 자기 소개와 함께 걸려 있는데, 여기에도 빠짐없이 스태프들의 사진이 자리하고 있다.

허바의 스태프들은 따로 사무실 없이 허바 멤버들 사이에 섞여서 일한다. 허바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허바의 일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자주 올라오는데, 여기에는 항상 익숙한 허바 스태프들의 활짝 웃는 얼굴이 빠지지 않고 끼여 있다. 오픈 이래 허바 스태프들의 인적 구성 역시 지금껏 거의 바뀐 바가 없다.

허바 창업자/CEO 아마리트(안경을 쓴 사람)이 허바 멤버들과 함께 점심 시간을 보내고 있다.

커뮤니티 빌딩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아지는 요즘은 더더욱 허바를 자주 떠올려 보게 된다. 관련해서 파내고 파내도 끝도 없을 만큼 많은 교훈을 주는 멋진 곳이다.

지난해 한해 동안에도 전세계적으로 협업 공간의 수는 부쩍 늘어나, 약 36%의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제는 더 이상 멋진 공간과 시설이 전부가 아니다. 외부에서도 알아서 소문듣고 찾아오게 만드는, 그런 커뮤니티를 가진 협업 공간을 지구 여기저기서 더 많이 만나볼 수 있게 되면 참 즐거울 것 같다.

2 thoughts on “넘쳐나는 협업 공간들 사이에서, 허바(Hubba)를 통해 보는 ‘커뮤니티 빌딩’에 관한 생각

  1. 항상 도유진님 글을 기대하고 봅니다. 그런데 역시나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계십니다. 감사해요~^^

  2. “계속해서 유지시키고 있는 스태프들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엄청 공감이 되네요!!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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