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 다큐멘터리, 8개월에 걸친 인터뷰와 섭외 뒷이야기

지난달 미국에서의 촬영을 끝으로 인터뷰가 거의 마무리 되었다. 막 촬영을 시작했던 게 올해 2월이었으니 여덟 달 정도 걸렸다. 인터뷰 이외에 들어가야 하는 영상인 비롤 촬영도 만만치 않고, 편집은 이제부터 시작이니 완성까지는 절반 정도 온 셈이다. 촬영 계획을 세울 당시부터 워낙 예측불허라 항상 마음 졸이던 것이 바로 인터뷰 파트였기에, 마무리를 짓고 나니 뿌듯하기도 하고 시원섭섭하기도 하다.

인터뷰이 선정

한국에서는 아주 예전에 미디어에 잠깐 나타났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단어, 디지털 노마드는 2007년 팀 페리스의 저서 ‘4시간’을 기점으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꾸준히 대안적인 삶의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물리적인 위치에 구애받지 않는 삶에 관심을 가지고 또 실제로 시도하게 된 이유로 꼽히는 주요 이유는 바로 기업의 원격근무 시행. 이에 힘입어 상대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진입 장벽이 높은 프리랜서나 본인 사업을 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아도, 원하는 곳에서 커리어를 유지하고 일을 하며 지내는 삶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는 디지털 노마디즘의 진입 문턱을 대폭 낮추고 현실적으로 선택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 대중에 받아들여지도록 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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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반해 지금도 한국에서는 디지털 노마드=불안정한 메뚜기 프리랜서의 삶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화두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면 국내에서는 금세 현실의 벽에 부딪친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있는 방법은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외국계 회사 지원. 이러다보니 ‘듣기만 좋은 헛소리, 그림의 떡’ 취급을 받고, 여전히 기업의 현실 인식과 개개인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욕구 사이에 자리한 간극은 도저히 좁혀질 기미가 안 보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

여하튼 이러한 이유로, 인터뷰이 선정 시에도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회사의 직원과 CEO 등 경영진을 최우선으로 섭외했다. 이를 통해 1. 원격근무가 직원들에게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 원격근무 전후의 달라진 삶의 모습 (일과 생활 간 균형, 가족과 보내는 시간, 가계 지출 및 소비 형태의 변화 등)  2. 고용주 입장에서의 득과 실, 원격근무 시행 이유, 직원 관리 및 성과 측정 방법 등을 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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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노마디즘의 대두와 변하고 있는 고용 시장 등 경제적 상관관계를 위해서는 LSE와 하버드를(LSE에서는 Dr. Carsten Sorensen을 촬영했고, 하버드는 현재 관련 주제 연구팀을 섭외 중이다), 정부 차원에서 이 세대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는 에스토니아의 e-Residency프로그램 등을 촬영했다.

선긋기

1인 기업 창업가들이나 프리랜서의 비율은 아쉽지만 가능한 한 줄였다. 이번 프로젝트의 주된 목표는 이 또다른 삶의 방식이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측면에서 어떤 의의가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적용되고 있는 케이스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앞으로 생각해 볼 점을 시사하는 것이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1인 성공 스토리는 흥미로운 소재일지는 몰라도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 내기에는 어려운 소재다. 대표성 측면에서도 애매하고, 보고 듣는 입장에서 자신의 상황에 적용해보기는 더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나 잘났지! 나 멋지지!’류의 스토리가 나올 법한 인터뷰이는 아예 섭외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개인 단위로부터 들어온 본인 촬영 요청만 해도 참 많고도 많았는데(나 성공한 디지털 노마드임! 넌 날 촬영해야 해!), 이 경우 대다수가 개인 PR이나 본인 사업 홍보를 꾀하는 경우가 많았고 팩트 체크도 어려워서 그냥 다 제꼈다. 세상은 넓고 참..참 특이한 사람이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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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업 모델을 가진 사람들(애매모호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온라인 마케터들, dropshipper, 기업가라고는 하는데 도대체 뭘 하는지 사업 모델은 뭔지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등), 개발도상국에서의 여러가지 추태를 종용하는 사람들(한 달 XX달러로 태국에서 현지 사람들을 하인처럼 부리고 성매매를 일삼으며 나같이 왕처럼 살아 보아요!)과는 일치감치 선을 긋고 들어오는 연락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이걸 좀 티나게 하다 보니.. 여기다 아래 태국 영상 편집본이 관련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haters, 일명 안티가 꽤 생기고, fxxx you로 시작하는 욕 메일도 종종 오고..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한다. 님들은 그냥 그렇게 사세요.

