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파도가 있으려나? 서핑 초보가 파도 차트 읽는 법

난 운전 못하는 잉여인지라, 기껏 낑낑거리며 보드를 들고 바다에 나갔을 때 이른바 장판, 현지인들 말로는 dead flag 상태인 고요하기 그지 없는 바다를 보고 피눈물을 삼키며 도로 집으로 돌아온 적이 몇 번 있었다. 아무리 일부러 바다 앞에 집을 구했다지만, 아무리 가볍기 그지 없는 연습용 소프트보드라지만, 기껏 시간 내서 나온 게 억울해서라도 무작정 들어가서 바람아 불어라 파도야 일어나라 하며 잔잔한 수면 위에 보드를 놓고 드러누워 둥둥 떠 있는 것도 한두번이지 몇 번 이 짓을 하다 보면 이만저만 맥이 빠지는 게 아니다.

종종 느꼈던 건데, 어떤 취미를 시작하기 전에 각종 장비를 풀세트로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이론을 아주 빠삭하게 공부하는 등 초장부터 매우 진지하게 임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취미라고 해도 남들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월등하지 않으면 이른바 ‘폼이 안 나서’인가 싶기도 하고 캠핑이나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당연한 듯 장착하는, 초기 장비라고 보기에 무리가 있는 장비 풀셋을 보고 있으면 더욱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해서, 이제껏 취미를 가지기 전에 지나친 사전 공부나 준비는 최대한 피하는 경향(일단 하고 보자)이 있었거늘 몇 번 저렇게 내 맘따라 안 되는 바다 상황을 마주하면서 ‘차트나 보고 와라 이놈아’하고 퇴짜를 맞고 보니 어느 정도의 공부는 필요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어차피 난 상초보인지라, 다른 건 다 필요없고 탈만한 파도가 있냐 마냐만 알면 되므로 옆에서 파도 타는 사람들에게 야매로 귀동냥해서 속성 학습한 파도 보는 법을 아래 간단히 정리했다. 바람이 어떻고  파도 간격이 어떻고 장황하게 설명을 하려길래 ‘넌 지금 운전의 운자로 모르는 사람한테 엔진 구조 설명하는 거랑 똑같은 짓 하는 거야, 그냥 내가 보드 들고 나왔을 때 허탕치는 건지 아닌지만 미리 알면 돼’로 바로 끊고 초간단 버전으로 들은 생활형 팁인 고로, 제대로 서핑하시는 분들 눈에 혹시라도 띈다면 온몸이 오글오글 제대로 구운 오징어가 될 거다 아마. 파도 미리 보겠다고 외국 예보 사이트 들어갔다가 이것이 당최 무슨 말이냐 하고 바로 창 닫으신, 특히 차트 따위에 약한 나같은 분들께 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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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로 든 차트는 호주 전역 서핑 스팟의 파도 예보가 나와 있는 Seabrezz 에서 가져왔다(차트 종류는 지도, 테이블, 도표 등 여러 형태가 있는데 기본적인 정보를 보는 법은 모두 대동소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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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의 차트에는 파도 높이(파란색으로 칠해진 부분), 그리고 화살표로 나타난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나와 있다. 여기서 내게 필요한 정보는 사실상 only 바람 방향, 기억해야 될 건 바다에서 육지 방향으로 부는 바람(온쇼어)이 있을 땐=파도 없을 확률 매우 높으니 나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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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보이듯 Perth의 위치를 보았을 때, 바람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불면 안 된다는 얘기. 하지만 바람이 강하면 아무리 그 반대 방향(오프쇼어)의 바람이라도 파도가 지저분하니 가급적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고, 바람 없는 날은 더 좋다. 숏보더분들에겐 해당없을지 모르겠지만, 롱보드 들고 다녀보면 정말 바람 세게 부는 날은 극기 훈련도 이런 극기 훈련이 없다. 그 큰 판대기를 들고 바람에 맞서면 몸이 휙휙 돌아가는데 걸어도 걸어도 몸은 앞으로 안 나가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쯧쯧하며 바라보고 이거 정말 서럽다.

파도 높이는 초보에게는 낮을수록 좋지만 바람 방향보다는 당연 덜 중요하다. 바람이 거의 없는(빨간 화살표) 수요일이나, 바람이 정확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부는 금요일 오전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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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의 차트에서는 파도 방향과 파도 간격을 볼 수 있다(역시 파란색으로 칠해진 부분은 파도 높이를 피트로 나타낸다). 당연히 파도 방향을 나타내는 파란색 화살표가 바다에서 육지 방향(Perth의 경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와야 파도가 있다.

화살표의 높낮이는 파도 간격을 나타낸다. 파도와 파도 간에 몇 초의 간격이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당연 길수록 좋고 못해도 7초 이상이 좋다. 오래 파도를 탈 수 있고, 나같은 초보에게는 뭣보다 일단 얼굴로 파도 맞아가며 패들링하면서 앞으로 나갈 때 덜 고달프다.

아래는 호주 서핑 스팟에서 흔히 볼 수 있는 Surfers’ Code 사인. 하단의 ‘빨간색과 노란색 깃발 사이에서는 서핑하지 마시오’ 문구는, 저렇게 깃발로 표시해 둔 구간이 바로 해수욕을 위한 구간이기 때문이다. 안전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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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isurf의 포스팅’[서핑배우기]3. 파도 차트 보는 법‘에서는 동영상으로 지도형, 테이블형 차트를 보는 법에 관해 매우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추천 백개. 그 외에

  • 전세계 파도 차트를 볼 수 있는 Windfinder
  • 전세계 서핑 스팟을 비디오, 사진 등과 함께 볼 수 있는 WannaSurf
  • 이규현씨의 책 ‘서핑에 빠지다’

역시 추천한다.

서핑은 바다가 허락할 때만 할 수 있다. 며칠 내내 ‘나 한가해요’를 마음 속으로 외치며 아련하게 차트를 바라봐도 도무지 파도가 있을만한 날이 없을 때도 많고, 차트를 보고 벼르고 벼르다 나가도 어느 순간 귀신같이 파도가 잠잠해질 때도 있다. 그럴땐 아쉬움, 무력감과 동시에 자연에 대한 경외 비슷한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끝이 안 보이는 바다, 그리고 바다와 맞닿은 하늘을 하염없이 보고 있으면 ‘이래서 사람들이 서핑에 빠지는 거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작디 작고, 나를 품어주는 바다가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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