인터뷰이의 다양성과 한계점

산업 측면에서는 IT분야, 직업면에서는 개발자, 성별로는 남자, 인종으로는 백인, 나이대는 20-30대, 출신지로는 선진국. 디지털 노마드 커뮤니티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조합이다. 인터뷰이 선정 시에도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다양한 구성을 갖추고자 노력했다. 다양한 직업과 인종 및 국가, 여성, 30대 이상, 가족 및 커플 단위 인터뷰이 섭외 등이 그 노력의 일환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원격으로 본인의 로펌을 경영하는 변호사 Rosen부부, 블로그 thefamilywithoutborders.com로 잘 알려진 노마드 가족, 제제미미 부부, 프리랜서를 위한 플랫폼 Upwork에서 근무하는 Sondra와 작가 Jeremy 부부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원격으로 본인의 로펌을 경영하는 변호사 Rosen부부, 블로그 The Family Without Borders로 잘 알려진 Anna의 노마드 가족, 한국의 제제미미 부부, 프리랜서를 위한 플랫폼 Upwork에서 마케터로 근무하는 Sondra와 작가 Jeremy 부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퍼센테이지를 놓고 보면 턱없이 모자란다. 선정할 수 있는 모수가 워낙 적었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스토리고 대표성이고 그저 덮어두고 촬영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하루는 왜 당신이 인터뷰하는 사람들은 죄다 백인 남자들뿐이냐며, 날더러 인종차별자(racist)에 성차별자(sexist)라고 부르는 메일을 받고 완전 힘이 탁 풀렸던 적도 있었다(막상 메이커가 동양인 여성이란 걸 이 메일의 발신자가 알기는 알았으려나 모르겠다). 스스로 생각해도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다.

다행히도 여러 관련 커뮤니티에서 점점 더 인구 구성 요소가 다양해지는 게 눈에 보인다. 특히 성비는 눈에 띄게 확 달라졌다. 몇 년만 지나면 이 곳 저 곳을 누비는 한국분들도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커뮤니티를 통한 섭외, 그리고 우연과 행운

섭외는 초반이 가장 힘들었다. 예시로 보여줄 수 있는 릴 영상도 없었고, 내놓을만한 필모그래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껏 만들어 온 대부분의 콘텐츠 역시 한글 콘텐츠다 보니(한글 콘텐츠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를 이번 기회에 뼈져리게 깨달았다).

시작은 디지털 노마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으로 시작했다. 촬영 계획을 세울 당시부터 꾸준히 공개적으로 피드백을 구해왔기에, 막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땐 하나둘 인풋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퍼지고, 한 다리 건너, 두 다리 건너 그렇게 소개를 받으면서 촬영을 시작했다. 현재 촬영과 시나리오 전반을 도와주고 있는 든든한 친구들인 마뉴엘과 마리나도 디지털 노마드 온라인 커뮤니티 중 하나인 #nomads를 통해 만났다.

깃헙(Github)과 오토매틱(Automattic)은 정말 운이 좋았다. 친구가 막 이직을 했는데 마침 그 회사가 깃헙이라 어렵지 않게 촬영을 할 수 있었고, 본 다큐의 스폰서 중 하나기도 한 Woothemes(워드프레스 테마&플러그인 개발 업체)이 어느 날 갑자기 워드프레스 개발사 오토매틱에 인수가 되면서(!) 오토매틱에 한결 더 쉽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타이밍 한번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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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나, 마뉴엘(실리콘 밸리 촬영), 마리나(실리콘 밸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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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마뉴엘 마리나와

오토매틱을 촬영한 시점부터는 체감 섭외 난이도가 확 낮아졌다. 오토매틱 이전이 여전히 답변 없는 메일 발신의 연속이었다면, 오토매틱 이후부턴 어지간해서는 “Yes”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테마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사람들의 이름이 인터뷰이 리스트에 하나둘 올라갈 수록 내 프로젝트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 꾸준히 유투브 채널에 짧은 편집 영상들을 올린 것도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마지막은 팀 페리스까지, 촬영을 막 시작할 당시엔 섭외할 엄두도 못 냈던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인터뷰를 끝낼 수 있었다.

메일은 짧게, 트위터는 마법과도 같은 것

인터뷰이 섭외를 하면서 하나 제대로 터득한 게 있다. 이메일은 최소한으로, 그리고 짧게 보내야 한다는 것. 인터뷰를 하고 싶을 정도로 자기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 중,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메일을 거의 읽지 않거나(보통 자동 답변이 돌아오기 마련이다), 개인 비서가 대신 읽고 갈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시간 관리에 철저한 많은 사람들은 불필요한 이메일과 네트워킹에 들어가는 시간을 최소화하고자 노력한다.

생각해보라, 업무 이외에 하루에도 수십통씩 이 사람들이 낯선 이들로부터 받을 이메일을. “(거두절미) 커피 한 잔 했으면 합니다.” “(다짜고짜) 제게는 ~라는 엄청나게 멋진 사업 아이템이 있습니다. 스카이프로 이야기 좀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한데 ~라서 ~에 대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조언을 좀 듣고 싶습니다, 꼭 답변 주세요” “아직 아무것도 확정된 건 없지만 ~라던가 ~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좀 알아가고 네트워킹도 하고 시너지 효과도 내고 싶습니다” “(공짜로) 글 한편 써주시고 스피치도 좀 해주세요”

내가 당신에게 줄 건 없지만, 난 당신 시간을 뺏고 말거임

내가 당신에게 줄 건 없지만, 난 당신 시간을 뺏고 말거임

이메일은 상대방의 시간을 잡아먹는 실례라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특히 상대방이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보내는 콜드 이메일은 모르는 사람의 집 대문을 똑똑 두드리는 일이란 걸 나도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문전박대 당하기+내가 직접 당해보기) 알았다.

구구절절 길고 긴 이메일은 ‘무례’하고, 심지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기까지 한 경우에는 아무도 굳이 시간을 들여 읽지 않는다. 최대한 간략히 용건만 전달하되, 필요한 정보는 내 웹사이트의 URL과 레퍼런스가 될만한 관련 인터뷰 기사를 하나 링크하는 것으로 대신하면 된다. 이것저것 안 보내도, 상대방 쪽에서 일단 흥미를 가지면 내 프로젝트에 발을 들이기 전에 본인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라도 나와 내 프로젝트의 백그라운드 체크부터 탈탈 먼지 털듯이 한다.

가능한 한 콜드 이메일 대신 소개를 이용하고, 이메일은 무조건 3-5줄 이내로 짧게, 용건은 무조건 한 문장 안에 명확히. 그런데도 상대방쪽에서 답장이 없다면? 그건 그쪽에서 내게 시간을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건 그것대로 상대방의 의사이니 존중해야 하고, 혹여 상대방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거리나(경쟁사의 CEO를 인터뷰이로 섭외했다거나), 내가 그쪽에 제공할 수 있는 명확한 가치가 생겼을 때 다시 시도하면 된다.

같은 맥락에서 트위터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메일과 캘린더는 비서가 관리해도 트위터는 대개 본인이 직접 관리한다. 내 경우 팀 페리스를 비롯한 여러 인터뷰이를 “저 다큐 만드는데(홈페이지 URL), 인터뷰 요청해요.” 라는 트윗으로 섭외했다. 노마드리스트(Nomadlist) 파운더인 피터 레벨은 트위터로만 의사 소통하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인 “140자 이내로 설명할 수 있는 용건이 아니면 대개 들을 필요가 없는 이야기더라”에 무릎을 탁 친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고(관련 트윗).

산 하나 넘어 또 산

인터뷰이 일정에 따라, 인터뷰이가 여행하는 곳을 따라 움직여야 했던지라 일정이 꽤나 빡빡했지만, 이제 이것도 다 끝났다(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한동안은 정말 공항 근처도 안 가고 싶다..). 인터뷰이 리스트를 정리하고, 이상한 사람(너무 많다…) 걸러내고, 리서치하고, 매일 매일 예약 트윗을 보내는 스토킹까지 해가며 사람들을 섭외했던 것도 이제 끝. 산 하나 넘었고, 이제 다음 산이다.

회사라는 어떤 한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일을 하는 건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이 머리털나고 처음이다. 첫 몇달 간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평가해줄 상사도 없고, 프로젝트 시작과 끝이 어딘지도 모르겠고, 진행상황도 알 수 없는데다, 의사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쉴 때는 이상한 죄책감에 쉬는 게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혼자 뭘 하는 건 당최 못할 인간이구나’ 싶었던 것이, 회사에 소속되어서 다른 팀원들과 원격이건 오프라인이건 함께 일하던 게 너무 그리웠고, 혼자 다 짊어지고 가는게 갈수록 힘들고 외로웠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도 자신할 수 있는 건, 이번 프로젝트로 인해 단기간에 배운 게 참 많다는 것.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이제껏 모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내 힘이 닿는 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힘쓸 거라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아직까지 참 재밌다는 것. 건투를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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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19/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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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10/2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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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10/29/2015
  9. 11/01/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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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09/06/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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